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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화 감독의 '미스터고', 그 치열한 도전기(일문일답)


225억 대작, 韓최초 풀3D·순수 국내 VFX 기술 적용

[권혜림기자]김용화 감독은 감흥에 젖어 있었다. 100% 국내 기술로 첨단 VFX(시각 효과)를 구현한 과정은 그야말로 지난했지만, 작업의 70%를 완료한 지금의 그에겐 피로감보다 설렘과 흥분이 짙게 느껴졌다. 한국 최초 풀3D 영화 '미스터고' 프로젝트를 가리켜 김용화 감독은 "저와 스태프들은 이미 영화가 성공한 듯한 기분이 든다"고 말했다. 100% 국내 기술로 VFX를 구현해낸 것은 그의 자부심에 큰 축을 이루고 있었다.

지난 18일 경기도 파주시 문발동 출판단지에 위치한 덱스터 디지털에서 영화 '미스터고'의 후반 작업 현장이 공개됐다. 메가폰을 잡은 김용화 감독과 총괄 VFX(시각 효과) 슈퍼바이저 정성진 감독은 취재진 앞에 직접 나서 고단했던 제작 과정을 설명했다. 완성본은 아니지만 영화의 주인공인 가상의 고릴라 캐릭터 링링 역시 영상으로 만나볼 수 있었다.

'미스터고'는 야구하는 중국의 고릴라 링링과 그의 15세 매니저 소녀 웨이웨이(서교 분)의 이야기를 그린다. 홀로 전통의 서커스단을 이끌던 웨이웨이는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남긴 빚을 갚기 위해 스포츠 에이전트 성충수(성동일 분)의 제안을 따라 유일한 가족인 45세 고릴라 링링을 한국의 프로야구단에 입단시키게 된다. 타고난 힘과 스피드, 훈련으로 다져진 정확함까지 갖춘 링링은 한국 야구계의 슈퍼스타로 거듭난다.

주인공인 고릴라 링링은 국내 기술로 연구된 VFX 기술을 통해 실사와 같은 모습으로 태어났다. 애니메이션이 아닌, 그것도 동물이 주인공인 실사 영화에서 고릴라의 리얼리티는 작품의 몰입도와 완성도를 담보하는 요소다. 모션 캡처 등 VFX 기술의 최첨단을 달리는 해외의 기술자들에게 자문을 구했지만 이들은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으려면 '미스터고' 제작비의 몇 배에 달하는 예산이 필요할 것이라 단언했다.

이제껏 국내에 없었던 기술을 만드는 과정은 그래서 필요했다. 수년 간 기획 및 R&D 단계를 밟은 '미스터고'의 제작진은 동물의 털을 구현하는 디지털 퍼(fur) 제작 프로그램을 상용화하는 데 성공했다. 할리우드 기술자들도 혀를 내두를 만한 작업 방식을 스스로 개발해냈다.

이날 김용화 감독은 '미스터고'를 "감당할 수 없는 영화였다"고 한 마디로 표현했다. 그는 "4년이란 시간이 걸렸다"며 "'국가대표'까진 제가 가진 것에 비해 너무나 많은 사랑을 받았다"고 입을 열었다. '오! 브라더스' '미녀는 괴로워' '국가대표'로 3연타 흥행 홈런을 친 김용화 감독은 안락한 삶에 안주하지 않고 앞이 보이지 않는 모험을 택한 계기를 설명했다.

그는 "행복했지만, 6개월 간 허무하고 허망하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며 "어떤 식으로든, 인생 속 고통의 양은 항상 같은 듯 싶다. 마치 질량 보존의 법칙과도 같다"고 말했다. 이어 "감독의 말할 수 없는 고민이 있을 수밖에 없다면, 저를 사랑해주신 관객과 한국 영화에 값진 선물을 드리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김용화 감독이 영화화한 '미스터고'는 허영만 작가의 만화 '제7구단'이 원작이다. 김 감독은 "원작은 10페이지만 읽었다. 자칫 잘못하면 허영만 화백에 누가 될까 걱정이 됐다"고도 고백했다. 원작에서 그가 따온 설정은 '야구하는 고릴라'라는 내용 뿐이다.

