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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재의 까칠한 축구]'나는 중국기자다'


무례하거나 유치하거나

[최용재기자] '나는 중국기자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중국 기자를 소개하려 한다. '나는 가수다'처럼 '나는 중국기자다'라는 타이틀로 프로그램을 하나 만들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듯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독보적인 영향력을 뽐내는 중국 기자들의 매력과 위대함을 전하려 한다.

중국 기자에게 취재를 당하고 질문을 받는 대상들, 특히 중국을 만나는 스포츠 관련 직종의 이들은 치를 떨 정도로 중국 기자들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말문이 막힐 정도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그들의 수준 높은(?) 질문 하나 하나는 소름이 돋을 정도다.

세계적 명장 조제 무리뉴 감독이 중국을 한 번 방문했다가 중국 기자들에게 사생활 침공을 받아 "중국 축구가 쓰레기인 것은 중국 기자 탓"이라는 말을 남긴 일화가 있다. 또 한국 농구 대표팀 허재 감독이 중국 기자들 앞에서 카리스마를 뽐낸 일화 역시 유명하다. 한국 피겨의 보물 김연아에게도 중국기자가 막말을 던진 기억도 난다.

이렇듯 중국 기자는 국적, 종목, 나이, 상대를 가리지 않고 영향력을 뽐내왔다. 자긍심도 대단한다. 그리고 8일 중국 광저우에서 이런 중국 기자의 위력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영광을 가졌다. 2013 AFC(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결승 2차전 FC서울과 광저우 에버그란데의 경기를 하루 앞둔 공식 기자회견에서 중국 기자들의 '명불허전' 영향력을 직접 보고 들을 수 있었다.

그들의 타깃은 당연히 광저우이 상대팀인 FC서울 최용수 감독이었다. 최용수 감독은 K리그를 대표하는 젊은 감독이자 지난 시즌 K리그 우승컵을 거머쥔, K리그 '디펜딩 챔피언' 감독이다. 하지만 중국 기자들에게는 단지 광저우가 무찔러야 하는 팀의 감독, 조롱하고 폄하해야만 하는 운명적인 먹이감이었다.

직접 보고 들으니 아무나 중국 기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많은 조건이 필요하다. 또 많은 시간과 경험이 필요하다. 대륙의 힘을 품은 선택된 자들만 누릴 수 있는 '특권' 같았다.

우선 상대에 대한 존중과 배려, 그리고 예의는 말끔히 잊는 것이 중요하다. 무례함과 조롱은 필수다. 그리고 누구도 예상할 수 없는 질문을 해야 한다. 질문할 때 중요한 것은 상대방의 심기를 건드리는데 포커스를 맞춰야 한다는 것이다. 심기를 건드릴 수 있다면 축구와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를 꺼내는 것도 서슴지 않아야 한다. 사생활을 거론하는 용맹함도 있어야 한다. 또 유치하면 유치할수록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 중국 기자들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다.

이번에도 그들은 실망을 시키지 않았다. 역시나 감탄사를 자아냈다. 왜 중국 기자, 중국 기자 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변함 없는 일관된 뉘앙스로 상대를 도발했다. 상대를 자극시키기 위한 질문들만 추려낸 열정이 대단했다. 질문이 뒤로 갈수록 세지는 강도 조절과 타이밍도 기가 막혔다.

시작은 '광저우 팬들이 3-0 승리를 당연하게 예상하고 있다. 여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였다. 광저우는 공식 홈페이지 대문에다 광저우가 서울에 3-0으로 승리한다고 떡 하니 올려놓는 대범함을 보인 팀이다. 이에 최용수 감독은 "광저우 팬들의 자연스러운 예상이다. 경기 전까지는 3-0이지만 경기 시작되면 어떤 스코어가 나올지 모른다. 섣부른 판단이다"며 냉정하게 대답했다.

의연한 최 감독. 이에 중국 기자들은 질문의 수위를 높였다. '광저우는 이미 우승 축하 파티 준비를 다 끝냈다. 그 파티를 즐길 일만 남았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경기 전 이렇게 확고히 우승을 단언하는 언론 관계자는 찾기 힘들다. 중국 기자라서 할 수 있는 일이다. 다시 한 번 느끼지만 대단하다.

이에 최 감독은 "너무 앞서나가고 있다. 공은 둥글다. 경기는 뚜껑을 열어봐야 안다. 내일 두고 봐야 한다. 이런 광저우의 행동들이 우리 선수들 동기부여를 이끌어내고 있다"며 다시 한 번 침착하게 응수했다.

이 정도 질문을 했으면 흥분을 했어야 했는데 역시 최 감독은 강적이었다. 최 감독은 여유로웠다. 이런 최 감독의 반응에 중국 기자들은 만족하지 못한 듯했다. 그래서 마지막 핵심 질문을 던졌다. 그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중국의 '황사'와 같은 강력한 질문이었다.

'내일 승리해 우승을 한다면 리피 감독 앞에서 강남스타일 춤을 출 수 있는가.' 이 핵심 질문에 중국 기자들은 자기들끼리 키득대느라 정신이 없었다. 몇몇 중국 기자들이 함께 비웃는 소리를 내는 것이 중요한 포인트였다.

축구 기자회견에서 '강남스타일'이 나왔다. 그 누가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그것도 AFC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공식 기자회견에 등장할 줄 알았겠는가. 중국 기자들의 조롱 센스와 용맹함에 찬사를 보낼 수밖에 없다. 중국에서는 아직까지 강남스타일이 유행인가 보다. 그리고 무슨 근거인지는 모르겠지만, 서울이 이기면 최 감독이 그 기쁨을 꼭 리피 감독 앞에서 춤을 추는 것으로 표현해야 한다는데 당위성까지 부여했다.

그래도 최 감독은 표정 하나 일그러지지 않은 채 "싸이가 세계적인 가수라는 것을 인정하는 질문이다. 내일 지지 않을 것이다. 리피 감독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감독인데 인사 정도는 하지 않겠나. 강남스타일 춤은 유행이 지나갔다. 타이밍이 맞지 않는 질문이다"라며 오히려 일침을 가했다.

이렇게 중국 기자들 체험은 끝났다. 기자회견이 끝난 후 그들은 환한 표정을 지으며 기자회견장을 빠져 나갔다. 만족스러웠나 보다. 자신들의 힘, 자신들의 정체성, 자신들의 유치함을 자랑했으니 만족할 만도 하다.

중국 기자들처럼 독보적인 영향력을 우리도 행사해보면 어떨까. 중국 기자들처럼 되기 위해서는 무례함과 조롱을 탑재하고 매너와 배려는 잊은 채 용기를 내야 한다. 유치함은 덤이다.

예를 들어 리피 감독에게 '세계적 명장인데 수준 낮은 중국 축구에는 왜 왔나', '돈 때문에 광저우로 왔나'라는 질문을 해야 한다. 또 유치할수록 높게 평가 받는 핵심 질문도 준비해야 한다. '서울을 꺾고 우승하면 최용수 감독 앞에서 쿵푸 시범을 보여주실 의향이 있는가.'

이건 아닌 것 같다. 차마 입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이런 질문을 할 용맹함은 없다.

다시 한 번 절감한다. 중국 기자는 아무나 할 수 없다. 그들은 대단하다. '나는 중국기자다'라고 외치면 박수를 쳐주고 싶다.

조이뉴스24 광저우(중국)=최용재기자 indig80@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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