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양수기자] 방송 관계자들 사이에서 '넘사벽'으로 불리는 프로그램이 있다. 월요일 밤 10시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KBS 1TV '가요무대'다. 지난 40년간 흘러간 노래로 추억과 향수를 자극해 온 '가요무대'는 동시간대 드라마의 가장 강력한 경쟁자다. 충성도 높은 시청자들 덕에 '가요무대' 앞에서는 인기 드라마도 맥을 못추린다.
지난해 종영한 MBC '오만과 편견'의 최민수는 "'가요무대'와 경쟁한다는 말이 처음에는 우스웠다. 하지만 최근 분위기를 보니 이렇게 생각할 것이 아니구나 싶다"고 밝히기도 했다.
지난 2일 방송된 KBS 1TV 'KBS 공사창립 특집 콘서트 이미자 장사익' 역시 드라마를 제압했다. 이날 '특집 콘서트'는 전국 시청률 20.1%(닐슨 코리아 기준)를 기록하며 압도적 1위를 차지했다. 두자릿대 시청률도 힘겹다는 지상파 평일 밤시간대 거둔 쾌거다. 특히 4.1%를 차지한 동시간대 드라마 '블러드'(KBS 2TV)와는 5배 가까이 격차를 벌렸다.
지상파 시청층이 고령화 되면서 평일 미니시리즈에 변화 조짐이 보이고 있다. 추억을 자극하는 복고풍 드라마가 인기를 끈 데 이어 이번엔 가족극이 찾아왔다. 로맨스 일변도의 평일드라마에 변화가 생길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시작은 지난달 첫 방송된 KBS 수목드라마 '착하지 않은 여자들(이하 착않녀)'(극본 김인영 연출 유현기 한상우)이다. '착않녀'는 여성 3대의 사랑과 성공, 행복찾기를 그린 전형적인 가족극.
그간 가족극은 평일 일일극과 주말극에서 자주 봐오던 바, 성공가능성에 반신반의하는 시선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착않녀'는 우려를 단숨에 날렸다. 시청자들의 입소문이 이어지며 방송 3회만에 두자릿대 시청률(11.8%)을 찍었다. 드라마 제작발표회 당시 "시청률을 높이려 (가족극을) 편성했다"던 유현기 PD의 너스레가 맞아 떨어지는 형세다.
물론, '착않녀'의 성공은 조주연배우들의 호연, 완성도 높은 대본,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연출 등 3박자가 고루 맞아 나타난 결과물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시청률 상승세의 이유를 모두 설명하기 힘들다.
'착않녀'는 TV의 주요시청층인 중장년 시청자를 품었다. 다양한 루트로 방송을 접하는 젊은이들과 달리 중장년층은 여전히 TV 앞에 앉아 리모콘을 두드리는 지상파TV를 선호한다.
특히 '착않녀'는 중장년층의 입맛에 딱 맞게 조리됐다. 김혜자, 채시라, 도지원, 이순재, 장미희 등 주요배역만 봐도 그렇다. 중장년층은 익숙하고 친숙한 배우들을 보기 위해 TV 앞으로 모여든다. 이들의 구멍없는 연기력 역시 시청자를 유입하는 비결이다.
또한 드라마는 현재와 과거를 넘나드는 구성으로 시청자들의 추억과 향수를 자극한다. 지난 4회 방송에서는 1980년대를 풍미한 팝스타 레이프 가렛이 등장해 7080세대들을 추억에 젖게 했다. 이 외에도 음악다방, 석탄난로, 양갈래 머리와 80년대 교복 등 과거 소품을 드라마 곳곳에 배치하고, 추억의 명곡을 배경음악으로 깔아 눈과 귀를 사로잡고 있다.
시청자들은 '오랜만에 가족들끼리 둘러앉아 볼 수 있는 평일 드라마 반갑다' '엄마와 함께 깔깔대며 시청했다' '초호화 캐스팅에 반전 스토리, 주말드라마 버금가는 시청률 대박을 기대한다' '탄산수 대사에 통쾌한 스토리'라며 뜨거운 반응을 보이고 있다.
'착않녀'는 로맨스 아니면 로맨틱코미디로 획일화된 평일 미니시리즈에 색다른 바람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그런 점에서 '착않녀'와 같은 시도는 반갑다. 일부 시청자들의 바람처럼, '착않녀'가 평일 밤에 '주말극' 시청률을 거머쥘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조이뉴스24 김양수기자 liang@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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