김 감독은 "작게는 한국, 넓게는 더 많은 시장에서 통용될 감정과 스토리를 넣었다"며 "시작은 순조로울 줄 알았는데 막상 하니 극사실주의로 영화를 만들기 어려웠다"고 토로했다. 실사 영화 속 고릴라가 튀어보이지 않으려면, 말 그대로 실제 고릴라 같은 크리처를 창조해내야 했다. 감독은 "기존 '킹콩' 같은 회화풍 영화보다, 살아있는 생생한 고릴라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며 "외국 VFX 기술자들에게 의뢰했지만 이 영화를 3~4개 만들 제작비가 들 거라고, 접어야 한다고 했다. 좌절하며 그만 둬야겠다는 생각과 해야 한다는 생각에 3개월 간 고통스럽게 갈등했다"고 돌이켰다.

"힘을 몰아준 스태프들과 기술자들의 모든 열정을 쏟아 붓겠다는 마음으로 출사표를 던졌다"는 김용화 감독은 "하나씩 어려움을 격파한 스태프들이 있었고, 연출에도 공을 들였다"고 남다른 감회를 알렸다. 이어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며 "영화에는 국경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제겐 조국이 있다"고도 덧붙였다.

그는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제작기도 있다"며 취재진을 향해 "감독은 스토리를 만들고 기자는 히스토리를 만든다. '미스터고'의 역사를 잘 전달해 주실 거라 믿는다"고 당부했다. "처절하고 외롭고 힘들었다"며 지난 4년의 기억을 돌이키기도 했다.

김 감독은 '미스터고' 제작을 위해 VFX 전반의 전문 인력들을 채용해 덱스터 디지털 스튜디오(덱스터 필름·덱스터랩·덱스터 워크샵·덱스터 컬러)를 만들었다. 김 감독이 사재 30억 원을 털어 만든 이 스튜디오는 '미스터고' 작업 이후에도 VFX 기술을 활용한 다양한 영화 작업에 뛰어들 전망이다.

영화에는 악명 높은 스포츠 에이전트 성충수 역의 성동일과 고릴라 링링의 소녀 매니저 역의 중국 배우 서교가 출연한다. 중국의 투자배급사 화이프로덕션에서 순제작비 225억원 중 약 50억원(500만 달러)을 투자했다. 한-중 합작 조건을 충족해 중국 내 최소 5천개 이상의 스크린을 확보했으며 오는 7월 개봉한다.

이하 일문일답

-왜 미스터고를 택했나?

"어린 시절 영화 감독을 하겠다고 생각했을 때, 제가 좋아하던 영화들은 '터미네이터' 같은 영화들이었다. 당시엔 꿈이었다. 대학에서 영화과는 나왔지만 CF 감독을 하고 싶었다가 강제규 감독의 '쉬리'를 보고 한국에서 영화를 만들 수 있겠다 생각했다. 만들게 되면 언젠가는 존재하지 않는 것들로 고통과 희망을 표현할 수 있겠다 싶었다. '오, 브라더스!'로 데뷔했는데 대학 전공 때는 스릴러 연출을 준비했었다. 막상 시작 때도 준비하다가 영화가 엎어졌다. 하다 보니 그것보단 이런 영화에 재능이 있겠구나 싶었다. 3편의 영화('오, 브라더스!' '미녀는 괴로워' '국가대표')에 제가 가진 것보다 훨씬 많은 사랑을 주셨다. 2009년 '국가대표' 후 평단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어렵게 살았는데 영화 감독으로서 좋은 삶을 살게 됐다.

