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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 라띠마', 우리가 몰랐던 배수빈의 얼굴(인터뷰②)


"'마이 라띠마', 이주 여성 보는 우리 시각 담겼다"

[권혜림기자] 꾀죄죄한 얼굴에 덥수룩한 수염과 기름진 머리칼, 몇 달은 세탁하지 않았을 것 같은 외투. 영화 '마이 라띠마' 속 배수빈의 처음과 마지막은 그랬다. 돈도 빽도, 가족도 친구도 없는 청년 수영으로 분한 그는 젠틀하고 말끔했던 지난 이미지를 완벽하게 씻어냈다.

감독 유지태의 첫 장편 영화 '마이 라띠마'에서 배수빈의 활약은 예상보다 더욱 빛났다. 애초 10대 후반의 소년으로 설정됐던 수영 캐릭터는 배수빈의 합류로 30대 초중반의 남성으로 다시 태어났다. 태국 출신 이주 여성 마이 라띠마(박지수 분)를 만나 그를 사랑하고 또 상처를 주며 성장하는 수영은 배우 배수빈을 만나 생명력을 얻었다.

영화 속 강렬한 이미지 탓일까. 근사한 옷차림을 하고 건너편에 앉은 배수빈에게선 남루한 죄의식만 있을 뿐 책임감을 배우지 못한 '어린 30대' 수영의 얼굴이 겹쳐보였다. "극 중 인물과 기대 이상의 싱크로율에 놀랐다"는 감상을 전하자 그는 특유의 소탈한 미소를 지으며 껄껄 웃어보였다.

"평소에도 별로 깨끗하지 않다"고 입을 연 그는 포스터를 가리키며 "이것도 3~4일 머리를 감지 않고 찍은 장면"이라고 설명했다.

"며칠 머릴 안 감고 촬영을 했지만 불편하진 않았어요. 조금 간질 간질했지만요.(웃음) 연극 '광해, 왕이 된 남자'를 할 때도 실제로 수염을 기르고 무대에 섰어요. 그래야 더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거든요. 사실 제겐 지저분한 이미지도 잘 어울려요. 하지만 많은 분들이 말끔한 이미지를 원하셨는지 그런 모습이 크게 각인된 것 같아요."

밑천을 드러낸 경제력,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암담한 미래를 돌파하기 위해 극 중 수영은 무작정 서울행을 감행한다. 불법 체류자의 신분이 발각될 위기에 처한 마이 역시 수영의 돌발 제안에 응해 함께 상경한다.

그러나 일확천금을 노렸던 수영은 그나마 가진 돈마저 잃게 되고 마이와 거리를 전전하게 된다. 주민등록이 말소된 수영과 체류 연장에 실패해 불법체류자가 된 마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많지 않다. 그렇게 두 주인공은 길에서 상처받고, 길에서 성장한다.

"말소된 주민등록을 갱신하는 데 꼭 10만원이 드는 줄은 저도 영화를 찍기 전까지 몰랐어요. 마치 사람을 값으로 매기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사막에서 목이 마른 사람에게 물 한 컵이 1억의 가치가 될 수도 있듯, 물질에 대한 값어치는 그저 값어치일 뿐인 것 같아요. 하지만 사람이나 생명에 대한 가치는 절대 불변의 것이라고 생각해요."

배수빈은 극 중 수영과 마이의 삶은 물론, 영화의 열린 결말이 제시하는 이들의 희망에 대해서도 생각이 많아 보였다.

벼랑 끝에 몰려서도 삶을 갈구하는 주인공들을 이야기하며 배수빈은 "사람과 생명의 가치를 생각하다 보면 혼란스러웠던 일도 깔끔하게 정리가 되는 것 같다"고 다시 입을 열었다.

"저는 사람에 관심도, 호기심도 많아요. 그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삶을 사는지에 관심이 가요. 그래서 다큐멘터리도 좋아하고요. 한 사람이 어떤 생각을 갖게 되기까지는 그만큼의 이유가 있는 것 같아요. 어떤 말이나 행동이 누구에겐 큰 상처가 되지만 누군가에겐 감기처럼 지나가기도 하죠. 수영과 마이가 겪은 것 같은 고통은 우리 모두에게 똑같이 오는 것 같아요."

극 중 마이는 제3세계 출신 이주 여성이 한국 사회에서 부딪힐 수 있는 온갖 난관을 맞닥뜨린다. '마이 라띠마'는 성(姓)적, 인종적, 경제적 하위 계층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폭력적 시선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가감 없는 시선은 불편함과 함께 반성과 통찰을 불러일으킨다.

마이에게 상처와 성장의 계기를 동시에 안기는 수영을 연기하며, 배수빈 역시 이 문제에 대해 보다 진지하게 접근하게 됐다.

"영화에는 이주 여성, 피부색이 다른 여성에 대한 우리의 생각, 생명을 보는 우리의 생각들이 담겨 있어요. 사회적 약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개개인이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죠. 제도적으로도 뒷받침돼야 하고요."

그는 "공부를 해서 제도를 만드는 것이 정치가의 몫이라면, 저는 다 함께 생각할 수 있는 연기를 함으로써 그런 움직임에 동참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알렸다.

'마이 라띠마'는 가진 것도 기댈 곳도 없이 세상에 홀로 버려진 남자 수영(배수빈 분)과 돌아갈 곳도 머무를 곳도 없이 세상에 고립된 여자 마이 라띠마(박지수 분)가 절망의 끝에서 맞닥뜨리는 이야기를 그린다. 배우 배수빈과 박지수, 소유진의 연기 호흡이 돋보인다.

지난 2012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평단의 호평을 이끌어낸 데 이어 지난 3월 프랑스에서 열린 제15회 도빌아시아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거머쥐었다. 오는 6일 개봉한다.

조이뉴스24 권혜림기자 lima@joynews24.com 사진 정소희기자 ss082@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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