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태기자] 허를 찔린 것일까 아니면 의도적이었을까.
베테랑 셋업맨 정재훈을 롯데 자이언츠에 빼앗긴 두산 베어스의 결정에 의문이 뒤따르고 있다.
불펜이 두산의 가장 허약한 부분이라는 점에서 베테랑 구원요원을 그냥 내준 게 좀처럼 이해되지 않는다는 시각이 팽배하다.
정재훈의 이탈로 두산은 당장 다음 시즌 불펜진 구성부터 고민거리로 떠올랐다. 롯데는 두산에 합류한 FA 장원준의 보상선수로 9일 정재훈을 선택했다.
◆불펜 약한데 왜 정재훈을…
구원진은 최근 몇년간 두산의 고질적인 약점이었다. 믿음을 주는 확실한 마무리가 없었던 데다 클로저를 받쳐줄 승리조도 상황에 따라 돌려쓸 만큼 힘든 시즌을 치러왔다. 이 가운데에서 정재훈의 존재감은 무시할 수 없었다. 지난해 55경기(52.1이닝)서 중간계투와 임시 마무리를 오가며 4승1패 14세이브 평균자책점 3.44로 안정감을 보여줬다. 특히 피OPS 0.596에서 알 수 있듯 세부내용이 무척 좋았다.
올 시즌에는 뚜렷한 타고투저 흐름 속에 평균자책점이 5.37로 치솟았지만 9이닝당 탈삼진 9.39로 오히려 수치상 공의 위력은 좋았다. 54경기 53.2이닝으로 투구 이닝도 지난해와 거의 같았다. 올해 34세이지만 꾸준함과 스태미너는 여전했다.
정재훈의 이탈은 두산도 크게 예상하지 못한 부분으로 보인다. 외야수와 선발투수 보강이 시급한 롯데가 30대 중반의 구원투수를 선택하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러나 롯데는 즉시 전력감으로 쓸 수 있는 정재훈의 이름이 눈에 띄자 두산의 뒤통수를 때리며 과감하게 그를 지명했다.
이번에도 두산 측은 롯데의 '성동격서'에 허를 찔린 표정이다. 책임있는 관계자들은 외부와 접촉을 피하며 구체적인 언급을 피하고 있다. 누구보다 실망감이 클 정재훈도 좀처럼 외부의 연락에 응하지 않으며 침묵모드에 접어든 상태다. 휘문고-성균관대 출신인 정재훈은 지난 2003년 두산에 입단한 뒤 11년간 한 팀에서만 활약한 '뼛속까지 서울맨'이다. 갑작스런 롯데 이적으로 그는 생각지도 못한 부산행 이삿짐을 급히 꾸려야 할 상황이다.
◆'세대교체 작업의 일환' 시각도
한편으로는 지난해 본격적으로 시작된 두산의 세대교체 작업의 일환이라는 시각도 있다. 두산은 지난해 김선우(은퇴), 임재철(롯데)와 결별했고, 이종욱·손시헌(이상 NC), 최준석(롯데)과 FA 계약을 포기했다. "잘 나갈 때 미래를 대비해야 한다"는 게 당시 두산이 내세운 '결별의 이유'였다.
이들에 이어 또 다른 30대 고참인 정재훈을 이번 겨울 20인 보호선수 명단에서 제외한 것은 결국 젊은 선수들 위주로 투수진도 재편한다는 의미라는 것이다. 구단 주위에서는 후자쪽에 방점을 두는 시각도 꽤 많다.
의도했든 그렇지 않든 두산은 다음 시즌 새롭게 불펜의 판을 짜야 한다. 그렇지 않아도 마무리 이용찬이 상무에 입대한 상황에서 정재훈마저 빼앗겨 김태형 감독의 고민이 무척 커졌다. 니퍼트와 마야 동시 재계약을 추진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외국인 투수 수급 전략의 수정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게 됐다.
특별한 불펜 보강이 없다면 결국 가진 자원으로 다음 시즌을 꾸려야 한다. 이현승. 윤명준, 오현택, 변진수, 함덕주 등 기존 불펜진에 최근 3년간 풀타임 선발투수로 활약한 노경은의 보직 변경 여부도 주목된다. 불펜에 구위가 좋은 우완 정통파 투수가 없다는 점에서 노경은의 불펜 이동 가능성도 현재로선 예상해 볼 수 있는 하나의 시나리오다.
'불펜 터줏대감' 정재훈의 이적으로 두산이 또 한 번 몸살을 앓고 있다.
조이뉴스24 김형태기자 tam@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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