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용재기자] K리그에서 한 팀의 감독으로 선임돼 웃으면서 부임하는 이들은 많다. 하지만 지휘봉을 내려놓을 때 웃으면서 떠나는 감독은 드물다.
K리그의 냉정한 현실이다. K리그에서 감독 목숨은 '파리 목숨'이라고 불린다. 그리고 승강제가 실시된 이후에 이런 현실은 더욱 냉정해지고 있다. 성적을 내지 못하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팀을 떠나야 한다. 떠나는 감독에게는 그 어떤 예우도 없다. 새로운 감독을 선임해 그 사실을 알리고 취임식, 취임 기자회견을 여는데 바쁠 뿐이다.
그런데 올 시즌 전남 드래곤즈가 '이례적인' 행보를 보였다. 웃으면서 떠나는 감독을 탄생시켰다. 떠나는 감독에 대한 예우를 지켰다. 그리고 떠나는 감독과 함께 한 마음으로 신임 감독을 환영했다.
상위 스플릿에 속해 K리그를 주도하는 리딩 클럽도 아닌, 하위 스플릿에 속한 전남 드래곤즈가 K리그 전체에 건강한 메시지를 던진 것이다. 전남이 다른 클럽은 쉽게 할 수 없는 모범, 그것도 '아름다운 모범'을 보인 것이다.
지난달 29일 광양 필레모 호텔에서는 '전남 드래곤즈 감독 이·취임식'이 열렸다. 8대 사령탑 하석주 감독이 올 시즌을 끝으로 전남 지휘봉을 내려놓았고, 수석코치였던 노상래 코치가 지휘봉을 넘겨받아 전남의 9대 감독으로 올라섰다.
감독 이·취임식은 K리그에서 이례적인 일이다. 특히 떠나는 감독과 웃으면서 이별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그런데 전남이 이런 일을 했다. 전남은 올해 목표로 잡았던 상위 스플릿에 진출하지는 못했지만 부임 당시 꼴찌팀을 맡아 최고의 다크호스 팀으로 변모시킨 하석주 감독에 대한 고마움을 전한 것이다. 지난 2년 반 동안 고생한 노고를 치하한 것이다.
박세연 전남 사장은 "하석주 감독이 2년 반 동안 정말 고생이 많았다. 전남을 다른 팀으로 변화시켰다. 그리고 함께 고생한 전남의 레전드 노상래 감독이 9대 감독으로 선임됐다. 이취임식을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고, 앞으로도 전남 감독 이취임식은 계속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 감독의 후임으로 외부 인사가 아닌 수석코치였던 노상래 코치를 선임한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이 역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전남 레전드 출신에 하 감독과 함께 고생하고 고민하고 노력한 과정을 인정한 결실이었다. 외부 인사보다 팀 사정을 가장 잘 알고 있고, 팀이 성장하는 과정을 지켜봐 온 노 감독이 제격이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전남은 개인 사정으로 팀을 떠나게 된 하석주 감독의 후임으로 노 감독의 선임을 속전속결로 발표했다. 시간을 끌다보면 여러 가지 혼란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남 감독을 원하는 이들은 많다. 이미 몇 장의 이력서도 전남으로 왔다고 한다. 여기저기서 전남에 대한 애정과 감독직에 대한 의지 공세를 벌이고 있었다. 전남은 이런 혼란을 막기 위해 재빨리 노 감독을 선임했다.
이·취임식에서 하석주 감독이 그동안 매던 전남의 상징인 '노란 넥타이'를 전해 받은 노상래 신임 감독은 "2015년 전남을 K리그 중심에 서도록 하겠다"며 다부진 포부를 밝혔다. 이어 노 감독은 "하석주 감독님이 갑작스럽게 지휘봉을 넘기셔서 책임감과 부담감이 크다. 감독님이 조금은 원망스럽기도 했다. 그렇지만 최선을 다해 하 감독님이 뿌려 놓은 씨를 꽃 피우도록 노력할 것"이라며 의지를 다졌다.
감독 이·취임식, 그리고 수석코치에게 지휘봉을 넘겨준 것, 이는 축구계에 좋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다른 구단도 배워야 할 모범을 제시하고 있다.
하 감독은 "이·취임식도 획기적인 일이다. 또 수석코치에게 물려주고 떠나는 것도 긍정적인 일이다. 이전에는 거의 없었던 일이다. 축구계에 좋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한 선배 감독께서도 '선배들도 이런 것들을 배워야 한다'고 하셨다. 전례가 없는 일을 했다고 칭찬도 하셨다"며 자긍심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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