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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아성 "김희애, 배우들 여리다는 편견 깨 줬다"(인터뷰)


영화 '우아한 거짓말'서 동생의 죽음 겪는 만지 役

[권혜림기자] 지난 2013년 8월, 영화 '설국열차' 개봉을 맞아 조이뉴스24와 만났던 배우 고아성은 당시 화두를 묻는 질문에 망설임 없이 영화 '우아한 거짓말'을 꼽았다. 이미 개봉한 '설국열차'가 흥행을 이어가고 있었고 그 역시 독특한 캐릭터 요나 역을 무리 없이 연기해냈다는 호평을 얻은 즈음이었다.

7개월 뒤, 그의 뇌리를 가득 채웠던 '우아한 거짓말'이 드디어 세상 빛을 봤다. 다시 만난 고아성과 함께 그간의 작업을 돌이켰다.

김려령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우아한 거짓말'은 14세 소녀 천지(김향기 분)의 죽음으로 시작한다. 남겨진 엄마 현숙(김희애 분)과 천지의 언니 만지(고아성 분)는 천지의 친구 화연(김유정 분)과 주변 사람들을 통해 죽음 뒤에 숨겨진 진실을 찾아간다.

고아성은 갑작스레 동생을 잃은 뒤 그의 생전 궤적을 따라가는 언니 만지를 연기했다. 비극으로 시작하는 이야기지만, 극의 후반까지 만지의 감정선은 차분하고 정적이다.

그간 작품들에서 고아성은 전형적인 패턴과 거리가 먼, 다큐멘터리를 보는듯 현실감을 안기는 연기를 선보여왔다. 이번에도 다르지 않다. 관객들은 러닝타임 117분 동안 배우 고아성이 아닌 만지와 호흡할 수 있다. 영화를 보며 연신 눈물을 찍어내는 관객들의 모습도 이를 말해준다.

"일반 시사의 무대 인사로 영화를 한 번 더 봤어요. 기술 시사 때는 워낙 긴장했었고, 언론 시사 때는 배급관에서 영화를 봤었죠. 진정한 관객들과 같이 영화를 보는데, 너무 감격스러웠어요. 영화가 더 깊게 다가오기도 했고요. 촬영 때나 작업을 기다릴 때, 편집할 때 등 배우들은 긴장하고 기다릴 수밖에 없는데 이렇게 반응이 좋으니 더 이상 행복할 수가 없어요."

영화는 만족스럽지만 극 중 자신의 연기에는 아쉬움이 많단다. 고아성은 "제 연기에 대해선 정말 잘 모르겠다"며 "자기검열이 너무 심했던 것 같다"고 털어놨다. 이어 "다른 영화들은 편하게 했던 것 같은데 이번엔 욕심이 너무 많았다"고 덧붙였다.

영화의 제작보고회에서 고아성은 가족을 잃은 슬픔을 연기해야 했던 만지 역에 자신이 없었다고 고백한 바 있다. 애초 '우아한 거짓말' 출연을 고사했던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만지 역은 실제로 가족을 잃어본 적 없는 자신이 연기하기에 쉽지 않은 캐릭터라고 판단해서였다.

"영화는 진심으로 매력적이었어요. 우리나라에선 이미 진부하리만큼 뻔한 소재인데, 그걸 담아낸 방식이 너무 세련되고 담백했어요. 왕따나 직접적인 폭력이 아니라 은근한 따돌림을 소재로 삼기도 했고요. 다시 출연을 결정하기까지, 제게 영화 같은 일주일이 일어났어요."

매력적인 작품을 만났지만 좀처럼 자신감이 생기지 않았던 그에게 대체 어떤 일들이 있었던 것일까. 그는 "출연을 거절하고 나서 그 다음날 엄마가 돌아가시는 꿈을 꿨다"며 "이후 언니와 소중한 단짝 등 가까운 사람들이 죽는 모습들이 꿈에서 너무 생생하게 나타나더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대상은 다 다르지만 애도의 단계가 공통적으로 나타났다"고 덧붙였다. 정신분석학에서 설명하는 '애도의 단계'를 꿈에서나마 경험한 고아성은 비로소 "이 영화에 빠져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꿈 속에서 매일 아침 눈을 뜰 때 엄마가 없다는 것을 새로 인식하고, '엄마가 원하는 건 이런 걸거야' 하며 씩씩하게 살기로 다짐하더라"며 "죽음의 개연성을 알아내야 한다는 답답함도, 억울함도 들었다"고 알렸다.

"만지는 동생이 왜 한 마디도 없이 갔는지 꼭 알아내야 할 것 같은, 미쳐서 못 살 것 같은 단계에 있었어요. 어쩌면 만지가 천지의 주변 친구들을 찾아다니는 행동의 동기도 복수보단 왜 그랬는지 알고 싶은 절박한 마음이었을 것 같아요. 서점에서 롤랑 바르트의 '애도일기'를 읽은 것도 감독님께 전화를 걸게 만든 결정적 요인이었죠."

관객들에게 강렬하게 다가갈 법한 영화의 클라이막스는 만지가 지하철에서 꾸는 꿈을 그린 장면이다. 세상을 등지려는 천지를 붙잡고 우는 현숙과 만지의 표정에는 돌이킬 수 없는 사건을 어떻게든 막아서고 싶었던 간절함이 담겼다.

"연기하며 가장 임팩트가 컸던 신이에요. 그 상황에 개입을 하는 장면이니까요. 아무 생각 없이 세트장 문을 확 열었는데, 의자가 있고 목도리가 매달려있고 (김)향기가 서있는거에요. 그 모습이 하나의 풍경처럼 느껴져서 그 신을 찍은 날 이후로 한 달 동안 헤어나오지 못했어요. 밝은 신도 찍어야 했는데 너무 힘들었죠. 만지의 한풀이 같은, 환상같은 장면이었어요."

많은 장면을 함께 소화한 배우 김희애를 언급하면서는 "100살까지 연기해도 그런 경지에는 못 갈 것 같다"고 말했다. 남다른 정신력과 의연함에 대한 감탄이었다. 그는 "경력이나 실력과 무관하게 배우들은 하나같이 여리고 약하다는 편견을 김희애 선배가 깨 주셨다"고 알렸다.

"'저럴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정신력이 강한 분이셨어요. 부족한 표현이지만 '쿨하다'고 할까요. 제가 이런 저런 혼란을 겪을 때 '선배님, 영화 어떻게 나올까요?' 하고 여쭤봤더니 '글쎄, 하늘의 뜻에 달렸지' 하고 답해주시더라고요. 그런데 언론 시사 때 그 생각이 조금 깨지긴 했어요. 소녀처럼 우시는 걸 보면서요.(웃음)"

'우아한 거짓말'은 '완득이'의 이한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고아성과 김희애를 비롯해 김향기·김유정·유아인 역시 출연한다. 지난 13일 개봉해 상영 중이다.

조이뉴스24 /권혜림기자 lima@joynews24.com 사진 정소희기자 ss082@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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