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뉴스24 이미영 기자] "사이코패스로 보일까 두려웠어요. 비정상적 캐릭터를 설득해야 했어요."
'하이퍼 나이프' 설경구는 사람을 살리는 천재 의사인 동시에 사람을 죽이는 살인마였다. 자신을 똑닮은 제자에 대한 광기 어린 집착을 보이는가 하면 스스로 죽음을 택하는 극단적 방법으로 제자에게 가르침을 주고자 했다. 그 어느 한국드라마에서도 본 적 없었던 캐릭터였다. "응원을 기대하지 않았다"는 설경구는 시청자들을 설득하기 위해 치열하게 연기했고, 박은빈을 믿고 부딪혔다.
설경구는 지난 14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디즈니+ 오리지널 시리즈 '하이퍼나이프' 종영 인터뷰에서 "걱정을 많이 했는데 '다행이다' 싶었다"고 소회를 전했다.
![설경구가 '하이퍼 나이프' 종영 기념 인터뷰에 앞서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https://image.inews24.com/v1/52855875340af9.jpg)
"('하이퍼 나이프'가) 보편적인 이야기가 아니잖아요. 시청자들이 따라와줄 수 있을까 싶어 걱정했어요. 공개 전 모니터를 먼저 했는데 아쉬운 것만 눈에 보이고 성에 안 차고 불만이 많았어요. 비정상적인 과잉의 캐릭터를 이해해줄 수 있을까 싶었는데 다행히 잘 따라와줬어요. 안 따라와준 분들도 있지만 대체적으로 다행이었어요."
'하이퍼나이프'는 과거 촉망받는 천재 의사였던 세옥이 자신을 나락으로 떨어뜨린 스승 덕희와 재회하며 펼치는 치열한 대립을 그린 메디컬 스릴러다.
설경구는 세계 최고의 신경외과 의사이자, 제자였던 정세옥을 병원에서 내몬 스승 최덕희 역을 맡아 열연했다. 최덕희는 모두가 우러러보는 세계적인 의사지만 남들이 모르는 이면을 지니고 있는 인물이다. 데칼코마니처럼 닮은 제자 세옥을 뺏기지 않기 위해 친구를 죽였다는 사실이 드러나 충격을 안기기도 했다. 우리가 지금껏 드라마에서 봐왔던 인류애 넘치는 의사들과는 결이 다르다.
설경구는 '덕희는 사이코패스인가'라는 질문에 "사이코패스가 아니다"고 단언했다.
"과잉, 비정상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이코패스라고는 규정 안했어요. 시청자들에게 사이코패스라고 보여질까 두려웠어요. 사이코패스끼리 부딪히는 것이 아니라, 둘 사이의 감정이 오갔다고 생각해요."
'하이퍼 나이프'는 보편적인 스토리도, 이해하기 쉬운 캐릭터도 아니다. 이 작품을 수락한 이유를 묻자 "한사람은 그럴 수 있다쳐도, 둘 다 그렇다. 부딪혔을 때 어땠을지 궁금했고, 박은빈이 어떻게 연기할지 궁금했다. 선한 사람이 연기하면 재미있겠다 싶었고, 그 영향이 컸다"고 말했다.
설경구는 천재의사인 덕희를 집요하게 파고드는 대신, 캐릭터의 틈새를 활용해 변주하고자했다. 때로는 어리숙하고, 때로는 짓궂은 얼굴을 만들어냈다.
"캐릭터를 한 줄 한 줄 이해 하려고 하지 않았어요. 세옥과 대비해서 침체돼 있고 직설적이고, 그렇게 뭉뚱그려 생각을 했어요. 어둠과 음침함으로 8부까지 가기엔 너무 버겁고 지루하고 매력이 없을 것 같았어요. 변주를 주려고 했어요. 세옥이가 식당 남자를 묻으려고 (땅을) 팔 때 '너무 낮게 판 것 아니냐'고 심각하지 않게 묻는다던지, 배 안에서 두들겨 맞는 것도 가볍게 연기하려고 했어요. 한현호(박병은 분) 앞에서 세옥에 대해 고백할 때는 과하게 표정을 쓰려고 했어요. 그런 부분에서 틈새가 보이는 것 같아서, 때로는 애같이 때로는 짓궂게 연기했어요. 부분부분 변주를 주려고 했죠."
덕희와 세옥은 기존 사제 관계에서 볼 수 없었던 독특한 관계성을 띠고 있다. 서로의 실력을 존경하고 있는 동시에 애증과 광기 어린 집착을 갖고 있는 관계다. 세옥을 수술실에서 쫓아내 불법의사로 만든 장본인이기도 하면서, 살인을 저지른 제자를 보호하기 위해 위험한 짓도 마다않는다.
![설경구가 '하이퍼 나이프' 종영 기념 인터뷰에 앞서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https://image.inews24.com/v1/64ef84283df3b5.jpg)
"덕희는 많은 학생 가운데 세옥을 지정해서 옆으로 오라고 해요. 그 정도로 마음을 표현한 친구였어요. 천재적이었고 다 주려고 했죠. 세옥에 대한 죄책감도 있었던 것 같아요. 자신을 뛰어넘을 수 있게, 실패를 맛보게 하는 것은 마지막 수업이었던 것 같아요."
