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뉴스24 이미영 기자] "자랑할려고 그러는 건 아닌데, 세계 가수 중에 히트곡 수가 제일 많습니다. 세계 가수 중에 지가 작사 작곡하고 만든 노래가 제일 많습니다."
반세기 넘게 2600곡이 넘는 노래들을 세상에 내놨고, 히트곡 수가 150곡이 훌쩍 넘는다. 그래서 나훈아의 이름 앞엔 언제나 '가황'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노래로 희로애락을 나눴던 '국민가수'였고, 눈치 보지 않고 할말 하는 이 시대의 어른이었다. 나훈아가 마이크를 내려놓고 58년 노래 인생의 마침표를 찍었다.
나훈아가 지난 12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로 KSPO돔(올림픽체조경기장)에서 '2024 고마웠습니다-라스트 콘서트 서울'을 끝으로 무대를 내려갔다.
나훈아는 지난해 2월 이번 전국투어가 자신의 마지막 콘서트가 될 것이라며 은퇴를 선언했다. 이후 1년 동안 투어 콘서트를 통해 전국 각지의 팬들과 작별 인사를 해왔다. 마지막 도시인 서울에서 5회에 걸쳐 관객들과 길고 긴 인사를 나눴다.
마지막 공연에서 58년 노래 인생이 총망라됐다. 수많은 히트곡 중에서 고심해서 골랐을 법한 21곡이 2시간 반을 꽉 채웠다.
나훈아는 '고향역'과 '체인지' '고향으로 가는 배' '남자의 인생' '물레방아 도는데' '18세 순이' '사랑' '영영' '홍시' 등 대표 인생곡들을 쉼없이 이어갔다. 곡이 바뀔 때마다 무대 위에서 의상을 갈아입는 퍼포먼스로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마지막을 염두에 둔 듯 '아름다운 이별' '인생은 미완성' '누가울어' '마이웨이' 등을 불렀고, 눈가에 눈물이 맺히기도 했다.
이날만 두 번째 공연이었지만, 그는 지치지 않았다. 나훈아의 목소리는 생생했고, 성량은 풍부했으며, 카리스마 넘치는 퍼포먼스로 좌중을 압도했다. 사투리가 섞인 특유의 어투와 직설적 화법으로 팬들을 쥐락펴락 했다. 관객들은 그의 마지막을 눈에 담으려 집중했고 그 어느 때보다 뜨겁게 화답했다.
"스태프들에 무섭게 대했다"고 사과했을 정도로, 꼼꼼하게 마지막 공연을 기획했고, 하나부터 열까지 진두지휘 했다. 웅장한 무대, 지루할 틈 없는 구성으로 공연 장인의 면모를 선보였지만, 그 무엇보다 관객을 사로잡은 건 나훈아의 그 자체였다. 80대를 바라보고 있는 나이에도 그의 간드러지는 창법과 호소력 넘치는 전달력, 찢어진 청바지와 민소매 티셔츠를 입고 무대를 휘어잡는 에너지까지, '현역'을 내려놓기엔 너무 정정했다.
2시간 30분 동안 이어진 공연의 마지막 노래, 그리고 58년 노래 인생의 마침표를 찍는 마지막 노래는 '사내'였다.
나훈아는 "저는 노래 중간에 계속 울컥했고 참느라 힘들었다"면서 "평생을 살며 결정한 것이 마이크를 내려놓는게 최고의 결정이었다. 여러분이 보셨으면 알지만 제 공연은 힘이 필요하다. 가만히 서서 노래하는 공연이 아니다"고 은퇴 결심 이야기를 꺼내놨다. 그는 "6년 전에 부산에서 공연을 끝내고 나오는데 팬이 손을 흔들었다. 머리가 허옇게 한 할머니가 손을 흔드는데 '오빠'라고 하더라. 저는 그 때 제가 할배인지 알았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고 에피소드를 이야기 했다. 그러면서 "아직은 몇 년 거뜬하게 한다. 내가 그만 두는게 서운하나"고 되물은 뒤 그래서 그만 둔다"라고 말했다.
'작별' 노래를 배경으로 울음을 꾹 참으며 무대 앞으로 걸어나온 그는 무릎을 꿇고 고개 숙여 인사했다. 나훈아는 자신에 다가온 드론에 "분신 같았던" 마이크를 싣어보냈다. 아직 끝나지 않은 노래는 관객들의 합창으로 완성됐다.
나훈아는 그야말로 대중가요 역사에 길이 남을 만한 레전드 가수다. 그가 걸어온 58년 노래 인생이 이를 증명한다.
나훈아는 1966년 '천리길'로 데뷔해 57년 간 노래하는 인생을 살았다. 지금까지 녹음해서 발표한 곡 수가 2,600여 곡에 달하고, 그 중 직접 작사·작곡한 노래만 800곡 이상으로 알려져 있다. '홍시', '무시로', '울긴 왜 울어', '18세 순이', '갈무리', '영영' 등 누구나 알만한 히트곡도 150곡에 이른다. 반세기 넘게 가요계에서 독보적인 위상을 구축해왔다. 박정희부터 윤석열까지, 대한민국 11명의 대통령이 바뀌는 동안, 그는 노래 외길만 걸어왔다.
