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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행', 어쩌면 공유의 성장기(인터뷰)


"천만 흥행, 한 번도 상상해본 적 없다"

[권혜림기자] 돌이켜보면 공유의 성장은 꾸준했다. 2000년대 초, 근사한 외모와 다정다감한 매력을 내세워 청춘 스타 타이틀을 꿰찬 그는 학원물과 로맨틱 코미디물을 누비며 활약을 이어갔다. 장난꾸러기 같은 미소 뒤, 이유 모를 아픔을 감춘듯한 눈빛은 종종 연민을 자아냈다.

MBC 드라마 '커피프린스 1호점'(2007)의 인기는 톱스타 공유의 입지를 굳힌 결정적 사건이었다. 신드롬급 인기를 얻었던 이 드라마를 통해 공유는 로맨스물에 최적화된 연기자임을 재입증했다. 달콤하고 사랑스러운 기운을 풍기는 로맨틱 코미디 장르는 그에게 더없이 어울리는 맞춤 옷처럼 여겨졌다.

2009년 군 복무를 마치고 로맨스 영화 '김종욱 찾기'(2010)에 출연했을 때만 해도, 공유의 행보는 '가장 잘 하는 것'을 살려 컴백한 여느 인기 스타들의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안주하는 법을 몰랐다. 차기작은 장애 아동 학대 실화를 다룬 영화 '도가니'(2011)였다. 낯선 도전을 감행한 그는 한층 더 넓고 깊은 감정을 그려내는 데 성공했다.

한 뼘 넓어진 연기 스펙트럼을 바탕으로, 공유는 풍성한 필모그라피를 완성해갔다. 특기인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와 영화는 물론이고, 액션물 '용의자'(2013)와 정통 멜로 '남과 여'(2016) 등으로 관객을 만났다.

그리고 이번엔 '부산행'(감독 연상호, 제작 ㈜영화사 레드피터)이다. 한국 영화 역사상 시도된 적이 없는 좀비 블록버스터물이다. 전대미문의 재난이 대한민국을 뒤덮은 가운데, 서울역을 출발한 부산행 KTX에 몸을 실은 사람들의 생존을 건 치열한 사투를 그린다.

극 중 가족보다 일이 더 우선이었던 펀드매니저 석우 역을 맡아 캐릭터의 변화를 그려낸 공유는 어쩌면 인물과 함께 성장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연기 경력 15년, 비로소 도전과 모험의 재미를 즐기게 된 공유는 여전히 자라고 있었다.

이하 공유와의 일문일답

-첫 좀비 블록버스터물인 '부산행'을 촬영하며 이전 작품들과 다른 느낌을 받은 적이 있나?

"영화에서 보여지는 내용 상으로는 조금 무거울 수 있지 않나. 촬영장은 그에 비해 어떤 현장보다도 밝았다. 전혀 불편함이나 이질감이 없었다. 같이 한 사람들과의 호흡이 좋았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래서 오히려 걱정했었다. '우리가 너무 웃고 떠들고 놀며 찍는 것은 아닌가'에 대한 걱정도 초반엔 있었다. '이렇게 해도 되나?'라는 마음이었다.(웃음)

연상호 감독은 기본적으로 '테이크'를 많이 가는 분이 아니었다. 기존 영화들보다 많이 짧게 찍었다. 액션도 있고, 컷이 훨씬 많을 수 있는 영화였는데 오히려 짧게 가니 초반 배우들이 공통적으로 했던 생각 역시 '이래도 되나?'였다. 4회차에 찍을 촬영을 2회차에 찍고 다음 회차를 당겨 찍은 것은 영화를 찍으며 경험 못한 일이었으니까. 배우들은 눈치를 보며 '감독님 괜찮으시냐. 힘들까봐 덜 찍으시는 거면 그러지 않으셔도 된다'고 했다. 현장에서 붙여놓은 것을 보고는 '이 사람 믿어도 되겠구나' 했다. 다들 '더 하고 싶다. 더 해도 된다'는 생각을 한 번씩 했었다."

-연상호 감독은 이번 영화를 통해 처음으로 실사 영화를 연출했는데, 타 감독들과 작업 방식이 어떻게 달랐는지 궁금하다.

"물론 배우들 앞에선 최대한 티를 안 내셨을 것이다. 어떤 감독이든 뒤에서 많이 고민하실텐데, 그런 것들을 감안해 보더라도 연상호 감독은 늘 마음 속에 명쾌함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배우들에게 더 사기를 북돋워주기 위해서 지레 너스레도 많이 떨고 자신감 있어 했던 것 같다. 배우의 입장에서는 리더 격인 감독님이 끌어주시니 좋았다. 처음에는 노파심이나 걱정이 있었는데 자연스럽게 따라가게 됐다."

-'부산행'을 두고 천만 흥행을 예고하는 이들도 있다.

"모르겠다. 상상해본 적이 한 번도 없다. 천만 영화들이 많이 나오지 않다가 처음 나왔을 때는 '이게 되는구나' 싶었다. 그런데 '쌍천만'도 나오고 말도 안되는 일들이 일어나더라. '나도 계속 영화를 찍게 되면 한 번 쯤 이런 일이 일어나겠지?' 하는 상상은 해본 적이 없다. '부산행'으로 칸에 다녀오고 업계에서 듣는 이야기들이 있다. '그럴 수도(천만 관객이 들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조심스러운 말들이 나오는데, 저는 그 분들보다 훨씬 더 조심스럽다. 되면 나쁠 것이 없지만, 상상하고 예상하는 것도 조금 무섭고 조심스럽다. 늘 손익분기점만 넘기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정말 네가 솔직히 원하는 게 뭐냐'고 물어보신다면 내가 안해본 스코어, 못해본 스코어가 500만이라, 잘 돼서 500만 흥행이 이뤄지면 이미 만세를 부를 준비가 돼 있다.(웃음) 최대 스코어 기록을 넘는 것이니까. 도가니가 470만 정도였던 것 같다 용의자도 420만 명 정도 들었다."

