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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필 in(人) 우한]⑦말문 열리는가 했던 북한, 이상한(?) 숨바꼭질


'빨치산 전법' 강렬한 이미지 남긴 후 선수들 침묵, 훈련 일정도 자주 바꿔

[이성필기자] 연일 기온이 영상 37℃를 오르내리고 있는 중국 우한에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었습니다. 지난 5일이었는데요, 마침 동아시아축구연맹(EAFF) 동아시안컵 한국-일본전이 열리는 날이라 조금이라도 비가 내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했습니다. 비로 더위가 조금이라도 가시면 우리 선수들이 좀 더 쉽게 뛸 수 있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강수확률도 70%라 믿었습니다.

하지만, 비는 오지 않았습니다. 예고됐던 비는 6일 새벽에 천둥과 번개를 동반해 요란하게 두 시간 정도 내렸다고 합니다. 문 꼭 닫고 잠들었던 기자가 알 리 없었죠. 그날 오전 훈련을 하는 남자 대표팀을 취재하러 이동하면서 "아! 비가 왔었구나"라고 느낄 수 있었습니다. 비 온 후라 습도가 우한 입성 후 느낀 것 중 최고였거던요. 단 10분 만에 언더셔츠가 땀으로 흠뻑 젖었습니다.

오전 10시(현지 시간 기준) 기온이 영상 32℃, 습도 75%였으니 덥지 않을 리 없었습니다. 알아보니 우한의 면적이 서울의 17배인데 도심 쪽 우한에 비가 왔고 외곽인 경기장에는 새벽에나 비구름이 지나갔던 모양입니다.

우한 거주 교민은 "시내에 비가 와도 외곽에는 구름만 낀 정도가 많다. 우한 날씨 예보를 곧이곧대로 믿으면 외지인이다"라는 기막힌 말을 해줬습니다. 사흘 전 이 코너에서 언급했던 중국 취재진의 "공식 일기예보 기준으로 기온은 2℃, 습도는 10%를 더해서 생각하라"는 믿거나 말거나 발언이 진짜로 여겨집니다.

아리송한 우한의 날씨와 똑 닮은 팀이 있습니다. 바로 북한 대표팀입니다. 남자, 여자 모두 이번 대회에 참가한 북한 대표팀은 국내, 외 취재진은 물론 EAFF와도 곧잘 숨바꼭질을 하고 있습니다.

북한은 국제 스포츠 무대에서 폐쇄적인 행동을 잘하기로 유명합니다. 이를테면 공식 인터뷰에서 질문 5개를 받기로 돼 있는데 2~3개만 받고 일방적으로 자리를 뜨거나, 국가 명칭을 '북한'으로 부르면 버럭 화를 내며 그 자리에서 정정할 것을 요구합니다. 스포츠 발전의 모든 연결고리에는 '최고 존엄'의 인물이 늘 정점에 있는 것도 공통점입니다.

동아시안컵 초반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지만, 인터뷰 때 생각 이상으로 북한 감독들의 대답이 잘 나와서 의외였습니다. 남자대표팀 김창복 감독이나 여자대표팀 김광민 감독 모두 북한이 어떤 방식으로 축구를 한다는 구체적인 언급까지 했습니다.

특히 첫날 북한 남자대표팀의 훈련에서는 김영광(횃불), 서경진(소백수)의 입에서 '빨치산 전법'이라는 용어가 나와 주목을 받았습니다. 빨치산은 한국에서는 한국전쟁의 영향으로 이념적인 색깔이 짙은 용어로 인식돼 너무나 강렬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죠. 이후 북한 빨치산 축구의 구체성을 놓고 궁금증이 커졌고 김창복 감독으로부터 "정신력을 기본 바탕으로 공격적으로 나서는 축구"라는 해석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첫날 이후 북한 선수들의 입은 열리지 않았습니다. 2일 일본을 2-1로 이긴 뒤 믹스트존에서 북한 선수들을 기다렸지만, 한국-중국전이 시작되는 순간까지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할 수 없이 기자석으로 올라갔고, 끝까지 기다렸다 온 타사 후배 기자에게 물어보니 북한 선수들이 질문에 대답도 해주지 않고 그냥 지나갔다고 합니다.