대중은 당당하고 주눅들지 않는 그의 소신, 인간미 깃든 그의 철학도 사랑했다. 마지막 콘서트에서 나훈아가 떠올린 일본 생방송과 소록도, 두 번의 공연은 그의 성품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1995년 즈음 가만히 있던 일본이 '독도는 자기네 땅'이라 해서 속이 베베 꼬였다. 저도 대한민국 국민이다. 일본 방송에서 공연을 해달라는 프러포즈가 왔다. 가서 '독도는 우리땅이다' 소리 질러야겠다 싶어서 갔다. 나는 꾀가 없나. 연습할 때는 말을 안하다 생방송에서 '독도는 우리땅'을 노래에 녹여불렀다. 그 다음날 당장 가만 있겠나. 우익단체가 전화와서 '때려죽인다'길래 내 성깔에 '죽이라'고 했다."
"가슴이 찡한 공연이 있다. 소록도에서 앙케이트 조사에서 보고싶은 가수 1위를 했다. 개런티 필요없다고 하고 갔다. 맨중앙에 가장 중한 환자가 있었다. 무대 아래에 못 내려가게 되어있는데 도저히 무대 위에서 못 견디겠더라. 내가 받은 꽃다발을 그분에게 갖다드리고 결국엔 껴안고 노래를 했다."
나훈아는 노래 말곤 평소 알려진 사생활이 거의 없는 신비주의 가수이기도 했다. 그는 2006년 데뷔 40주년 공연을 끝으로 2007년 세종문화회관 공연을 갑작스럽게 취소하면서 건강 이상설 등 각종 루머에 시달렸다. 이에 기자회견을 직접 여는 곤욕을 치렀고 11년 간 두문불출 했다. 은퇴설이 제기됐지만, 그러다 11년 만인 2017년 11월 새 앨범을 발표하며 건재함을 과시했고, 매년 공연을 통해 팬들과 만나왔다.
나훈아가 대중들에 파급력을 다시 한 번 확인한 건 2020년 KBS2 추석 연휴 특집 공연이었다. 다시보기도 없는 단 한 번의 공연과 노개런티 등 나훈아의 조건들은 파격이었다. 공연의 완성도는 높았고, 무엇보다 현 시대를 꿰뚫는 그의 철학은 내내 화제가 됐다. 공연에서 공개한 '테스형!'은 철학자 소크라테스에게 인생을 묻는 독특한 가사와 중독성 있는 멜로디로 젊은 층의 화제를 이끌어냈다. 당시 나이 74세가 믿기지 않는 카리스마와 체력, 노련한 무대 매너, 그리고 눈치 보지 않는 소신발언으로 가요계 어른, 시대의 어른다운 모습을 보여줬다.
나훈아는 고별 공연에서조차 거침없었다. 그는 탄핵정국 등으로 혼란스러운 정치권을 언급하며 "정치하는 분들이 반은 국회에서 밤을 새고, 탄핵을 하니 생 지X을 하든 뭘 하든 다 좋은데, 반은 국방을, 우리가 먹고 사는 경제에 신경 써야 한다. 경제고 국방이고 다 어디로 가버리고 지금 딴짓들만 하고 앉아 있다"고 일갈했다. "지금 하는 꼬라지들이 국가를 위해, 국민을 위해 하는 짓거리인지"라며 "왼쪽이 오른쪽을 보고 잘못했다고 생난리다. 니는 잘했나"라는 발언을 놓고는 정치권에서 다양한 해석이 나오기도 했다. 나훈아는 마지막 공연에서 "국회의원인지 도지사인지 잘 들어라. 나보고 뭐라하는 저것들 일이나 똑바로 하지. 어른이 이야기 하는데 XX하노"라며 "갈라치기 안된다"고 강조했다.
마이크를 내려놓은 나훈아는 평범한 소시민의 삶을 살고싶다고, 은퇴 후의 행보를 전했다.
나훈아는 "여러분 저는 구름 위를 걸어다녔다. 저는 스타니까. 땅바닥에 안 걸어다니고 별답게 하늘에서만 살았다. 그게 참 힘들었다. 그동안 조마조마 하며 설마설마 하며 세상을 살았다"라며 "이제는 땅에서 걸어다니겠다"고 관객들의 눈을 바라봤다. 나훈아는 "앞으로는 안해본거 해보고 안 먹은거 먹겠다. 제일 먼저 해보고 싶은게 장서는 날 막걸리와 빈대떡 먹는 것이다. 구름 위에서 살다보니 한 번도 해본 적 없다"며 "여러분 고맙습니다"고 마지막 인사를 전했다.
무대에 내려가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나훈아는 뜨거웠다. 반세기 넘게 대중들을 어루만지던 그의 간드러지던 목소리도, 날카로운 쓴소리도 이젠 들을 수 없지만, 팬들은 그의 새 인생을 응원했다. '가황'이 아닌 소박한 날들을 맞이할 나훈아를 시장 어느 한구석에서 마주치길 바라며.
/이미영 기자(mycuzmy@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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