그런데 내가 성공하는 요인이 과거에 했던 것을 더 잘해서 더 열심히 하려는 경향은 아닌가 싶었다. 경제 용어에선 '활동적 타성'이라더라. 그걸 버리고 싶었다. 저와 10년 가까이 함께한 스태프들도 있으니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한국 영화 시장에서, 5천만 인구에서 1천만 영화가 일 년에 두 편 나오는 상황이 됐다. 좋은 시기에 안주하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혼자가 아니고 저를 둘러싼 훌륭한 분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내가 꿈꾼 '터미네이터' '백 투더 퓨쳐' '스타워즈' 같은 영화들을, 우리가 못 해서 안한 게 아니라 안 해서 못했다는 생각을 하게 돼 시작했다. 원래 이런 영화를 좋아하기도 한다."

-중국 배우 서교와 작업한 소감은?

"중국의 투자배급사 화이 브라더스와 합작을 하게 됐는데 조심스럽게 제안하더라. 시나리오를 읽어보고 감독에 실례가 안 된다면 중국에 이 역을 할 배우가 있다고 해서 만나봤다. 서교는 18살의 어린 나이인데 20살이 되면 장쯔이를 능가하는, 중국 대륙을 호령하는 여배우가 될 것이란 생각이 들 정도다. 제 영화의 여배우가 다 빛나긴 하지만.(웃음) 저를 무색하게 만들었다. 이는 나이 경험과 무관한 것이라 생각한다. 배우는 자신의 삶의 경험을 오감으로 잘 기억하는 유전자가 있다고 본다. (그렇지 않고는) 매 순간 그 상황에 똑같이 집중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서교는 감정적 심리 상황에 잘 빠져드는 배우라 놀랍다. 사실 '양귀비'란 영화를 만드는데 한국의 강수연이 하면 웃긴 결과가 아닌가. 어차피 중국 친구가 중국 고릴라를 데려와서 한국 프로야구단에 입단한다는 설정이라 선뜻 했다.

내가 유명한 배우를 선호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당연히 감독의 입장에선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훌륭한 배우와 작업하면 좋다. 그러나 제 안의 반골 기질이 있어서인지, 좋은 영화에 훌륭한 배우가 나온다고 생각하지, 훌륭한 배우가 훌륭한 영화를 담보한다고는 보지 않는다. 제 영화는 플로팅, 즉 구성과 캐릭터에 집중돼 있다. 유명하지 않아도 1시간이나 1시간 반, 2시간 동안 제가 원하고 공감하는 부분을 꾸준히 해 내기만 하면 기존 이미지를 가진 배우들보다 훨씬 더 잘 녹아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내게 그런 고집이 있고 그렇게 해 왔다. 세계 시장이 넓어지니 앞으로도 우리나라든 외국이든 유명 배우들과 작업이 필요한 영화를 한다면 연기 면에서 좋은 평가를 받는 분들과 작업하는 것도 좋다고 생각한다."

-기술과 스토리, 영화적 균형이 무너지지 않게 선을 유지하기 힘들었을 것 같다.

"외국 회사 중엔 드림웍스의 영화를 좋아한다. 이유는 그들이 흔히 말하는 영웅화된 주인공 없이도 드라마를 만들기 때문이다. 제일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은 '드래곤 길들이기'와 픽사의 '토이스토리'다. '미스터고'의 주연 배우는 성동일과 서교지만 뭐니뭐니해도 링링이 주인공이다. 그 캐릭터를 잘 잡아야 한다. 결국 영화는 기술이고 뭐고 감정 이입이 안 되면 안 보는 것 아닌가. 두 시간동안 잘 설계해 인물과 VFX(시각 효과), 음악 등을 잘 삽입해 어떤 정서를 느끼게 해 주는 것이다. 아주 무겁다. VFX의 비중이 90%다 고릴라가 1천샷에 등장한다. 야구장 군중 장면도 그렇다. 만들다 보면 그런 것(기술적인 부분)에 함몰되는 경우도 많다. 이에 대비해 이 영화를 시작하며 '영화 안에 VFX가 잘 녹아있는' 작품들로 공부했다. 기술을 과시하는 영화를 선호하지 않았기 때문에 균형 감각을 잘 유지했다고 생각한다. 후반 작업에 매달린 180명의 열정을 보여주려면 감정과 스토리, 드라마를 잘 만들어 나가야겠다는 점을 지금도 계속 생각하고 있다."

