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의기자] 양상문(53) LG 트윈스 감독이 대형사고를 쳤다. 시즌 도중 꼴찌였던 팀을 맡아 4위까지 끌어올리며 포스트시즌에 진출시키는 드라마를 써낸 것이다.
LG는 17일 사직구장에서 열린 롯데 자이언츠와의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5-8로 졌다. 하지만 5위 SK도 이날 넥센에 패하면서 LG의 4위가 확정됐다. 이로써 LG는 지난해 11년만에 포스트시즌 무대를 밟은 데 이어 2년 연속 가을잔치에 나서게 됐다.
양상문 감독의 지도력이 만들어낸 성과다. 양 감독이 부임하기 전까지만 해도 LG는 10승1무23패로 최하위에 머물고 있었다. 김기태 감독이 시즌 초반인 4월말 성적 부진을 책임지겠다며 돌연 자진사퇴하면서 팀은 큰 혼란 속에 빠져 있었다. 하지만 양 감독은 빠르게 팀을 정비해 나가며 순위를 끌어올렸다.
취임 당시 양 감독은 "승률 5할이 되기 전까지 홈런을 치고 들어오는 선수와 하이파이브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홈런이 나온 후에도 다음 상황을 머릿속에 그리며 준비하기 위한 이색 공약. 매 순간 순간 최선을 다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했다. 그만큼 양 감독은 치밀하게 경기를 관찰하고 분석했다.
양 감독의 치밀함은 특히 마운드 운용에서 잘 나타났다. 사령탑 부임 후 가장 역점을 둔 부분이 바로 마운드 정비. 양 감독은 "시스템을 확립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새로운 사령탑의 부임 아래 LG 투수들은 자신이 등판해야 할 때를 미리 정확히 알고 경기를 준비했다.
양 감독이 준비된 지도자로서의 면모를 보이는 사소한 장면이 하나 있다. 텀블러다. 양 감독은 부임 초 다른 감독들과는 달리 경기 중 물을 마실 때 텀블러를 사용했다. 병째로 물을 마시는 것이 밖에서 보기에 초조함으로 비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사령탑이 초조해 보이면 선수들도 급해진다. 감독이 어떤 상황에서든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지 않아야 선수들도 제 기량을 펼칠 수 있다. 양 감독은 작은 부분까지 치밀하게 준비하며 자신의 때를 기다려 왔고, 감독으로서 기회가 찾아오자 준비해온 부분을 서두르지 않고 하나하나 실행에 옮겼다.
이 밖에도 양 감독은 덕아웃에 '나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강하다'라는 문구를 내걸어 선수들의 자신감을 끌어올렸다. 또한 선발로 나서던 신인 임지섭의 등판을 중지시키고 2군에서 투구폼 교정 등 장기 육성 프로젝트를 가동했다. 그렇게 양 감독의 시야는 현재는 물론 팀의 미래를 대비한 포석에까지 미쳐 있었다.
지난 2005년 롯데 사령탑에서 물러난 양 감독은 2006년부터 방송 해설위원, LG 1군 투수코치, 롯데 2군 감독, 롯데 1군 투수코치, SK 인스트럭터 등을 거치며 8년 간 내공을 쌓았다. 롯데 감독 시절 2004년 최하위, 2005년 5위에 그쳤던 실패의 경험도 사령탑으로서 성장할 수 있는 자양분이 됐다.
양 감독은 공부하는 지도자로 유명하다. 현역 시절에는 이미 고려대학교에서 석사 학위를 따며 한국 프로야구 최초 '석사 출신 현역 선수'로 기록됐다. 영어에도 능통해 외국인 선수와의 미팅을 영어로 직접 할 정도다. 얼마 전 있었던 두산과의 벤치클리어링도 마야의 '스페인어 욕'을 알아들은 것이 발단이 됐다. 그만큼 양 감독은 스마트한 '지장(智將)' 이미지를 풍긴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반전 드라마를 써낸 양상문 감독이다. 하지만 양 감독의 도전은 끝나지 않았다. 19일부터 NC 다이노스와의 준플레이오프가 시작돼 우승을 향한 여정에 나선다. LG의 내년 시즌에 대한 기대감도 더욱 높아졌다. 공부하는 지도자, 준비된 지도자 양상문 감독이 명장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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