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태기자] 2013년 한국 프로야구가 남긴 중요한 교훈이 있다. 더 이상 주먹구구식 '독불장군 야구'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장기적인 비전과 세밀한 실행플랜, 그리고 강력한 실천의지가 조화를 이룬 팀이 성공하는 시대다. 프런트와 현장이 조화를 이룬 '시스템 야구'의 전성시대가 활짝 열린 것을 확인한 올 시즌이었다.
◆시스템의 삼성, 3년 연속 통합우승
지난 2011년 삼성 라이온즈가 류중일 감독 체제로 일신했을 때 정규시즌과 한국시리즈 통합 3연패를 예상한 사람이 몇이나 됐을까. 삼성은 지난 10월 22일 정규시즌 우승을 확정지은 뒤 '시스템 야구의 승리'라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삼성의 의도는 명확했다. 몇몇 스타 또는 일부 명성 있는 지도자의 배경에 의존하지 않은, 꾸준히 승리 가능한 팀을 만들어온 노력이 결실을 맺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이다. 실제로 삼성의 최근 성공은 프런트의 부단한 노력이 매우 큰 역할을 했다는 게 야구계의 대체적인 평가다.
삼성은 꼼꼼한 스카우트를 통해 확보한 선수들을 경산 볼파크에서 체계적으로 지도하며 유망주로 육성한다. 경산에서 땀방울을 흘린 뒤 1군 무대에서 스타로 거듭난 선수가 하나 둘이 아니다. 외부에서 몸값 비싼 FA를 데려오기보다는 내실을 다지는 데 주력한 결과다.
이 덕에 삼성은 최근 몇 년간 김상수, 이영욱, 정인욱, 정형식, 심창민, 배영섭, 이지영 등 1군 전력을 자체적으로 키워냈다. 올 시즌에는 김현우, 정현 등 잠재력을 갖춘 선수들이 기회를 얻었고, 시즌 막판에는 정병곤, 김태완, 이상훈 등이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소프트웨어적인 지원도 빼놓을 수 없다. 삼성은 2011년 4월부터 1년간 35억원을 주고 '스타비스(STABIS)'라는 통합정보시스템을 도입했다. 프로야구 최초로 선수들이 언제 어디서든 모바일로 경기 관련 통계와 동영상까지 다운받아 볼 수 있는 시스템을 완비한 것이다. 스타비스 도입 이후 삼성 선수들은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상대를 분석하면서 남들보다 한 발 앞선 준비가 가능해졌다. 3년 연속 통합 우승 뒤에는 이런 세심한 준비가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했다는 평가다.
◆'현재보다 미래', 두산-넥센
한국시리즈 준우승팀 두산 또한 시스템 야구가 뿌리를 내린 좋은 예다. 최근 10여년간 포스트시즌 단골손님으로 자리잡은 두산은 장기적인 비전으로 선수단 물갈이를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때로는 냉정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세대교체 속도가 무척 빠르다.
두산이 정규시즌 4위로 포스트시즌에 진출, 놀라운 기세로 한국시리즈까지 올라갔을 때 모든 야구팬들은 선수단의 투혼을 칭찬했다. 이 때도 구단 수뇌진은 '향후 5년 이후'를 고민하고 있었다. 시즌 후 감독 교체 및 노장들과의 계약 포기도 이 과정에서 나왔다. 무엇보다 두산은 2군 육성의 중요성을 가장 잘 알고 있는 구단이다.
올 한 해 모그룹의 지원을 받아 무려 400억원을 투자해 경기도 이천의 2군 경기장을 새롭게 개조하고 있다. '베어스 파크'라는 이름으로 내년 4월 개장하는 이 구장은 두산을 한 단계 도약하게 해줄 야심찬 투자라는 게 구단 안팎의 일치된 평가다. 여기에 두산은 내년 1월 2군도 대만 전지훈련을 계획하는 등 프런트의 전방위 지원이 돋보인다. 지난해 홍성흔 정도를 제외하면 굵직한 FA 영입도 없었던 두산이 10여년간 한결같이 강호의 위치를 유지해온 요인이다.
넥센 또한 프런트의 비전과 실행 능력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팀이다. 다른 구단들처럼 모기업의 막대한 지원이 없어도 현명한 구단 운영능력 만으로도 창단 첫 '가을야구'를 경험한 노하우는 무엇과도 바꾸기 어렵다. 이장석 구단주를 정점으로 한 넥센 프런트는 일사분란한 선수단 지원이 돋보인다.
특히 구단 수뇌부가 현장 야구인들 못지않게 야구의 속성을 꿰뚫고 있어 야구단을 독립 법인이라기보다는 '대기업의 한 계열사' 정도로만 치부하고 있는 일부 구단들을 '머리 싸움'에서 압도한다. 적시의 선수 트레이드와 현명한 시즌 운영 전략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특히 소모적인 경비를 줄이는 대신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부분에는 확실하게 투자하는 모습은 '프로야구의 미래'라는 찬사마저 받을 정도다.
◆1인 야구는 끝났다
1982년 시작된 한국 프로야구는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온갖 시행착오를 겪어왔다. 미국과 일본의 선진 시스템을 배우고 따라하면서 거를 건 거르고, 장점은 취합해 '한국식 야구 시스템'을 확립해왔다.
최근 꾸준히 좋은 성적을 거둔 구단들은 이 과정에서 일찌감치 앞을 내다보고 준비를 소흘히 하지 않았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적인 선수단 지원 시스템에 프런트와 현장의 불협화음도 최소화하면서 최상의 전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반대로 몇몇 스타 감독의 역량에만 기댄 채 손을 놓은 일부 구단들은 위기가 닥쳤을 때 해법을 찾지 못해 당황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장기적인 계획 없이 근시안적인 운영에만 집착하면서 성적과 인기가 동시에 추락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삼성과 두산, 넥센의 성공은 한국에도 시스템 야구의 전성시대가 본격 도래했음을 알려주는 징표다. 시스템 야구는 프런트 야구의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
그러나 과거 일부 '낙하산 사장'들이 권위의식에 사로잡혀 좌지우지했던 '사장 야구'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일부 원로 야구인들은 "요즘 프로야구는 프런트가 너무 득세한다"고 지적한다. 프런트가 현장의 코칭스태프 의견을 무시하거나 군림해서도 안 되겠지만 프런트가 약해도 문제다. 결국 야구단을 꾸리고 운영하며 향후 10년 대계를 결정하는 주체는 프런트이기 때문이다.
조이뉴스24 김형태기자 tam@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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