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용재기자] 지난 26일 최강희 전북 현대 감독이 폭발했다.
포항과의 경기에서 1-3으로 패배한 후 공식 기자회견에 참석한 최강희 감독은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었다. 최 감독은 너무나 신성하고 고귀하기에 말조차 꺼낼 수 없는 심판 판정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한국프로축구연맹은 인터뷰에서 경기의 판정이나 심판과 관련한 일체의 부정적인 언급이나 표현을 할 수 없게 규정해 놨다. 이를 어기면 상벌위원회를 열어 징계를 내린다. 심판의 판정을 존중하기 위해서, 또 심판의 권위에 도전할 수 없도록 하기 위해 만들어진 규정이다.
최 감독은 이런 규정을 어겼다. 거침없이 심판 판정에 대한 부정적인 언급을 했다. 징계를 받을 것이 확실함에도 작심하고 내뱉었다. 최 감독은 일관성 없는 심판의 판정에 불만을 드러냈고, 또 심판 판정에 대해 말하지 못하게 하는 규정에 반기를 들었다.
최 감독은 K리그를 대표하는 '명장'이다. 순간의 감정을 조절하지 못해 이런 말들을 내뱉을 감독이 아니다. 그 누구보다 '여유의 미학'을 즐기는 감독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최 감독은 이번만이 아니라 그동안 당했던 심판 판정에 대한 불만을 한꺼번에 터뜨린 것이다. 오랜 기간 벼르고 또 벼르다, 참고 또 참다 폭발한 것이다.
사실, 심판 판정 문제는 최 감독이나 전북만의 문제가 아니다. K리그 모든 구단들이 겪고 있는 골칫거리다. 연례행사와 같다. 몇몇 심판들의 수준 낮은 판정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이에 감독들은 매년 심판 판정에 대한 불만을 제기하고, 상벌위원회가 열리고, 징계를 받는 일이 되풀이되고 있다.
수 차례 반복되는 일이지만 변한 것은 없다. 쳇바퀴 돌듯이 올해는 최 감독이 총대를 멘 것뿐이다. 다른 감독들도 말하고 싶지만 용기가 나지 않아, 부정적인 시선이 두려워, 또 벌금에 대한 부담감으로 몸을 사린다. 하지만 누군가는 한 번쯤 해야 할 일이라고도 볼 수 있다. 최 감독이 대표로 앞으로 나선 것이다.
물론 최 감독의 거침없는 발언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수준 낮은 판정을 하는 심판이 있더라도 그 심판은 여전히 그라운드를 누빌 것이고, 심판의 질은 짧은 기간 안에 끌어올리기 힘들다. 모두가 인정하는 질 높은 판정과 경기 내용을 그라운드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함께 만들어가야 하는데 쉽지 않은 일이다. 어쩌면 영원히 해결되지 않을 과제일 수 있다. K리그뿐만 아니라 심판 판정에 의존하는 스포츠는 항상 심판과 판정에 대한 논란에 휩싸일 수밖에 없다. 심판도 인간이기에 완벽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침묵으로 일관한다면 더 큰 피해가 올 수 있다. 오심을 정당화 시킬 위험성이 내포돼 있다. 어떤 양심의 가책도 없이 심판의 권위만을 내세워 권력을 휘두를 수 있다. 누가 봐도 잘못된 판정, 눈치를 보는 판정이라면 문제가 있다. 그럴 경우 수면 위로 끌어올려 공론화를 시킨 후 자각하고 반성해야 한다. 완벽히 해결될 수는 없지만 '반짝 효과'라도 이끌어내 조금씩 개선시켜 나가야 한다.
최 감독이 전면에 나선 이유다. 누군가는 한 번 해야 할 일이었다. 심판을 겨냥한 최 감독의 독설로 인해 K리그 심판진 분위기가 잠시나마 달라질 수 있다. 자성의 노력을 할 것이고 질을 높이기 위해 더 열심히 최선을 다해 노력할 것이다. 불거진 문제에 대해 머리를 맞대고 토론하며, 반성의 목소리를 내며, 다시는 판정 시비가 나오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일 것이다. 또 다시 이런 문제가 드러나면 심판에 대한 불신은 극에 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최 감독 건을 계기로 얼마나 오랫동안 심판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지 않을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한 것은 심판들도 위기의식을 느끼고 소모적인 논란이 나오지 않도록 분위기를 다잡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최 감독의 한 마디는 심판들에게 경각심을 일깨워준 측면이 있다.
지난 2009년 8월, 당시 FC서울 감독이었던 세뇰 귀네슈 감독이 "오늘과 같은 심판들이 K리그 경기에 나선다면 한국축구는 더 이상 볼 필요가 없고, 앞으로는 야구만 봐야 할 것 같다. K리그에서는 심판 3명만 있으면 챔피언이 될 수 있다"는 극단적인 발언을 한 적이 있다.
2012년 4월, 당시 성남 일화 감독이었던 신태용 감독은 "심판 호각에서 경기가 엉망이 됐다. K리그가 더 발전하려면 심판진과 선수단 모두 하나가 돼야 한다"며 심판 판정에 불만을 나타낸 적이 있다.
두 감독 모두 각각 1천 만원, 500만원의 징계를 피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들 감독들의 일침으로 한동안 심판 판정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자각의 목소리, 반성의 목소리가 더 많이 나왔다. 이들 감독이 징계를 감수하면서 내지른 소리가 심판들의 마음에 울림이 있었기 때문이다. 누가 규정을 어기고 징계를 받고 싶어 하겠는가. 하지만 누군가는 규정을 어기면서 벌금을 내면서까지 이런 일들을 해야만 했던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28일 오전, 최강희 감독 발언에 대한 상벌위원회가 열린다. 최 감독은 징계를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최 감독은 규정을 어겼다. 최 감독도 알고 있다. 알고 있지만 할 수밖에 없었던 일이었다.
그렇기에 최 감독의 징계를 환영한다. 최 감독의 희생으로 당분간이나마 K리그 심판들이 경기에 더 집중하고 판정에 더 공정해지는 동기부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올 시즌 심판 판정 불만으로 인한 징계가 최 감독이 마지막이었으면 한다. 최 감독 징계의 '여운'이 최대한 길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조이뉴스24 최용재기자 indig80@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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