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화기자] 한국영화계에 든든한 지원군이자 투자자가 생겼다. 할리우드 직배사의 첫 로컬 프로덕션의 수장, 굉장히 세련되면서도 글로벌한 이 직함의 주인공은 워너브러더스코리아 로컬 프로덕션의 최대원 대표다.
국내에 지사를 둔 할리우드 메이저 직배사 중 두번째로 한국영화 제작에 뛰어든 워너브러더스코리아 로컬 프로덕션(이하 워너)를 진두지휘하는 20여년간 영화계에 몸 담은 베테랑이다. 최대표가 워너로 몸을 옮기면서 굴지의 할리우드 스튜디오 한국영화 시장에 미칠 파급력, 돈의 규모에 대한 추측들이 오갔다. 몇백억 규모의 투자금을 쏟아부을 것이라는 장밋빛 소문이 떠돌면서 이 모든 것을 지휘할 최재원 대표의 행보에 관심이 모아졌다.
증권사 애널리스트라는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인 최재원 대표는 한국영화의 수익성을 따져 투자를 결정하는 일을 하면서 영화계에 몸을 담았다. 숫자를 가지고 놀던 그는 산술적 계산이 힘들다는 영화에 뛰어들어 투자제작사 아이픽쳐스와 바른손필름, 투자배급사 NEW의 공동대표를 역임했다. 이어 제작사 위더스필름을 창립, '변호인'으로 천만흥행의 단물을 마시기도 했다. 수십편의 영화를 투자제작하고 '변호인'으로 최고의 정점을 찍은 그가 향한 곳은 직배사 워너. 그곳에서 새롭게 시작한 그는 창립작으로 '밀정'을 내놨다.
바른손필름 대표 시절 함께 한 김지운 감독과, 역시 여러 편의 영화에서 연을 맺은 송강호와 의기투합한 '밀정'은 올해 750만 관객을 모으며 추석 대목 극장가를 장악했다. '밀정'의 흥행으로 워너는 지난 9월 영화진흥위원회 집계 결과 국내 4대 대급사를 제치고 한국영화로 배급 점유율 1위를 차지했다. 유의미한 성과다. 창립작이자 할리우드 직배사의 첫 국내 제작영화로 배급 점유율 1위를 차지한 것은 여러모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첫 작품의 성공으로 워너의 한국영화 제작 및 투자, 배급에 모아지는 기대는 더욱 커졌다. 이십세기폭스코리아에 이어 두번째 로컬 제작에 나섰지만, 첫 영화로 큰 성공을 거뒀다는 점에서 고무적인 결과다. 김지운 감독과 함께 런던이스트아시아필름페스티벌에 초청받아 영국을 방문하고 돌아온지 하루만에 만난 그는 '밀정'의 성과에 대해 비교적 덤덤하게 말을 이어갔다.
이하 일문일답
-최근에 '밀정'의 IPTV 출시를 기념해 열차신 확장판을 내놨다. 극장용 감독판이나 확장판의 계획도 있나?
"현재로서는 확장판이나 감독판 계획은 없다. IPTV용으로 열차 신을 10분 정도 늘여 확장판을 만들었는데, '밀정'에서 열차 신으로 독립된 시퀀스로도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밀정'으로 성공적인 론칭을 했다. 수익에 대한 정산을 진행중인가?
"IPTV 시장이 많이 커진 상태라 결과를 좀 더 봐야할 것 같다. 예상 수익은 손익분기점이 400만인 영화니까 나머지 흥행으로 보면 될 것 같고. 아직 해외 세일즈도 진행중이고 극장도 두어개 스크린을 유지하고 있다. TV 판권 판매도 아직이라 정산은 좀 더 이후가 될 것 같다."
-'밀정'을 첫 작품으로 선택한 이유가 있나?
"그저 여러 안 중에서 시간과 스케줄이 맞았던 것 같다. 송강호와 김지운 감독이 어쩌다보니 운좋게 시간이 맞았고. 너무 밀어부쳤나 싶기도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시간대가 잘 맞아서 다행히 시작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무엇보다 김지운 감독이나 송강호나 오랜 시간 함께 작업하다보니 '가자' 그러면 따로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착착 진행되는 점이 좋았던 것 같다."
-올해 추석시장에서 점유율 1위라는 성과를 거뒀는데?
"배급 점유율은 신경 쓰지 않는다. 배급은 따로 하는 팀이 있으니까. 수치적인 것에는 연연하지 않으려고 한다. '고산자'와의 대결이 부담되는 면도 당연히 있었다. 애초 여름시장을 목표로 했는데 일정상 놓친 것에 대한 아쉬움은 있다. 여름시장을 놓치고 보니 선택지가 없었다. 내 기대보다 더 잘 나온 영화였고 관객들이 더 좋아해주는 영화였는데 여름 시장에 풀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은 있다."
-첫 영화로 흥행에 성공했는데, 본사에서의 시선은 어떤가?
"아무래도 첫 작품이 잘 됐으니 워너가 한국영화에 긍정적 시각을 갖게 되지 않았을까 싶다. 시행착오 없이 히트를 치니 솔직히 부담이 된다. 다음영화가 잘 되어도 당연하다 싶을 것 같아서(웃음)."