4일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여자부 북한-중국전이 끝난 뒤 믹스트존에서 골잡이 리예경, 라은심을 만나보려 기다렸습니다. 이번에는 북한 통역관에게 "선수들과 이야기를 나눠도 되겠느냐"고 물었고 "마음대로 편하게 하시라"라는 확답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 말을 철석같이 믿은 기자가 바보였습니다. 나오는 선수들의 이름을 부르며 "골 넣은 소감 좀 알려달라", "한국전 준비는 어떤 방식으로 할 거냐"고 소리쳐 물었지만, 기자의 얼굴에 뭐가 묻었는지 빤히 바라만 보고 갑니다. "일 없습네다(괜찮다)"라는 그들의 고유 발언이라도 나오기를 기대했지만 아예 아무런 응답이 없었고 오직 앞만 보며 선수단 버스로 향했습니다. 중국 BTV 리나 기자는 "북한 선수들은 같은 사람 11명이 있는 것 같다"라는 감상평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5일 남자부 북한-중국전 하프타임에는 본부석 2층 기자석 하단의 귀빈석에 있는 북한 임원에게 다가갔지만, 그 역시 손짓으로 '할 말이 없다'는 시늉을 합니다. 인공기를 든 북한 응원단 근처에는 중국 공안이 지키고 있다가 기자가 접근하니 바로 방어를 합니다. 스포츠는 정치에서 자유롭다고 하지만 거리 좁히기가 좀처럼 쉬운 일은 아닌 모양입니다. 이를 두고 한국 축구대표팀 한 관계자는 "우리 언론이 북한 선수단에 관심을 가지니 주의 조처를 내린 것 같다. 일종의 내부 단속으로 보면 된다"라고 전했습니다.

훈련 시간도 자주 바뀝니다. 국내 취재진은 북한의 훈련 일정을 알아내기 위해 백방으로 수소문했지만 알 길이 없습니다. 우리 대표팀 관계자들에게 물어봐도 모르는 것이 당연한 일입니다.

EAFF는 다음날 훈련 일정을 경기장 내 미디어센터에 공지하는데 북한은 해당 시간에 나타나지 않거나 취소하며 휴식을 취한다고 합니다. EAFF 입장에서도 북한이 원하는 시간으로 일정을 바꾸느라 애를 먹는 모양입니다. EAFF 관계자는 "북한 선수단 연락관이 힘들어한다고 하더라. 우리 역시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다"라며 북한 선수단 관리하기가 쉽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EAFF는 심판진을 공정하게 구성하라는 북한의 요구를 받아 AFC 가맹국 중 아세안, 중동 심판진으로 이번 대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EAFF가 북한 측에 요구한 것도 있습니다. 훈련 후 믹스트존에서 선수 2명은 반드시 인터뷰에 응하라고 권고를 한 것이죠. 북한이 이 권고를 처음에는 잘 받아들이다가 너무 주목을 받자 스케줄을 바꿔가며 국내, 외 취재진을 피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특히 남녀부 모두 남-북전에서 우승이 결정되는 상황이 만들어지면서 더 그런 것 같습니다.

6일 한국 여자 대표팀이 훈련한 타지후 체육공원에 북한 대표팀 버스가 보여 접근을 했지만, 선수들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훈련 장비를 내려놓았는데 선수는 없으니 귀신이 곡할 노릇입니다. 언제까지 찾고 숨는 일이 계속 이어질지 궁금합니다. 혹시라도 북한이 우승하면 그 때라야 말문을 열까 싶습니다. 물론 한국이 우승하면 또 침묵으로 지나가겠지만요. 비록 적으로 만나지만 그라운드에서 함께 뛰는 우리 선수들과는 편하게 말이라도 나눴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조이뉴스24 우한(중국)=이성필기자 elephant14@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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