[류한준기자] 롯데 자이언츠 외야수 김주찬은 프로 입단 후 내야수에서 외야수로 전향한 케이스다. 충암중과 충암고를 나와 2000년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할 때만 하더라도 김주찬은 대형 유격수로 성장할 유망주로 꼽혔다.
당시 삼성은 해태 타이거즈(현 KIA)로 트레이드시킨 양준혁의 등번호 10번을 김주찬에게 배정할 정도로 큰 기대를 걸었다.
김주찬은 삼성에서 보낸 첫 해 60경기 출전에 그쳤지만 타율 3할1푼3리 7도루를 기록하면서 가능성을 보였다. 그러나 프로 세계는 냉정했다. 삼성의 푸른 유니폼을 계속 입을 것 같았지만 2001년 이계성과 함께 롯데로 옮겼다. 삼성은 대신 거포 마해영을 데려왔다.
거인 유니폼으로 갈아입은 김주찬은 2001년 86경기에 나와 타율 3할1푼3리 29도루를 작성했다. 그는 2002년 롯데 사령탑을 맡았던 백인천 감독의 뜻에 의해 유격수에서 외야수로 포지션을 바꿨다. 당시 백 감독은 2001시즌 4홈런을 기록한 김주찬에게 단타보다는 2루타 등 장타를 기대했고 유격수와 견줘 수비부담이 적은 외야수로 포지션을 변경할 것을 지시했다.
수비 위치와 타격폼을 바꾼 김주찬은 이후 두 시즌 동안 혹독한 적응기를 거쳤다. 타율은 1할대까지 떨어졌고 홈런은 두 자릿수를 넘지 못했다. 도루 수도 오히려 줄어들었다. 게다가 병역과 관련해 불미스러운 일까지 터지는 바람에 힘든 시기를 보냈다.
그러나 빠른 발은 여전했다. 2004년 타율 2할4푼2리에 그쳤지만 개인통산 최다인 44도루를 기록했다. 김주찬은 2007년 롯데에 복귀해 113경기에 나와 타율 2할6푼1리 30타점 5홈런 22도루로 활약했다. 아주 빼어난 성적은 아니었지만 준수한 기록이었다. 그는 2008년부터 롯데 타선에서 본격적으로 리드오프 역할을 맡아 공격의 첨병 역할을 해왔다.
김주찬은 올 시즌 3할 타율 달성에 실패했다. 개인기록만 놓고 본다면 최고의 한 해를 보였던 2008시즌(타율 3할1푼3리 42타점 32도루)을 뛰어넘을 수도 있었지만 2%가 부족했다. 올 시즌 최종 성적은 118경기에 출전해 타율 2할9푼4리 5홈런 39타점 32도루다.
김주찬은 시즌 내내 "3할 타율에 대한 욕심은 없다"고 했다. 하지만 아깝게 3할 타율 달성에 실패한 아쉬움은 분명 있었다. 시즌 후 FA자격을 갖추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김주찬은 "팀이 한국시리즈에 진출하지 못해서 정말 아쉽다"며 "정규시즌 마지막 순위 경쟁에서 팀이 어려웠다. 그 부분은 지금 생각해도 마음에 걸린다. 개인적으로 만족하는 시즌은 아니었지만 최선은 다했다"고 말했다. 우승 여부를 떠나 롯데가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면 자유계약선수(FA) 시장에서 김주찬에 대한 평가는 좀 더 후하게 올라갔을 수도 있다.
김주찬은 빠른 발을 갖춘 타자다. 물론 대형선수로 분류되기엔 애매한 구석이 있다. 주로 1번타자로 많이 활약했지만 다른팀의 톱타자들과 견줘 출루율이 두드러지게 앞서진 않는다. 하지만 중장거리포를 때려내는 능력이 있다. 이번에 김주찬과 같이 FA 자격을 얻는 외야수 이진영(LG 트윈스), 김원섭(KIA 타이거즈) 등과 견줘 장타율에서 근소하게 앞선다.
준척급 FA로 평가되는 김주찬은 현 소속팀 롯데뿐 아니라 우타자 외야수가 필요한 팀들에겐 충분히 구미가 당길 만한 카드다. FA 계약에 대해 김주찬은 시간을 두고 상황을 지켜볼 가능성이 높다.
김주찬은 "아직 본격적으로 스토브리그가 시작된 게 아니다"라며 "한국시리즈에 팀이 진출하지 못했지만 아시아시리즈가 남아있다. 롯데 잔류냐, 다른 팀 이적이냐, 이런 부분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해보진 않았다. 아시아시리즈까지 다 끝난 뒤에 여러 상황을 두고 보겠다"고 했다.
조이뉴스24 류한준기자 hantaeng@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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