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필기자] 대한축구협회가 홍명보 대표팀 감독의 유임을 선택했다. 월드컵이라는 축구에서 가장 큰 대회에서의 실패를 개인의 경력 중 하나로 격하시키며 별 일 아닌 것처럼 넘기려고 하고 있다.
허정무 브라질월드컵대표팀 단장 겸 대한축구협회 성인 부문 부회장은 3일 홍 감독의 유임을 발표하면서 "홍 감독의 개인의 사퇴로 매듭짓는 것은 최선의 해결책이 아니라고 본다"라며 축구 인재를 보호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전했다.
홍 감독은 허 부회장의 부연설명처럼 4번의 월드컵에 출전하고 20세 이하(U-20), 아시안게임, 올림픽 대표팀 감독을 거친 한국축구 엘리트 중 엘리트다. 좋은 지도자 한 명이 한 팀을 먹여 살린다는 축구계 격언으로만 본다면 홍 감독에게 책임은 있어도 희생은 안된다는 논리와 묘하게 맞물린다.
월드컵 조별리그 3차전 벨기에전 패배로 한국의 탈락이 확정된 직후 홍 감독은 황보관 기술위원장에게 사의를 표명했지만 귀국 후 정몽규 회장의 설득에 마음을 바꿨다고 한다. 하지만, 이미 홍 감독에 대한 축구협회의 신뢰(?)는 그보다 앞선 2차전 알제리전 패배 이후부터 굳어져 있었다.
알제리전 패배 다음날 허 부회장은 취재진과 만나 "홍명보 감독과 코칭스태프가 정말 열심히 하고 있다. 밤늦도록 연구하고 공부한다. 선수들도 마찬가지다"라며 알제리에 2-4로 진 것은 아쉽지만 충분히 교훈을 얻었을 것이라고 적극 옹호했다.
알제리에 패함으로써 당시 한국의 16강 가능성은 희박했다. 자력으로 16강 진출이 불가능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축구협회에서 성인 부문을 관장하는 허 부회장의 이런 표현은 예사롭지 않았다. 월드컵 대표선수단 단장직도 맡고 있었다는 점에서 더 그랬다. 허 부회장은 "벨기에전에서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감독에 대한 꾸준한 신뢰가 필요하다"라며 16강 탈락 성적표를 받았을 때에도 홍 감독에 대한 믿음에 변화가 없을 것임을 시사했다.
이전 대표팀 감독들처럼 임기 내 중도 사퇴 내지는 해임이 답습되어서는 안된다는 말이나 다름 없었다. 또, 16강에 가지 못하더라도 홍 감독을 계속 신임하겠다는 밑밥을 뿌린 것으로 봐도 무방했다.
결국, 홍 감독은 혹독한 비판 여론 속에서도 결과에 대한 구체적인 책임을 지거나 재검증 과정 없이 협회 수뇌부들의 결정으로 유임이 됐다. 홍 감독 스스로 어떤 개선책을 제시하는 등 합리적인 설명이 필요한 상황이었지만 협회 수뇌부들이 결정하는 동안 뒤로 빠져 있었다. "성적이 좋지 않으면 물러난다"는 대표팀 감독 취임 당시 일성을 스스로 또 한 번 어기며 목숨처럼 여기던 신뢰에 금이 가는 소리를 외면했다.
허 부회장은 후배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자서전 제목 '도전하는 이는 두려워하지 않는다'처럼 악화된 여론을 두려워하지 않고 정면 돌파하겠다는 강수를 던졌다. 국민들의 여론이 어떻든지간에, 축구팬들이 요구하는 것이 무엇이든지간에, 축구협회의 '홍명보 감독 구하기' 작전은 예견됐던 대로 마무리한 셈이다.
조이뉴스24 이성필기자 elephant14@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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