-전작들과 비교할 때 김용화 감독에게 이 영화는 어떤 의미인가.

"인간에게는 가진 것을 놓지 않으려는 속성이 있지 않나. 배우들이 자기가 성공하면 다음 작품을 택하기 곤란해지곤 하는데 이는 배우 뿐 아니라 모든 인간의 속성이라 생각한다. 관객들이 김용화 감독이라는 타이틀로 영화를 보러 오진 않겠지만 나름대로 한국 영화계에서 이런 장르 하면 김용화 감독이라는 생각을 지닌 사람들도 있을 거다. 많이 보러 오실 거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제 안의 타성을 다 버리는 것이 저를 낳아준 부모님을, 그리고 제 자신과 스태프들을 향한 예의라고 생각했다. '국가대표' 끝나고 심도있게 그런 생각을 했다. 다 버리고 새로운 시장과 형식에 도전해 보자는 다짐이었다. 마치 제 몸을 낭떠러지에 세운 듯 해야 이룰 수 있는 엄청난 일이라는 기조로 작업했다.

말로 설명 못할 정도로 전작들과 '미스터고'는 많은 것들이 달랐다. 예산부터 제작 공정 하나 하나에 컨센서스가 있어 쉽게 넘어갈 수 있던 부분에 대해서도 모든 것을 설득해야 했다. 반 쯤은 벅찬 마음으로 영화를 찍었고 반 쯤은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을 정도의 오욕과 고통의 순간이었다."

-중국 예산은 얼마나 투입됐나.

"중국 북경영화제게 미스터고 섹션이 있어 선보일 예정이다. 중국의 경우 20% 이상의 예산을 현지에서 투자하면 합작 조건에 충족한다. 외화여도 자국 자본이 20% 이상 투자되면 된다. 정확히 500만 달러가 들어왔고 합작 조건을 통과했다. 미국채 보유 1위, 달러 보유국 1위 국가인 중국의 문화산업 전반에서도 달러로 돈을 바꿔 외국에 송금하는 것은 눈치가 보이는 일이다. 500만 달러는 작다면 작고 크다면 크지만, 이 돈을 한국에 송금한 것은 중국 정부에서 봐도 특이한 일이었다고 한다.

개봉 규모가 굉장히 크다. 내 인생의 목표는 1만개 이상 스크린에서 영화를 동시 개봉하는 거였다. '미스터고'로 그런 기적같은 일이 생기지 않을까 싶다. 많은 부분이 한국어로, 한국 문화에서 벌어지는 일이니 제 영화를 기다리는 분들은 편집본을 보고 좋아하셨다.

다른 시장의 외연에 대해서도 큰 목표가 있었다. 중국의 투자배급사 화이브라더스의 시각과 평가가 굉장히 중요하고 살 떨렸다. 3번 시사를 했는데 한국 분들보다 훨씬 많이 웃고 더 감정을 이입하더라. 코를 닦나 싶을 정도로 휴지를 꺼내기도 했다. 너무 감정 이입을 하더라. 내 영화가 한국에서만큼 중국에서도 잘 통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미녀는 괴로워' 역시 아시아권에서 굉장히 많이 봤다더라. 자신감을 많이 갖고 있다. 시장 외연의 1차적 목표를 중국 뿐 아니라, 아시아 동시 개봉으로 잡았다. 다음주 중 결과를 알릴 수 있겠지만 (1만 개 스크린 개봉이) 아마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조이뉴스24 권혜림기자 lima@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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