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의기자] 김선우(LG)의 개막전 깜짝 선발 등판은 이벤트를 즐기는 김기태 감독의 성향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LG 트윈스 김기태 감독은 24일 열린 시즌 개막 미디어데이 행사에서 팀의 개막전 선발로 김선우를 호명했다. 장내가 술렁일 정도로 아무도 생각지 못했던 카드다. 김기태 감독은 그렇게 또 한 번 빅매치를 탄생시켰다.
LG는 오는 29일 잠실에서 '옆집' 두산 베어스와 개막전을 치른다. LG와 두산의 잠실 라이벌전이라는 것만으로도 큰 관심을 모으는 경기. 여기에 김선우가 지난해까지 소속팀이었던 친정 두산을 상대로 이적 후 첫 등판을 갖는다는 점에서 더욱 이목이 집중될 전망이다.
김선우가 개막전 선발로 나서는 것은 그야말로 파격이다. 당초 김기태 감독은 리즈를 개막전 선발로 일찌감치 낙점했으나, 리즈는 부상으로 이탈한 데 이어 토론토와 계약을 맺으며 팀을 떠나 차질이 생겼다. 이후 리오단, 우규민, 류제국 등이 개막전 선발 후보로 물망에 올랐다.
그러나 김 감독의 최종 선택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김선우였다. 김선우는 지난해 두산에서 방출된 선수. 개막전 선발을 맡기에는 무게감이 많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개막전에는 보통 팀의 에이스가 나선다. 김선우가 시범경기 2경기에 등판해 1승 평균자책점 3.60으로 기대 이상의 피칭을 보여주긴 했지만 현재 LG의 에이스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김 감독은 왜 김선우에게 개막전 선발이라는 중책을 맡긴 것일까. 일단 김선우의 구위가 쉽게 무너질 정도는 아니라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높다. 18일 롯데와의 시범경기에서는 홈런 한 방으로 2실점하긴 했지만 4이닝을 나름대로 잘 던졌다. 23일 KIA전에서도 1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았다. 우천으로 취소됐지만 첫 등판이던 12일 NC전에서도 1.1이닝 무실점을 기록했다.
김선우는 전체적으로 구위가 지난해에 비해 많이 올라온 상태다. 구속도 시속 140㎞ 이상이 나오고 있다. 여기에 특유의 노련함까지 더해진다면 김선우는 쉽게 공략당할 투수가 아니라는 것이 김기태 감독의 판단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것만 가지고 김선우의 개막전 선발이라는 파격을 설명하긴 어렵다. 김 감독 특유의 스타일이 이번 결정에 담겨 있다. 이벤트를 즐기는 김 감독만의 스타일이다.
김 감독은 가능한 한 팬들의 이목을 끌 수 있는 경기를 선호한다. 감독도 선수도 부담스러울 수 있는 대결을 오히려 즐기는 편이다. 팬들에게 하나라도 더 볼거리를 제공하기 위해서다.
취임 첫 시즌이던 2012년 시범경기에서는 야심차게 마무리로 돌린 리즈의 첫 실전 상대로 이승엽을 선택했다. 리즈는 이승엽을 헛스윙 삼진으로 돌려세우며 첫 단추를 잘 뀄다. 물론, 리즈는 결국 정규시즌에서 마무리 적응에 실패하며 선발로 복귀했다. 당시 이승엽도 일본 생활을 청산하고 한국에 막 돌아온 상태였다. 충분히 스토리가 될 수 있는 맞대결. 김 감독은 '팬서비스'를 리즈의 등판 배경으로 설명했다.
다음은 류제국과 김진우의 맞대결이다. 지난해 큰 기대 속에 LG에 입단한 류제국은 시즌 초 2군에서 컨디션을 점검하며 1군 데뷔 시기를 조율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김 감독은 팀이 연패에 빠지며 하위권으로 처지기 시작한 시점에서 류제국을 1군으로 호출했다. 그것도 고교 라이벌이었던 김진우(KIA)가 선발 등판하는 경기를 류제국의 데뷔전으로 결정했다.
결과는 대성공. 류제국은 5.1이닝 5피안타(2홈런) 4실점으로 승리투수가 됐고, 김진우는 4.2이닝 9피안타 7실점(3자책)으로 패전투수가 됐다. 류제국의 승리를 터닝포인트로 LG는 무서운 기세를 타며 마침내 11년만에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했다. 당시 김 감독은 "팬들에게 이벤트적인 볼거리를 제공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며 류제국-김진우 맞대결을 성사시킨 이유를 설명했다.
김선우의 이번 개막전 선발 낙점 역시 비슷한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개막전이라는 큰 경기, 그것도 사실상 자신을 버린 친정팀을 상대로 하는 등판이다. 팬들의 흥미를 돋우고도 남을 요소가 경기에 포함돼 있다.
팬들에게 이벤트가 된다면 해당 선수에게는 강력한 동기부여가 된다. 류제국 역시 김진우와의 맞대결을 앞두고 "(김)진우만큼은 해야죠"라고 조용히 혼잣말을 하며 은근히 라이벌 의식을 드러냈었다. 그리고선 승리를 거뒀다. 김 감독이 김선우에게 바라는 것 역시 마찬가지. 김선우가 친정팀에 자신의 건재를 알리려 혼신의 투구를 펼치도록 유도하는 것이 김 감독의 진짜 노림수일지 모른다.
조이뉴스24 정명의기자 doctorj@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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