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양수기자] KBS 1TV 대하사극 '정도전'(극본 정현민 연출 강병택, 이재훈)은 매주 연기의 신(神)들의 향연이 펼쳐진다. 조재현, 유동근은 물론 최근 하차한 박영규, 서인석 등은 등장만으로 '미친 존재감'을 떨쳤다.
쟁쟁한 연기 선생님들 사이에서 연기력으로 재발견된 배우가 있다. 올해로 데뷔 10년 차를 맞이한 배우 박진우(31)다. 박진우는 극중 고려 최고의 출생 미스터리를 안고 있는 비운의 왕 우왕 역을 맡아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극중 우왕은 범상치 않다. 늘 술에 취한 듯 광기에 사로잡혀 있다. 눈은 반쯤 풀려있고 웃을 때는 발작을 일으키듯 자지러진다. 박진우는 우왕에 대해 "마음의 병을 가진 인물"이라고 설명했다. 왕가의 자녀로 태어났지만 신돈의 자식이라는 의심의 눈초리를 받아야만 했던 남자, 신분 컴플렉스로 스스로를 괴롭혔던 그는 결국 '폐가입진'으로 처절한 죽음을 맞았다.
우왕은 10회분에서 첫 등장했다. 그는 34회에 죽음을 맞기까지 매회 손에 땀을 쥐는 긴장감으로 촬영에 임했다. "처음 출연 제안을 받았을 당시만 해도 우왕의 비중이 이렇게 커질 줄 몰랐다"는 그는 "찌질하고 누군가에게 늘 끌려다니는 왕이라는 설명만 듣고 참여했는데 갑자기 분량이 늘어나더니 결국 인두로 스스로를 지지고 죽음을 맞이했다"고 말했다.
"대 선생님들 앞에서 연기를 하는 건, 하루하루 시험의 무대였어요. 연기 분량을 떠나 선생님들 연기에 피해가 가지 않아야 하니까 매번 긴장했죠. 나중엔 그 과정을 즐기고 재미를 느끼게 됐지만 그 때까지 수많은 멘붕을 겪었죠(웃음)."
특히 그는 극중 왕이고, 선배들은 신하였다. 그러다보니 그는 의자에 앉고, 선배들은 차디찬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 촬영에 임하는 경우가 자주 발생했다. 그는 "앉을 수도 설 수도 없는 상황이 너무 부담스러웠다"라며 "특히 내가 연기를 할 때면 선배들이 다 함께 지켜보고 계시는 경우가 많았다. 작품을 몇개 했지만 이렇게 긴장하고 내 숨소리가 크게 들렸던 적은 처음"이라고 회상했다.
2004년 '논스톱 시즌5'로 데뷔한 박진우는 이후 '불량가족' '비천무' '바람의 화원' '천추태후' 등 각종 드라마로 시청자들을 만났다. 하지만 귀공자처럼 고운 외모, 20대 못잖은 동안은 그를 고정적인 이미지에 가뒀다. 반복되는 캐릭터에 염증을 느낄 즈음 그는 홀연히 군대 행을 결정했다. 그리고 돌아오자 마자 대하사극에 도전했다. 그는 "'정도전'의 우왕은 탁월한 선택이었다"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늘 이미지에 갇혀 있었어요. 변신을 하고 싶었고, 그러기 위해서는 많이 배워야 했고, 사극이 딱 이라고 생각했어요. 젊은 배우들은 대하사극을 많이 꺼리는 경우가 많은데 저는 '정도전'을 통해 정말 연기 공부를 제대로 한 것 같아요. 촬영 현장에서는 공기 자체가 달라요. 엄숙하고 긴장감도 어마어마하죠. 연기를 처음 배우는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어요."
그는 '정도전' 출연 이후 수많은 사극에서 러브콜을 받고 있다. 최근엔 중국에서도 배우 박진우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그는 앞으로도 다양한 연기 도전을 꿈꾸고 있다.
"제 이미지와 정 반대 역할에 도전해보고 싶어요. 우왕이 불쌍한 인물이었다면, 이번엔 제대로 된 악역을 연기하고 싶어요. 좋은 캐릭터가 있다면 또한번 사극 도전도 환영이에요. 대신 이번엔 검술도 하고 활도 쏘고 말도 타는 다양한 모습을 선보여야죠."
조이뉴스24 김양수기자 liang@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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