-칸국제영화제 당시보다 지금 얼굴이 조금 어두워 보이는데, 이유가 있나?

"(웃으며) 칸에서도 여유있는 척 했지, 사실은 너무 정신없었다. 기사를 봤는데 '진짜 행복한 미소' 라는 타이틀이 있더라. 행복했지만 너무 정신이 없었고 시차 문제도 있었다. 처음 해외 영화제의 레드카펫을 밟는데 기죽고 옹색하고 초라한 모습보다는 마치 내가 한번 서 본 것처럼 여유있는 척을 한 거였다. 사실 정신없고 경황도 없고 떨렸다. 촌스러운 것 같긴 한데, 괜히 외국인들 앞에서 멋있고 싶고 기죽어 보이기 싫어 능숙한 척 했던 것 같다. (얼굴이 좋아보였다니) 메이크업이 잘 됐나보다. 여유가 있지는 않았다.(웃음)"

-극 중 석우는 다른 어떤 인물들보다도 입체적인 변화와 성장을 겪는다.

"(머뭇거리다 미소를 보이며) 입체적으로 연기했어야 하는데 그것에 대한 불만족이 조금 있다. 석우는 영화에서 유일하게 변화하는 인물이다. 겸손한 것이 아니라 부족한 부분이 있는데 감독님이 그걸 잘 메꿔줬다고 생각한다. 말씀드린 것처럼 '테이크'를 많이 안 갔다. 결과적으로 감독이 완성하는 거지만, 조금 더 부족하거나 아쉽거나 컨디션이 안좋다 싶을 때 (내가) 계속해서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어야 하지 않았나 하는 후회가 있다. 감독에게 조심스럽게 그런 이야기를 했을 때 늘 '괜찮다'고 답해줬지만, 아직 조금 그런 면이 있다. 당당하게 내가 최선을 다했다고, 후회없이 아낌없이 던졌다고 말하긴 부끄러운 것 같다. 원래 인물이 많이 나오는 영화를 연출하는 것이 힘들다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완급이나 윤리적 관계들을 편집을 통해 잘 맞춰주신 것 같다는 느낌은 있다."

-'남과 여'에 이어 다시 아이 아빠 역을 연기했는데, 미혼 남성 배우로서 걱정되는 면은 없나?

"걱정 안 한다. 그걸 왜 걱정하는지 모르겠다. 어차피 연기를 하는 사람 아닌가. 내가 애 엄마 연기를 할 수는 없으니까.(웃음) 어차피 나도 나중에 아빠가 될 것 아니겠나. 연기하는 데 있어 그것이 부담이 된다는 생각은 안했다. 나이로 보면 이미 아이 둘, 셋의 아빠일 수도, 초등학교 학부모일 수도 있다. 주변 친구들을 보면 그렇다. 나는 나이만 많지 아직 아이인 셈이다.(웃음) 흔히 그러지 않나. 결혼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한 사람을 만나 가정을 이루고 아이들을 키우는 것이 얼만큼 어려운지 안다. 그걸 하고 있는 지인이나 사람들을 보면 나보다 더 어른같다고 느낀다. 나보다 나이가 어려도 형처럼 느껴지는 거다. 나이 들수록, 전에 몰랐던 아는 것들이 생기니 걱정도 두려움도 많아진다."

-두려움이 많아진다고 했는데, 연기를 할수록 더 어렵다고 느끼는지도 궁금하다.

"그렇다. 나만 그렇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분들의 인터뷰를 봐도 그렇게 말하더라. 공감한다. 갈수록 어렵다. 막연히 나이가 들면 경험이라는 재산 때문에 뭔가 풍성해질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었는데, 동시에 그와 함께 따라가는 두려움이 커지더라. 어릴 때 호기롭게 대처할 수 있는 부분이 있었다면 상대적으로 두려움이 많아졌다. 여러가지 이유들이 있는 것 같다. 내 욕심도 있을 것이고, 바라보는 사람이 많다는 것에 대한 책임감도 따른다. 갖고 있는 것을 잃고 싶지 않은 개인의 두려움도 있다."

-데뷔 15년이 된 배우인데, 이 즈음 '부산행'을 선보이게 된 것에 특별한 감흥이 있나?

"개인적으로는 크게 의미를 부여할 이유는 없는 것 같다. 데뷔 14년 차였든, 15년차 였든, 내년이 됐든, 내게 '부산행'이 왔다면 똑같은 이야기를 했을 것 같다. 아직 결과가 나온 것은 아니지만, 호평을 받아서가 아니라 어떤 식으로든 저에겐 굉장히 재밌는 기획이었을 것이다.

만일 내가 아이를 낳고 키워본 유부남이었다면, 지금 후회스럽고 아쉬운 장면들을 더 잘 연기할 수 있지는 않았을까 싶긴 하다. 아무래도 실제 경험과 상상하는 것 사이의 갭이 있으니까. 나이를 먹을수록 결혼에 대한, 혹은 육아에 대한 두려움이 생기더라. 안해봤지만 막연한 두려움이 있다. 내가 실제 경험한 것들이 연기할 때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있다. 유부남인 상태에서 '부산행'을 찍었다면, 내 생각이지만 입체적인 것에 가까운 것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조이뉴스24 권혜림기자 lima@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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