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필기자]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를 벤치마킹해 도입하며 환영을 받았던 프로축구 25인 로스터제가 조용히 폐지됐다.
한국프로축구연맹은 19일 2015년 제1차 이사회와 정기 총회를 갖고 25인 로스터제를 폐지하기로 했다. 제정 당시와 적용 시점상의 축구계 환경 차이가 발생했다는 이유에서다. 25인 로스터제는 지난 2012년 10월 K리그 8차 이사회에서 통과된 안건으로 올해부터 시행 예정이었다.
2010~2011 시즌 프리미어리그 사무국은 각 클럽이 시즌 시작 전 제출한 25명의 1군 선수로 다음해 1월까지 경기를 치르기로 결정했다. 25명 중 8명은 잉글랜드나 웨일스 클럽에서 3년 이상 활동을 해온 21세 이하 선수로 구성하고 부상 선수가 생기면 21세 이하 선수로만 교체할 수 있다. 잉글랜드 대표팀의 경쟁력이 떨어지면서 프리미어리그에서 자국 출신 선수를 육성하기 위해 도입한 제도다.
프로연맹은 이 제도를 도입하면서 구단과 계약한 선수라도 25인 로스터 안에 들어가지 못하면 경기를 뛸 수 없도록 했다. 프로 산하 유스 선수, 23세 이하 선수는 예외로 적용했지만, 결과적으로 25인 로스터에 들지 못하면 프로로서의 가치가 없는 선수로 전락하게 되는 셈이었다.
당시 프로연맹은 25인 로스터 도입으로 구단의 재정 건전성 강화가 이뤄질 것으로 예측했다. K리그 구단들의 운영자금이 대부분 자치단체나 모기업 의존도가 심화된 상황에서 인건비를 절감해 구단 운영에 숨통을 틔워주겠다는 의도도 있었다.
실제 K리그 구단들의 선수단 규모는 국내 실정상 과한 측면이 있었다. 40명 안팎의 선수단으로 구성된 구단이 있었는가 하면 50명까지 육박하는 구단도 있었다. 지난해를 마지막으로 폐지된 신인드래프트가 끝난 뒤 번외지명으로 1~2명씩 추가 지명을 해 교묘하게 선수를 양산하는 경우도 있었다.
제도 도입 결정 당시 프로연맹이 파악한 K리그 평균 선수단 규모는 36~38명 선이었다. 이 중 1분 이상 정규리그에 나선 인원은 25명 수준이었다. 나머지 선수들은 훈련만 하다가 경기를 뛰어보지 못하고 팀을 떠나야 할 처지였다. 일본 J리그 평균인 28명보다 10명 가까이 많았다.
그런데 2년 사이 여러 외부 요인으로 구단들의 재무구조 개선 노력이 이어지면서 25인 로스터제는 폐지 절차를 밟게 됐다. 프로연맹 관계자는 "각 구단에서 일정 수준의 선수단 규모를 유지하는 등 나름대로 자정 효과가 있었다. 더는 선수단을 늘릴 구조가 아니라는 측면도 반영이 됐다. 구단에서도 적극적으로 폐지를 요청했다"라고 전했다.
무엇보다 학원팀 출신 선수들에게 취업의 문을 열어주려는 측면도 있다. 지난 2년 사이 선수단 축소로 각 구단은 유스팀 출신 선수 중심의 선수 선발을 했다. 취업난이 심화되니 프로에서 뛰기를 원하는 선수들이 내셔널리그나 챌린저스리그 또는 일본, 중국 등 해외로 눈을 돌리는 경우가 많았다. 로스터제 폐지로 다양한 선수 선발 기회가 늘 것으로 보인다. 동시에 클럽 산하 유스팀 육성은 더욱 강화될 전망이다.
하지만 학원 축구 지도자들의 눈치를 본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실제 지난달 26일 지도자 중심으로 구성된 한국축구인노동조합은 축구협회 앞에서 관련 시위를 벌였다. 프로축구 유스팀에만 특혜를 주지 말라는 내용이었다. 25인 로스터제도가 궁극적으로 학원 축구를 고사 위기에 빠트린다는 것이다. 이들은 각 구단에도 전방위적으로 25인 로스터제도 폐지 목소리를 낸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시위에 참가했던 익명의 학원 지도자 A씨는 "이미 유소년 축구는 프로 산하 유스팀이 각종 대회 우승 등을 휩쓸며 전력상 우위에 있다. 학원 스포츠는 성적을 내며 선수를 배출해야 하는데 이를 대한축구협회와 프로연맹이 내버려두고 있다. 드래프트 제도마저 폐지된 상황에서 내세울 것이 뭐가 있겠느냐"라고 불만을 터뜨렸다.
프로연맹은 25인 로스터제 폐지와 함께 유스팀은 기존 하계 고등전국대회에 나서지 않기로 하는 등 많은 양보를 했다. 학원 축구와 공생을 하자는 것이 골자다. 이제 구단들 스스로 외부의 부당한 선수 선발 압력을 견디고 공정하게 선수단 구성을 하는 일만 남은 셈이다. A구단 사장은 "이미 선수단 숫자가 많이 줄어서 좋은 선수만 프로에 입문하는 환경이 됐다. 일부 지자체의 간섭이 심한 시도민구단만 중심을 잡아주면 문제는 없을 것 같다"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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