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필기자] 한국 선수단에 여덟 번째 금메달을 안긴 태권도 대표 오혜리(28, 춘천시청)가 가장 듣기 싫은 이야기는 '2인자'다.
오혜리는 지난해 5월 러시아 첼랴빈스크에서 열린 2015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 여자 73㎏급 결승에서 정수인(중국)을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생애 첫 세계선수권 우승이었다.
그 전까지 오혜리는 '국내용'이라는 꼬리표가 따라 다녔다. 2015 세계선수권 전까지 2011 경주 세계선수권 은메달이 국제대회 최고 성적이었다. 국내 대회인 전국체전이야 2010년 대학부, 2011~2012 일반부 73㎏급 우승으로 최강자였지만 국제무대는 늘 아쉬움의 연속이었다.
나이가 들어 은퇴도 생각해봤지만 오혜리는 올림픽에 대한 꿈을 놓지 않았다. 어머니의 걱정을 뒤로하고 입문한 태권도였기 때문에 더욱 꿈을 키웠다. 사내들이나 하는 태권도를 여자아이가 꼭 해야 하냐며 걱정이 많았던 오혜리의 어머니였다.
첼랴빈스크 대회를 기점으로 오혜리의 기량은 상승 곡선을 타더니 그 해 카자흐스탄 알마티 오픈 금메달, 지난 4월 2016 독일 오픈대회 G1에서 67㎏ 우승을 차지하는 등 위력을 뽐냈다. 올림픽은 67㎏ 초과급으로 출전이 가능했고 세계랭킹 6위 안에 든 선수에게 자동출전권을 주는 혜택에 따라 리우행 비행기에 올랐다.
오혜리는 리우에서 진정한 1인자로 올라서겠다는 마음을 먹고 독하게 훈련하며 경기를 준비했다.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후회하지 않는 경기를 통해 세계 최고가 되는 것이 목표였다. 과거의 안좋았던 기억들을 말끔히 털어내고 싶었던 것이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국가대표 최종 선발전에서는 황경선(30, 고양시청)에게 밀렸고, 2012 런던 대회 선발전을 2주 앞두고는 왼쪽 허벅지 근육 파열로 울었다. 2013년에는 오른쪽 발목 인대가 끊어져 2014 인천 아시안게임 대표로 나가지 못했다.
시련이 거듭될수록 오혜리의 마음은 강해졌다. 오혜리는 리우 올림픽을 앞두고 열린 태권도 대표팀 미디어데이에서 "내 태권도 인생에 가장 큰 대회를 나가지만 세계선수권대회에 나왔던 선수들이 그대로 나온다. 다를 것이 없다. 내 마음먹기에 달렸다"라며 편안하게 나서겠다고 말한 바 있다.
이런 마음가짐은 경기에 그대로 드러났다. 태권도가 다소 지루하다는 시선을 거침없는 공격적인 운영으로 잠재웠다. 오혜리의 강점은 앞발 찍기다. 내려찍는 능력이 탁월해 상대가 알고도 당한다.
특히 강력한 우승 후보 중 한 명이었던 좡자자(대만)와의 8강전은 공격적인 경기 운영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보여줬다. 9-4로 앞서가던 3라운드 강력한 내려찍기로 13-7로 벌리더니 21-9까지 만들며 경기를 끝냈다. 좡자자 말고도 4강전에서 만난 파리다 아지조바(아제르바이잔)도 똑같이 오혜리의 공격에 걸려들었다.
결승은 말할 것도 없다. 세계랭킹 1위 아비 니아르(프랑스)를 맞아 1라운드 0-4로 뒤졌지만 2라운드 적극적인 공세로 나서 10점이나 따내 경기를 뒤집었다. 끝까지 밀어붙인 오혜리는 결국 13-12로 승리를 거두고 감격적인 금메달을 품에 안았다.
오혜리 덕분에 한국 태권도는 런던 대회 금메달 1개, 은메달 1개의 최악 성적을 지우며 종주국으로서의 명예회복에도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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