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필기자] 해명했다고는 하지만 명쾌하지 않았고 의문은 여전했다. 팀 패배라는 결과를 놓고 당사자가 아닌 제3자로서의 시선이 엿보였다. 축구대표팀 수장이 아닌, 기술위원장이나 유소년 총괄 책임자같은 행정가가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울리 슈틸리케(62)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은 지난 11일 2018 러시아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A조 조별리그 3차전 이란 원정에서 0-1로 패한 뒤 13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했다.
이란에 내내 밀렸던 경기, 슈팅 1개에 불과한 경기는 역대 최악의 이란 원정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앞서 슈틸리케 감독은 2년 전인 2014년 10월 이란 원정 평가전에서도 똑같이 0-1로 졌지만, 당시에는 경기를 잘 치르고도 당한 패배였다.
이번 이란전 패배 결과를 두고 슈틸리케 감독은 "몇몇 선수들과 이야기를 나눴지만 준비한 것을 보여주지 못했던 것을 확인했다. 나도 궁금하다. 왜 그랬는지를 파악했으면 한다"라며 자신도 패인을 잘 모르겠다는 식의 화법을 구사했다.
애초 슈틸리케 감독의 부임 목적은 쓰러져가던 한국 대표팀의 위상 회복과 경기력 향상 등에 있었다. 물론 그에게 유소년 축구 발전의 틀을 잡아 달라고 하는 등 '부수적'인 목적도 있었다.
하지만, 최우선 과제는 역시 국가대표팀 지휘였다. 그런데 슈틸리케 감독은 이란전 패배의 원인을 남의 일처럼 내려다보고 있다. 심지어는 우루과이 출신의 카타르 귀화 선수인 세바스티안 소리아의 장점을 거론하며 지동원(아우크스부르크)에게 자극제로 활용했다는 고백까지 있었다.
지동원은 대표팀 합류 전 독일 분데스리가 라이프치히전에서 감각적인 왼발 슈팅으로 골을 넣었다. 부침이 있었지만 최근 소속팀에서의 위상은 높아져 있다. 카타르 스타스리그에서 뛰는 공격수와는 질적인 차이가 있는데도 지동원을 소리아와 동일 선상에 놓고 비교했다. 프리미어리그 최고의 공격수로 자리 잡은 손흥민(토트넘 홋스퍼)이 이란전에서 힘 한 번 제대로 쓰지 못해 이란 팬들의 조롱 대상으로 전락했는데도 무엇이 문제였는지 분석한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소리아는 한국, 일본 등 아시아 정상권 팀과의 겨루기에서는 골을 넣어봤던 기억조차 없다. 평범한 공격수가 한국전에서 특별하게 돋보인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를 생각도 하지 않은 슈틸리케 감독이다.
11월 15일 우즈베키스탄과의 홈 5차전에 대비한 선수 구성에 대해서는 "선수 변화는 부임 이후 주말마다 경기를 보러 다니면서 확인할 선수는 다 했다. 큰 변화는 없을 것이다. 전술도 개선할 것이 두 가지다. 7~8개월 전만 해도 수비가 견고했다. 원하는 플레이가 모두 나왔다. 공격할 때는 유기적인 플레이와 적극성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몇몇 포지션에서 누수가 생겼지만 그대로 밀고 가겠다는 자신의 뜻을 강조했다.
미리 다 따져봤는지 "대한축구협회가 최근 12년 동안 몇 명의 감독을 선임했는지 아는가"라며 취재진에게 물은 뒤 "총 10명이다. 감독 교체를 위해서는 다양한 부분을 고려해야 한다. K리그 발전, 선수발전, (감독)교체로 인해 무엇을 얻고 어떻게 변할 것인지 고려해야 한다. 내일 나가라고 한다면 운 없다고 생각하고 가면 될 뿐이다"라며 자신이 떠난다고 한국 축구의 환경이 개선되겠냐는 식의 반응을 보였다. 슈틸리케 감독이 거론한 10명의 대표팀 사령탑에는 감독대행 2명도 끼어있다. 자신의 논리에 설득력을 더하기 위한 꼼수처럼 보인다.
팀의 사기를 떨어트릴 수 있는 감독의 발언에 대해 진화에 나선 것은 선수였다. 김신욱(울산 현대)은 귀국 직후 "(감독님의 소리아와 관련한) 인터뷰를 들은 순간 선수들이 당황한 것은 사실이다. 이후 감독님과 바로 미팅을 통해서 오해가 풀렸다. 비행기를 타기 전까지도 해외파 선수들은 감독님을 걱정했다. 소통에 대해서는 문제가 없다"라며 슈틸리케 감독을 걱정했다.
축구협회 한 고위 관계자는 "동, 서양의 문화 차이에서 오는 것이니 어느 정도는 고려를 해야 한다. 슈틸리케 감독 부임 후 사실상 첫 번째 위기라고 보면 된다. 한국은 위기에 몰리면 강해지지 않는가. 선수단과 감독이 잘 뭉치면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슈틸리케 감독에게 주어진 책임은 확실하다. 대표팀 경기력을 개선해 러시아 월드컵 본선으로 이끄는 것이 첫 번째다. 이를 달성하면 본선에 맞는 경기력으로 또 한 단계 전력을 끌어올려야 한다. 입때껏 슈틸리케 감독의 전술이 무엇인지, 어떤 스타일의 축구를 하는지 명확하게 보여줬던 적이 거의 없다.
대한축구협회도 역으로 슈틸리케 감독에게 한국과 서양의 문화 차이를 제대로 교육하며 이해를 구할 필요가 있다. 선수를 공개적으로 비판하면 충돌하는 것은 서양이 더 심하다. 그나마 '존중'이라는 문화를 갖고 있는 한국이기에 선수들의 공개적인 아쉬움이 나오지 않는 것이다. 월드컵 예선을 치르는 중책을 맡은 감독이기에 잘 보좌하려면 축구협회부터 중심을 잡아야 한다.
유소년 시스템이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은 환경에서도 한국은 월드컵에 쉬지 않고 나가 4강, 16강 진출 등을 해냈다. 유럽 무대에 진출하는 우수한 선수들을 많이 배출하는 등 좀 더 나아진 여건에서 대표팀이 성과를 내지 못한다면 슈틸리케 감독 역시 현역 시절 레알 마드리드(스페인)와 독일 대표팀에서 뛰며 쌓았던 명성에 흠집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부임 초기 적극적인 선수 발굴 행보를 보이고 어눌한 한국어로라도 팬들에게 친절하게 메시지를 전하며 한국에 좀더 다가서려 했던 기억을 되살릴 필요가 있다. 이상하게도 최종예선이 시작되면서 슈틸리케 감독은 고집이 강해졌다. 행정가 또는 타자의 자세에서 벗어나 주체적인 사령탑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와야 할 슈틸리케 감독이다.
조이뉴스24 이성필기자 elephant14@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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