병에 걸려 시한부 삶을 살게 된 그는 스스로 죽음을 택하면서까지 모든 가르침을 세옥에게 주려고 했다. 세옥에게 수술을 받기 위해 휠체어를 타고 수술실로 들어서는 덕희, 그는 자신을 바라보는 제자를 향해 "한심한 새끼"라고 내뱉는다. 두 사람이 함께 하는 마지막 장면이다.
"마지막 수술 직전에 둘이 끝까지 자존심 싸움 하는 것이 재미있었어요. 제가 '한심한 새끼'라고 하는데, 끝까지 안 지려고 한 것이 재미있었던 지점 같아요. 세옥이가 맨발로 와서 '그래도 얼굴은 보셔야죠' 하는데 뭔가 확 왔어요. 덕희의 감정이었던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보는 얼굴이라는 걸 의식한 것 같아요."
설경구는 세옥 역의 박은빈과 연기 합이 잘 맞았다. 그는 "본인의 노력을 떠벌리고 다니는 사람은 아니지만, 노력을 많이 했을 것 같다. 거침없었다"고 했다.
특히 분노를 참지 못한 세옥이 덕희를 우산으로 마구 때리는 장면을 언급하며 박은빈의 과감한 연기를 칭찬하기도.
"배 안에서 우산으로 맞는데 3개 정도 부서졌어요. 선생을 때리는 건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맞는 입장인데 통쾌함이 있더라고요. 어른이라고 다 잘하는건 아니니까. 거침없이 패대는 세옥이가 멋있었어요. 박은빈에게 편하게 때리라고 했는데 정말 편하게 때렸어요. 눈이 돌아가서 때리더라고요."
설경구는 박은빈과 이번 작품을 통해 선후배를 넘어 좋은 동료가 됐다며 깊은 신뢰를 드러냈다.
"박은빈이 현장에 도착하면 사적인 대화부터 시작해서 끊임없이 이야기 해요. 저는 고맙고 좋았어요. 처음엔 '세옥이 궁금해 하는 것처럼 얘도 그런건가' 싶기도했어요. 촬영장에서나 집에서나 숙소에서 가장 이야기를 많이 한 배우였어요. 캐릭터에 대해 집요하게 이야기를 하는건 아니고 사소한 것부터 이야기 했어요. 제일 친한 동료를 하기로 했어요. 앞으로 가끔 통화하면서, 사적인 대화를 재미있게 할 수 있는 사람이지 않을까 싶어요."
'하이퍼 나이프'를 통해 설경구는 데뷔 32년 만에 첫 의사 역을 맡았다. 완벽한 신을 위해 집도 장면은 일부러 대역을 썼다.
"제가 손가락이 두꺼워서. 수술 장면을 촬영할 때는 의대 교수님이 오셔서 검수를 해주셨고, 전문적으로 촬영을 했어요. 조심스러운 장면이라 클로즈업은 교수님이 직접 해주셨어요. 굉장히 섬세해야 해서, (제 손은) 가짜 같을 까봐. 박은빈은 대역 없이 직접 했어요. 되게 꼼꼼하게 잘 했어요."
![설경구가 '하이퍼 나이프' 종영 기념 인터뷰에 앞서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https://image.inews24.com/v1/39fae046b32821.jpg)
그렇다고 몸이 마냥 편하지는 않았다. 설경구는 악성종양이 생긴 최덕희를 완성하기 위해 체중을 10kg 감량했다.
"이번엔 영화처럼 생각했다가 큰코 다칠 뻔 했어요. (이번 작품은) 제 위주로 스케줄을 짤 수 없었어요. 과거를 찍고 현재를 찍을 줄 알았는데,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찍었어요. 최덕희의 최후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마지막 3일 정도는 절식을 했어요. 촬영하면서 3일 절식 하는건 너무 힘들더라고요."
드라마 결말을 두고 시청자들의 의견이 분분하다. 쿠키 영상에선 세옥이 있는 수술실에 검은 신발을 신은 사람이 들어선다. 시청자들은 '최덕희가 생존한 것 아니냐' '덕희도 섀도우닥터로 살아가는 것 아니냐'는 해석을 했다.
"덕희 입장에서는 그 사람이 제가 아니었으면 해요. 의도대로 (세옥이) 실패를 맛 보고 깨우쳤으면 싶었어요. 보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덕희가 안 죽었으면 하는 마음이 있는 것같아요. 사실 그 몸은 제가 아니에요. 제 걸음도 아니고요. 시청자들이 그 크록스(신발)가 제가 신었던 크록스라고 이야기 하던데, 같은 신발은 많으니깐요(웃음)."
설경구는 드라마 '정주행' 하는 시청자들을 이야기하며 "뜯어서 분석하는 사람들이 있더라. '뜯어서 볼만큼 연기했나' 반성도 하고, 분석해 놓은 것을 보고 '아 그랬구나' 생각한 적도 있다. 한 작품을 갖고 여러가지 해석을 내뱉어주는 것이 감사하다"고 시청자들에 감사 인사를 전했다.
/이미영 기자(mycuzmy@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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