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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범근 아들 아닌 '선수 차두리'로 떠나다


긍정의 아이콘과 솔직함으로 차두리의 캐릭터 만들며 은퇴

[이성필기자] '차미네이터', '로봇' 등 별명이 많은 차두리(35, FC서울)가 자유인이 됐다. 축구 선수로서 '차범근 아들'이라는 굴레를 벗어나지 못했던 차두리는 이제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위해 새로운 길을 가게 됐다.

차두리는 7일 수원 삼성과의 올 시즌 마지막 슈퍼매치에서 은퇴식을 가졌다. 아버지 차범근 전 감독을 꽉 안고 눈물을 흘렸던 지난 3월 뉴질랜드와의 A매치 국가대표 은퇴식과는 확실히 달랐다. 웃으며 자신의 프로 생활을 마감했다. 아버지가 지휘봉을 잡았었던 라이벌 수원 팬들에게도 박수를 받았다.

국가대표 차두리는 항상 아버지와 비교 대상이었다. 1970~1980년대 한국 축구를 주름잡은 아버지와 달리 아들은 공격수에서 수비수로 전향해 아쉬움을 남겼다. 모두가 차붐 2세의 공격수 탄생을 기원했지만, 하드웨어는 괜찮은데 소프트웨어가 아쉽다는 평가를 그는 감내해야 했다. 11번을 달고 국가대표에서 활약하는 차두리를 보고 싶었지만, 이 역시 미완으로 남았다.

유럽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스코틀랜드 셀틱에서 강한 인상을 남겼을 뿐 독일 분데스리가에서는 아무리 잘해도 '차붐 주니어'라는 특수성으로 인해 늘 힘들게 뛰어야 했다. 투박한 공격수라는 인상이 강했고 수비수로 전환하는 계기가 됐다.

차두리는 "축구를 해오면서 내 기준은 차범근이라는 사람이었다. 그 사람을 넘고 싶었고 잘하고 싶었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대단한 사람이고 유럽에 나가보니 이 사람이 정말 축구를 잘했구나를 알았다"라고 말했다.

기묘한 것은 차두리와 동시대에 뛰었던 그 누구도 차범근이라는 전설을 넘어보려고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오직 차두리만 차범근이라는 높은 벽을 무너뜨려 보겠다고 끝없는 도전을 한 것이다. 분데스리가 98골을 넣으며 전설로 남았던 차범근의 너무 높은 기준이 차두리를 힘들게 만든 셈이다.

차두리의 젊음도 차범근에 의해 지배됐다. 그의 고교 시절 아버지는 1998 프랑스월드컵 아시아 예선에서 승승장구하다 본선에서 비극을 맛봤다. 세상의 융단 폭격에 차두리는 말을 잃었고 최종예선과 본선에서 180도 달라진 태도를 보인 미디어를 멀리하는 계기가 됐다. 한국으로 복귀하고 자신의 의견을 가감 없이 전달하는 미디어와 교감하고 나서야 어느 정도의 장벽이 허물어졌다.

그렇다고 좌절만 한 것은 아니었다. 차두리는 항상 유쾌했고 희망을 이야기했다. 국내로 돌아와서는 FC서울과 다수의 팬을 그러모으는 촉매제가 됐다. 브라질월드컵에서 대표팀에 있지 못하고 해설을 하면서 자신의 잘못을 이야기하는 등 누구나 공감을 하는 이야기를 쏟아냈다.

스스로도 국내 복귀 후 3년의 생활이 "영화 같다"라고 할 정도로 그의 마무리는 훌륭했다. FA컵 우승으로 유종의 미도 거뒀다. 발바닥 통증을 안고서도 끝까지 견뎌내는 투혼을 발휘했다. 희생이 무엇인지, 팀에서 주장으로 선참이 어떻게 팀을 이끌어야 하는지를 입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준 것이다.

차두리도 "차두리를 왜 서울에 데려왔느냐는 비판이 몸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처음 6개월은 힘들었다. 경기력이 좋지 않았고 우려의 목소리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개인적으로 힘들었고 바닥에 내려앉는 기분이었다"라고 고백했다. 그러면서도 오기도 생겼음을 강조했다. 그는 "늘 유럽에만 있어서 한국 축구팬들에게 인정받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차두리 아들'에서 진짜 차두리를 보여주겠다는 의지였고 결과적으로도 성공했다.

매번 환하게 웃는 차두리는 '긍정의 아이콘'이었다. 그는 마지막에 후배들의 도전 의식과 자신만의 삶의 방식을 만들라고 주문했다. 유럽에서 축구를 배우면서 자기를 드러내야 하는 것을 한국에서도 당연하게 여겼다. 경쟁력은 스스로 만드는 것이라는 이야기다.

이는 현재 국가대표에서 무주공산으로 남은 오른쪽 풀백에 대한 태도로 드러난다. 후보군의 실력이 모두 괜찮다며 "이 자리는 내 자리라는 것을 마음속에 갖고 뛰어라. 누가 됐든지 간에 선택이 되면 이 자리는 내게 온 것으로 생각하고 놓치기 싫다는 마음을 가졌으면 한다"라며 실패해도 좋으니 과감하게 도전하라고 주문했다.

차두리는 한 가지를 분명하게 얻고 떠났다. 아버지의 후광이 아닌 차두리라는 이름 석 자에 담긴 이미지다. 차두리는 "서울팬 사이에서는 내가 더 위대한 선수로 남았으면 좋겠다"라며 수원 감독이었던 아버지가 얻을 수 없는 것을 꺼내 들었다. 아버지의 그림자를 벗어나는 차두리가 당당하게 새 출발을 시작했다.

조이뉴스24 이성필기자 elephant14@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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