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필기자] 홍명보호가 브라질월드컵 조별리그 러시아와 1차전을 치를 장소인 쿠이아바에 입성했습니다. 쿠이아바. 브라질 월드컵 조추첨이 끝나기 전까지 전혀 들어보지 못한 도시였습니다. 지인 중 쿠리치바에서 5년을 유학하고 온 동생이 있는데 '브라질에서 가장 깨끗하고 안전한 도시'라고 자랑을 해서 쿠리치바가 좋다는 얘기는 들었는데… 쿠이아바라?
그런데 쿠이아바가 한국-러시아의 첫 경기 장소로 결정된 순간부터 연구에 들어갔습니다. 인구 50만의 중소도시, 아마존의 남부에 위치해 있는 곳. 밀림도 있어서 황열병과 말라리아를 조심해야 한다는 권고에 따라 출장을 앞두고 황열 예방주사도 맞고 한 알에 4천원짜리인 말라리아 약까지 처방 받아 매일 한 알씩 복용하게 만든 도시입니다.
더욱 잊을 수 없게 만드는 것은 쿠이아바로 들어오는 과정이었습니다. 대표팀은 베이스캠프인 포스 두 이구아수에서 국제축구연맹(FIFA)이 제공하는 전세기를 타고 편안하게 두 시간 만에 쿠이아바까지 날아왔습니다. 브라질 축구협회 공식 항공사인 '골(GOL) 항공' 소속 항공편이었습니다.
따로 이동하는 취재진은 어떨까요. 늘 대표팀보다 앞서 움직여야 합니다. 그래서 15일 새벽(현지시간) 5시 반에 이구아수 공항을 출발하는 항공기에 오릅니다. 대표팀보다 무려 네 시간 반 빨리 이구아수를 떠났습니다.
이곳은 겨울이라 여전히 컴컴한 새벽의 공항에서 비행기에 올라 좌석에 앉자마자 잠에 빠져 듭니다. 한 시간 조금 넘게 날아갔을까요, 이구아수가 속한 파라나주의 주도인 쿠리치바에 도착합니다. 쿠리치바에서는 오전 7시36분 비행기로 갈아타고 쿠이아바로 향합니다. 아직 완공되지 않은 쿠리치바 공항 신터미널의 을씨년스러운 모습을 보며 서둘러 보안검색을 받고 비행기를 기다립니다.
그런데 한국 출발 전 미리 받아 본 스케줄표에는 쿠이아바로 가기 전 캄푸 그란데(Campo Grande)와 마링가(Maringá)를 거쳐 간다고 표시되어 있었습니다. 아니 국내선 비행기가 그리 먼 곳을 가는 것도 아닌데 경유를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한다는 것이 말이 되나 싶었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탑승하게 된 비행기가 쿠이아바가 최종 종착지가 아니라는 점이었습니다. 작은 도시 한 곳을 더 거친 뒤 잉글랜드-이탈리아전이 열렸던 마나우스까지 간다는 것입니다. 무슨 비행기가 시외버스도 아니고 뭐 이렇게 자주 멈추나 싶더군요. 한국에서 태국 방콕을 갈 때 홍콩이나 대만을 거쳐 갔던 기억이 떠올랐지만 어디까지나 국제선었습니다. 중국에서도 내륙 도시 몇 곳 정도는 그렇게 비행기가 경유한다는 얘기를 듣기는 했는데…
지인으로부터 브라질은 항공기 출발 게이트가 3분 전에도 바뀌니 조심하라고 했던 말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국내선이 여러 경유지를 거쳐 간다는 말은 하지 않아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가 그야말로 제대로 당황을 했습니다.
워낙 일찍 출발한 관계로 피곤해서 비행기에서는 꾸벅꾸벅 졸게 됩니다. 그런데 저절로 깰 때가 있습니다. 착륙할 때입니다. 맞습니다. 마링가와 캄푸 그란데에 도착했을 때입니다. 해당 도시에 도착하자 내릴 승객은 내리고 또 새로운 승객이 등장합니다. 운없게 도시마다 옆자리 승객이 바뀌어 기자는 계속 일어서야 했습니다. 복도쪽 좌석의 운명이니까요.
기자는 항공에 꽤 관심이 많아서 비행기 기종이나 취항 도시, 각종 서비스 등을 주의 깊게 살피는 편입니다. 독자 여러분들은 잘 모르실 수도 있겠지만 브라질은 항공기를 자체적으로 완전 제작할 수 있는 국가입니다. 엠브라에르(Embraer)라는 중소형 항공기 제작 회사가 있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고요.
항공 산업 발전은 경제 성장과도 맥을 같이 합니다. 브라질의 경제 성장이 계속되면서 항공 수요도 폭발적으로 늘고 있습니다. 물론 브라질 육로 교통이 부실한 것도 항공 산업의 발전을 가속화시키는 요인입니다. 브라질 교통부가 2011년에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도로 포장률은 70%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평균 60m마다 도로에 구멍이 나 제 속도를 내기가 어렵다는 통계까지 있습니다. 고속철도 도입 계획도 계획만 있을 뿐 기존 철도 연장도 하지 않는 상황이니 당연히 항공 수요가 폭발하게 됩니다.
브라질에는 한국으로 치면 대한항공 격의 땀(Tam) 항공, 아시아나 격의 골 항공, 저가항공으로 꼽히는 아줄(Azul) 항공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콜롬비아 국적의 아비앙카(Avianca) 항공도 브라질 국내선 시장 진출 확대를 노리고 있습니다. 항공사들간의 최대 격전지인 셈이죠. 아줄 항공이 엠브라에르사의 항공기를 집중 구매하면서 내수 산업을 키우는 역할도 합니다.
때문에 항공사들도 늘어나는 수요를 따라잡기 위해 브라질 정부의 시책에 편승하게 됩니다. 그렇게 해서 나온 것이 시외버스형(?) 국내선입니다. 워낙 국토가 넓으니 도시-도시간 왕복 운행으로는 중소 도시들의 항공편 수요를 충족시킬 수 없어 그렇다고 하네요.
브라질에서 32년을 거주한 교민 박현석(58) 씨는 "브라질 중소 도시는 항공기가 아니면 접근하기 어렵다. 다른 도시와 단절되는 곳도 많아 더 그럴 수밖에 없다. 대도시를 가기 전 어떻게든 최소 중소도시 한 곳은 거쳐간다. 어차피 목적지까지 가는 것이 정해져 있어서 누구도 뭐라 하지 않는다"라고 전했습니다.
어쨌든 오랜 비행 끝에 쿠이아바에 오전 10시30분께 도착을 합니다. 브릿지를 건너는 사이 항공기 한 대가 옆 트랩으로 접근하려고 합니다. 가만히 보니 한국대표팀이 탄 전세기였습니다. 취재진이 5시간 반이나 걸린 곳을 두 시간 조금 안되게 날아 온 것입니다.
대표팀이 부럽기는 했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월드컵 기간 동안 대표팀이 좀 더 오래 전세기를 더 많이 이용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전세기를 많이 이용한다는 것은 대표팀이 16강 이상으로 좋은 성적을 낸다는 것이겠지요. 꼭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기자는 새벽 비행기로 이동하는 횟수가 더 늘어나고 피곤해지겠지만 말입니다.
<⑥편에 계속…>
조이뉴스24 쿠이아바(브라질)=이성필기자 elephant14@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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