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태기자] 5일 잠실구장. LG 트윈스와 어린이날 맞대결을 앞둔 두산 덕아웃엔 묘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화요일 낮 2시, 화창한 봄 날씨에도 어디인가 침울했다. 이유를 짐작할 만했다. 주말 선두 삼성과의 대구 3연전서 2패(1경기는 우천취소)를 하고 우울하게 올라왔다.
주축 셋업맨 김강률이 왼발목 아킬레스건 파열로 시즌아웃됐고, '주포'로 영입했던 루츠는 결국 한 달여만에 퇴출됐다. 84억원을 주고 영입한 거물 좌완 장원준은 왼팔꿈치 통증으로 1군 명단서 제외됐다. 다행히 장원준은 MRI 검사 결과 큰 이상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지만 두산으로선 요 며칠 사이 악재가 한꺼번에 닥친 듯했다.
'5월 위기설'이 구단 주위를 감돌 무렵 만난 LG. 만약 첫 경기를 패한다면 반등이 쉽지 않을 위험성 마저 있었다. 최근 3연패로 역시 부진한 LG이지만 올 시즌 두산과의 3차례 만남에선 2승1패로 우위를 점했다. 특히 부진하던 타선이 두산 투수들만 만나면 물만난 제비처럼 불방망이를 휘둘렀다.
여로모로 쉽지 않으리라던 경기는 그러나 뚜껑을 열자 김빠진 콜라처럼 밋밋했다. 두산이 LG를 10-3으로 완파하고 짜릿한 승리를 챙겼다.
위태로웠지만 6이닝 동안 마운드를 지키며 실점을 2로 억제한 유희관, 5회 장쾌한 좌월 투런포를 쏘아올린 민병헌 등이 수훈선수로 우선 꼽히지만 역시 승리의 원동력은 7∼9번 하위타선에 있었다.
이들의 활약은 잠실구장에 시종 내리쬐는 햇살처럼 눈부셨다. 두산이 0-1로 쫓기던 4회말 이들의 활약이 시작됐다. 김현수의 2루타, 양의지의 볼넷에 이어 홍성흔이 투수앞 안타로 조성된 무사 만루. 7번타자 정수빈은 상대 선발 루카스로부터 1루 땅볼을 쳐내 동점타점을 올렸다. 김재환의 볼넷에 이어 1사 만루서 들어선 김재호는 우측 큼직한 희생플라이로 경기를 뒤집었다.
이들 트리오의 활약은 두산이 대거 8득점한 5회말 더욱 빛났다. LG가 5회초 박용택의 적시타로 동점을 만들자 두산 타선이 탄약을 장전하기 시작했다. 상대 선발 루카스가 흔들리며 내리 사사구 3개를 허용했다. 무사 만루에서 또 좌타석에 나선 정수빈은 깨끗한 좌전안타로 3루주자 김현수를 불러들였다.
후속 김재환은 질세라 2타점 우전안타로 화답했고, 김재호는 좌중간을 완전히 가르는 2루타로 정수빈과 김재환읠 득점을 이끌었다. 이 당시 스코어가 7-2. 사실상 이들 3명의 방망이로 승부를 가른 셈이었다. 후속 민병헌의 좌월 투런홈런은 승리를 확인하는 쐐기 축포였다.
이날 경기 전까지 이들 하위타선의 활약은 다소 아쉬운 감이 있었다. 개인 최고 시즌을 향해 달려가는 김재호만 타율 3할3푼8리 1홈런 10타점으로 펄펄 날았을 뿐 정수빈과 김재환은 기대에 다소 미치지 못했다. 정수빈은 25경기서 타율 2할7푼 도루 2개, '거포 1루수'로 각광받은 김재환은 17경기서 타율 2할3푼5리 2홈런 5타점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날은 달랐다. 팀이 가장 절실할 때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최고의 활약으로 저마다 팀 승리의 공신 역할을 톡톡히 했다. 정수빈-김재환-김재호로 이어지는 두산 하위타선은 이날 12타수 5안타 7타점을 합작했다.
김태형 두산 감독은 "김재호가 9번타순에서 찬스를 잘 만들어주고 있다. 덕분에 1번 민병헌에게 기회가 많이 생긴다"고 말한다. 이날은 정수빈, 김재환, 김재호 모두가 찬스메이커는 물론 해결사의 능력까지 한꺼번에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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