-두번째 작품 '싱글라이더'는 저예산 아트영화인데, 작품 사이의 간극이 큰 것 같다.
"'싱글라이더'는 20억원 규모의 저예산 영화지만 유니크하다. 시나리오를 보고 이 톱 배우들이 개런티가 아니라 영화가 만들어져야한다는 것에 공감하면서 개런티를 포기하고 합류했다. 촬영하는 내내 열심히 하는 배우들을 보면서 한국영화가 미래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톱배우들의 책임감을 보면서 한국영화의 미래가 밝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워너로 자리를 옮긴 이유가 궁금하다.
"한국영화의 다양성을 만들어내는데 또다른 축이 되고 싶었다. 제작사를 하면서 안일하고 고착화된 방식으로 영화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늘 같은 투자사, 제작사와 비슷한 커뮤니케이션과 반복되는 작업을 하면서 안일하고 안주하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그렇다면 한국영화계에 또다른 선택지가 되어주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관습적인 것을 깨고 매너리즘을 벗어날 수 있도록 긍정적인 자극, 공식을 깨고 의미있는 파트너가 되어 주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워너 대표로 취임하면서 본사로부터 이것만은 가져가겠다 담보받은 것이 있나?
"그런 것은 없다. 애초 워너의 요구가 '네 멋대로 해'였다. 같이 일을 하다보니 합리적인 부분이 많고, 법률적인 문제나 작품에 대한 경험치가 많아 재미있는 의견이나 신선한 시각도 많다. 한국영화의 장단점에 대해 생각보다 많은 부분을 파악하고 있고 한국영화에 대한 지식도 상당하다. 본사와 갈등선이 생기면 한국시장에 맞게 합리적으로 풀어나가고 있다. 지금까지는 문제될 것이 없었다. 할리우드식 마인드로는 프리프로덕션을 철저하게 하지 않아 생기는 예산 초과라던가 촬영일 초과, 스케줄 변경 등을 납득하지 못한다. 하지만 한국적 정서에 맞는 순발력이란게 장점이 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조율하면 되는 문제고, 대부분 국내 정서나 시스템을 인정해주는 분위기다."
-워너가 한국영화 제작을 애초 계획한 것이 언제인가? 앞으로의 투자 규모나 제작편수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있나?
"오래됐다고 하더라. 2014년 초 '변호인'이 끝날 무렵 제작을 염두에 두었다고 들었다. 투자 금액치에 대한 선, 규모, 편수 등은 논의해본적이 없다. 그저 우리 내부 인력 구조상 1년에 많아야 6편? 할리우드 영화도 배급해야 하니 20여편이 적정 배급 편수가 될 것이다. 하지만 하고 싶은 것, 여건이 되는 작품이면 언제는 GO할 수 있다. 편수에 대한 제약은 없다."
-앞서 한국영화 제작에 나선 폭스와의 차별, 차이점이 있다면?
"폭스는 직배사 자체적으로 투자 제작을 결정한 거라 초반에 시행착오를 거친 것 같다. 폭스가 로컬 전문가가 없이 감독들을 직접 픽업해 제작하다보니 상업적 접근에서 좀 더 불리했던 것 같다. 그 감독들의 작가주의적 감성을 어떻게 컨트롤할 것인가가 폭스의 과제였다고 본다. 워너는 나같은 상업영화 제작자를 데려다 시작했으니 상업영화의 틀에 대해 더 고민을 많이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폭스도 지난 4년 동안의 시행착오가 굉장히 좋은 밑거름이 됐고 덕분에 한국영화 전문가를 영입했으니 좀 더 좋은 성과를 가져오지 않겠나."
-워너가 제작한 한국영화의 수익은 국내에 재투자되는 것인가?
"그렇다. 많은 분들이 미국 회사가 돈 벌면 떠나는 것 아니냐 하는데 그렇지 않다. 미국이 돈 벌어서 자기네 나라로 가져가면 한국시장은 가망이 없는 것 아니냐. 미국 본사에서도 한국시장에 대해 자본주의적인 판단을 했을 것이고, 여기서 거두는 수익은 한국에서 재투자돼 앞으로의 라인업을 만들어나가게 될 것이다."
-향후 워너의 라인업과 계획은?
"'싱글라이더'를 올해 개봉할 생각이었는데 '마스터'가 개봉하는 바람에 내년으로 밀렸다('마스터'와 '싱글라이더'는 이병헌 주연작이다). 박훈정 감독의 'VIP'는 촬영을 시작했고, 내년 상반기 개봉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정범 감독의 '악질경찰'도 캐스팅 진행 상황을 좀 더 봐야하고. 김지운 감독의 '인랑'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열심히 꼬시고 있다(웃음). 워너의 고전부터 최근작까지 국내 리메이크 작업이나 반대로 한국영화의 할리우드 리메이크 계획도 내가 조율할 롤이고. 앞으로 할 일이 참 많다."
조이뉴스24 정명화기자 some@joynews24.com 사진 이영훈기자 rok6658@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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