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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필의 NOW 프라하]①27명 팬 앞에 선 슈틸리케의 '소통'


스페인전 대패에 실망한 팬들에게 솔직한 고백, 체코전 응원 부탁

[이성필기자] 한국 축구대표팀이 스페인에 1-6으로 크게 졌던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를 떠나 체코와의 두 번째 평가전을 치르는 체코 프라하에 2일(한국시간) 입성했습니다. 스페인전의 충격이 워낙 컸기 때문인지 잘츠부르크 공항에서 만난 선수들에게 가벼운 인사를 건네도 쉽게 미소를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공격수 황의조(성남FC)도 스페인전에서 자신의 아쉬웠던 슈팅이 머릿속에 남았는지 기자를 보면서도 쉽게 말을 꺼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잠시 뒤 한국선수단 분위기가 조금은 달라졌습니다. 팬들이 다가서면서 온기가 돌더군요. 이번 스페인-체코 원정 2연전에는 한국에서 무려 300만원 가까운 비용을 들여 원정 응원을 온 27명의 팬이 동행 중입니다. 잘츠부르크에서 프라하로 이동하는 전세기에 선수단과 함께 타는 행운도 누렸습니다.

보통때라면 기자도 팬들에게 선수단과 함께 이동하는 느낌 등을 물었을 겁니다. 흔히 있는 일은 아니니까요. 하지만, 이번에는 가만히 지켜봤습니다. 너무나 큰 점수차 패배에 팬들은 어떻게 반응을 할까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불과 2년 전, 브라질 월드컵을 치르고 온 대표팀에 실망한 팬이 엿을 던지는 일이 있었고 실제 스페인전에서 뛰었던 다수의 대표선수가 이를 직접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초등학생부터 나이 지긋한 60대 어르신까지 다양한 연령대가 섞인 원정 응원단은 선수들에게 사인 등을 요구하면서 격려의 메시지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괜찮다"는 말부터 "체코전에서 보여달라"는 응원까지 다양했습니다.

이런 소중한 팬들을 '소통'에 정평이 나 있는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그냥 지나치지 않았습니다. 공항 탑승구 앞에서 팬들과 만나 스페인전에 대한 상황을 설명하고 팬들에게 직접 이해를 구했습니다.

팬들은 바로 앞에서 통역을 통해 슈틸리케 감독의 말을 들었습니다. 슈틸리케 감독은 "여러분들이 정말 실망하셨을 것으로 생각한다. 큰 돈을 들여 휴가를 즐겁게 보내기 위해 오셨는데 우리가 제대로 해드리지 못해서 안타깝다"라고 미안한 마음을 나타내더군요.

실망했을 팬들을 위해 슈틸리케 감독은 "여러분들께 가장 죄송스러워하는 것은 선수들이다. 전세기 편으로 선수들과 프라하에 가는데 (팬분들도) 각자의 의견이 있을 것이다. 어떤 의견이라도 좋지만 선수들의 마음도 알아주셨으면 한다"라며 충격을 받았을 팬심을 누그러트리기 위해 애를 쓰는 모습이었습니다.

뭐랄까, 좀 오묘한 장면이었습니다. 대표팀 감독이 일반팬과 직접 대면해 대화를 나누는 것은 쉽게 보기 어려운 일이니까요. 그러나 독일 출신이고 스페인에서 뛰었던 슈틸리케 감독에게는 익숙한 일이기도 합니다. 유럽에서는 팬들이 자비를 들여 원정 응원을 가는 문화가 워낙 발달하다보니 팬심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나 봅니다. 대표팀 스태프로부터 팬 동행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슈틸리케 감독은 직접 대화를 요청했다고 합니다.

프라하 도착 후 취재진과 만난 슈틸리케 감독은 30분 가까이 자신의 생각을 먼저 이야기했습니다. 스페인과의 차이부터 한국 축구의 구조적인 문제까지 가감없이 쏟아내더군요. 듣기에 따라서는 해석을 다르게 할 수 있는 발언들도 있었습니다. 이를테면 "골키퍼 5명, 수비수 6명을 세워 놓아도 스페인을 이기기 어려웠을 것이다"라는 식의 비유입니다. 같은 말을 한국인 감독이 했다면 아마 여론의 질타에 또 시달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러나 공감이 되는 부분도 있었습니다. 익숙하지 않은 강한 상대와 싸워 선수들이 당황하고 스스로 무너졌다는 것, 예술가처럼 뛴 스페인과 달리 우리는 노동자처럼 뛰는 모습을 보여줬다는 진단 등입니다. 세대와 환경이 변하고 있는데도 여전히 많이 뛰는 축구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 한국 축구에 대한 아픈 일침처럼 들렸습니다.

슈틸리케 감독은 선수단과 오는 5일 체코전에서는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체코전은 향후 대표팀의 유럽 원정 평가전 빈도를 결정하는 무대가 될 것 같습니다. "체코전에서 스페인과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면 현재의 대표팀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비슷한 흐름으로 전개가 된다면 정말 강한 팀 말고 국제축구연맹(FIFA) 15위권 내외의 팀과 싸워 수준을 쌓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라며 분명한 과제가 있음을 강조했습니다.

소통을 통해 체코전에 대한 목표의식과 메시지를 전한 슈틸리케 감독과 선수단이 얼마나 달라진 모습을 보여줄 지 궁금해집니다. 지금은 위기 극복의 노하우를 스스로 만들어야 할 때니까요.

조이뉴스24 프라하(체코)=이성필기자 elephant14@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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