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필기자] 2010 남아공월드컵을 앞두고 한국 축구대표팀은 그 해 5월 오스트리아 노이슈티프트에서 1차 전지훈련을 했다. 시차가 남아공과 똑같은데다 아르헨티나와의 조별리그 2차전이 열리는 요하네스버그의 고도가 1천753m였던 것을 고려해 1천40m인 노이슈티프트에서 고지대 적응 훈련을 했다.
고도가 100m 올라가면 산소 분압은 1.13%씩 줄어든다. 산소 섭취 능력도 떨어지게 된다. 남미의 볼리비아가 3천600m나 되는 라파스에서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 강팀을 상대로 쉽게 지지 않는 것도 고지대 적응에 큰 차이를 보이기 때문이다.
역으로, 산소가 부족한 고지대에서 훈련을 하면 저지대에서는 좀 더 편안하게 경기를 치를 수 있다. 남아공월드컵 당시 대표팀의 고지대 전지훈련 효과는 저지대였던 포트 엘리자베스(그리스 2-1 승리)와 더반(나이지리아 2-2 무승부)에서 1승 1무라는 결과로 나타났다. 아르헨티나가 1차전을 요하네스버그에서 치러 고지대에 적응된 상태에서 한국과 2차전을 연전으로 치렀다. 워낙 기량 차도 나는데다 상대적으로 여건도 불리했던 한국은 1-4로 패배했지만 그리스와 나이지리아전을 잘 치러 원정 월드컵 첫 16강 진출이라는 성과를 냈다.
그동안의 스포츠 과학 이론에서는 1천m는 넘어야 고지대 훈련 효과가 나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1천m 이하는 평소와 비슷해 힘들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체력보다 볼의 회전 속도가 더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그렇다면 해발 400m 정도는 고지대로 분류될 수 있을까. 이 높이를 놓고 수원 삼성의 전지훈련이 진행 중인 스페인 말라가에서 짧고 굵은 논쟁(?)이 벌어졌다.
말라가는 지중해와 맞닿아 있지만, 북쪽으로는 말라가산맥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다. 최저 높이가 91m지만 최고 높이는 1천31m나 되는 말라가산맥을 넘어야 론다, 마드리드 등 다른 도시로 갈 수 있다.
수원의 전지훈련장인 알하우린 골프 리조트는 해발 430m 정도에 자리 잡고 있다. 말라가에 온 다른 팀들이 해안가를 낀 훈련장에서 하는 것과는 다른 환경이다. 게다가 산 중턱이다 보니 바람까지 적잖이 분다. 예년보다 더 강한 바람이라고 한다. 수원 지원스태프는 "현지인들에게 물어보니 올해 1월 초에 눈이 왔다고 하더라. 몇십 년 만에 보는 눈인지 모를 정도였다고 한다. 다른 해보다 바람도 강한 편이라고 했다"라고 전했다,
하지만, 어느 정도 높은 곳에서 훈련하니 낮은 곳에서 주로 경기를 치르는 K리그에서는 충분히 힘을 낼 수 있지 않으냐는 말이 나왔다. 신범철 골키퍼 코치는 "고지대에서 훈련하니까 평지에서는 좀 더 쉬울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이 말을 들은 서정원 감독은 가만히 생각하다 고도보다는 세차게 부는 바람에 적응한 선수들이 정상적인 기후에서는 더 좋은 경기를 펼칠 것이라는 다른 의견을 냈다. 서 감독은 "바람이 너무 불어서 원하는 경기 운영에 애를 먹고 있지만 잘 해내고 있다. 이런 부분에 적응을 해내면 실전에서는 더 잘하지 않을까 싶다"라고 말했다.
실제 지난 5일(한국시간) 자비차 비드고슈(폴란드)와 연습경기에서는 유독 수원이 수비할 때 불리한 방향으로 강풍이 불었다. 골킥을 찬 것이 맞바람 때문에 수원 진영으로 휘어져 떨어지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도 수원은 3-0으로 승리하는 좋은 경기 내용을 보였다.
고도와 바람을 두고 이런저런 주장이 오가는 와중에 이병근, 최성용, 고종수 코치는 각각 침묵과 웃음으로 중립(?)을 지켰다. 리호승 사무국장만 "이 정도 높이가 무슨 고지대입니까. 차이 없어요"라고 칼같이 선을 그었다. 그러자 신 코치는 "선수들이 느끼는 것은 다르다. 분명 차이가 있다"라고 재반박했다.
어쨌든 평지가 아닌 산중 훈련을 하는 수원이 올 시즌 정규리그, FA컵,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에서 두루 좋은 성적을 내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긴 재미난 논쟁이었다. 수원은 우승컵을 꼭 한 개는 들어올리겠다는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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