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뉴스24 이성필기자] '바비 롭슨에 따르면, 보비 찰튼에 따르면, 프란츠 베켄바워에 따르면…' 해외 축구 관련 외신 보도를 인용하다 보면 소위 전설(레전드)로 불리는 인물들이 자주 등장합니다. 축구계 현안이 나오면 자기 생각을 가감 없이 밝힙니다. 이를 받아들이는 국내 반응도 대부분 비슷합니다. '전설의 말이 옳다'는 식이죠. 이런 기사를 소비하는 지인 중 한 명이 기자에게 질문을 던지더군요. "한국 축구에는 레전드가 없나. 축구가 이렇게 혼란스러운데 정리해주는 어른이 보이지 않아"라는 겁니다.
그래서 11월 1일 창간 13주년을 맞이한 국내 최초의 스포츠·연예 인터넷 신문 '조이뉴스24'는 한국 축구의 전설들에게 지혜를 구했습니다. 축구 문화, 환경, 분위기 모두 과거와는 단절하고 현재와 미래만을 향해 가고 있어서 노련한 목소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총 3명의 전설들에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한국 축구는 무엇이 문제인가요. 희망은 있을까요?" 3회에 걸쳐 독자들과 만납니다.
첫 번째 레전드는 1994 미국월드컵 대표팀 감독이자 '수원 삼성의 영원한 아버지'로 불리는 김호(73) 용인축구센터 총감독입니다.
"문제를 해결해줘야 하는데 50년 전이나 지금이나 바뀌는 것이 없어요."
횟수로는 총 10회, 연속으로는 9회 월드컵 본선 진출에 성공한 한국 축구이지만 2002 한일월드컵 4강 신화는 아직도 귀신처럼 따라다니고 있다. 월드컵이 남긴 인프라가 K리그와 축구대표팀의 발전으로 이어질 것 같았는데 오히려 퇴보하는 느낌이 만연하다. 수능 벼락치기처럼 월드컵을 앞두고 대책이 쏟아지지만 오래가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지난달 24일 용인축구센터에서 만난 김 감독은 대뜸 닷새 전(19일) 정몽규(55) 대한축구협회장이 축구대표팀 전력 강화를 위해 발표했던 대표팀 지원 직속 기구 신설 등 여러 대책에 쓴소리를 던졌다. 축구계 대표적인 야당으로 불리는 김 감독은 "10년 전이나 20년 전이나 똑같다. (축구협회 행정을 하는 이들이) 조금 괜찮으면 잘한다고 목소리를 키우다가도 이상한 느낌이 오면 바로 조용해지더라. 이런 식의 행정이 하루 이틀도 아니고 참 안타깝다"고 지적하며 일체감이 없는 문화에 화살을 던졌다.
축구협회는 여전히 위기에 직면해 있다. 안으로는 전임 조중연 회장 집행부의 공금 횡령 등 비리 문제에 밖으로는 축구대표팀의 부진으로 비난받고 있다. 앞서 김 감독은 이미 "정몽규 회장 주변에 예스맨이 많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인 바 있다.
"축구협회나 산하 단체에 오래 축구 행정을 해왔던 사람들이 있는데 대체 그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문제가 있으면 회장에게 '이런 문제가 있습니다'라고 직언을 해야지, 왜 입을 닫고 있는가. 같은 축구인으로서 화가 난다. 월드컵을 그렇게 자주 나갔는데 계획이 보이지 않는다. 예를 들어 세계 20위 안으로 진입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면 그에 맞는 계획을 차분하게 짜야 하는데 매번 '눈 가리고 아웅'이다. 아직도 월드컵에 한 번을 나가지 못하는 나라들이 있는데 그들하고 다를 게 뭐가 있나."
대표팀을 이끄는 신태용(47) 감독에 대한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비판은 감내하면서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동시에 월드컵에 맞게 자신의 자세도 고치라고 당부했다.
"지도자와 선수가 과연 같을까. 선수로 월드컵에 나가보지 못했던 사람이 본선에 가서 있으면 더 힘들게 느낄 것이다. (내가) 미국월드컵을 치르면서 느꼈었다. 세계에서 가장 큰 대회를 하는데 무엇을 하겠다는 여유로움이 생기겠는가. 마음을 단단히 먹고 도전하는 것이 필요하다."
K리그에서 99골을 터뜨리는 등 신 감독은 전설 중 한 명이다. 지도자로도 성남 일화를 아시아 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ACL) 우승으로 이끌었고 2016 리우 올림픽 8강 2017 국제축구연맹 20세 이하(U-20) 월드컵 16강 등 나름 경험을 했다. 김 감독은 이런 경험들을 참고하지만 취하지는 말라고 전했다.
"보통 국가대표 출신 지도자들은 자신의 선수 시절만 생각만 하더라. 나도 해보니 그렇다. 절대 선수 시절 생각은 하지 말라. 경험을 바탕으로 접목한 축구를 해야 한다. 남보다 빨리 간다고 서두를 필요가 없다. 선수 시절의 명성과 명장, 두 가지를 다 가진 사람이 많지 않다. 미리 실패를 생각하지 말고 냉정하게 현재를 봤으면 한다."
대표팀에 오는 선수들에게는 더 직설적인 말을 던졌다. 지난달 러시아, 모로코전에서 2-4, 1-3으로 졌다. 내용과 결과 모두 실망감을 안겼다. 김 감독도 당연히 TV로 지켜봤다. "선수들이 감독의 생각을 읽지 못하고 전술 소화도 제대로 못 하는 것 같다. 그저 남의 축구 흉내만 내려는 것 같다. 큰돈을 벌어서 그런지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모습들이 보인다. 머리를 잘 만진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축구를 하는 사람이 축구를 잘해야지 않나. 대표팀이 연예인 모이는 곳인가. 대표 선수라면 국가관이 있어야 하고 내가 하는 행동에 대해 생각이 있어야 한다. 사회와 국가에 기여해야 진정한 대표 선수다. 축구인, 경기인답게 자기 관리를 철저히 하고 나아가야 할 길이 무엇인지 명확한 계획을 세웠으면 한다." 정신력으로만 축구를 하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다. TV를 틀면 해외 축구가 나온다. K리그도 인터넷 동영상 전문 사이트에서 확인하면 다 나온다. 서로의 능력을 아는 이상 기술 향상은 필수다. 상대에 대한 존중은 당연하다. "모로코는 과거에도 축구를 잘했다. 다만 주변국들이 강해 월드컵에서 자주 보지 못했을 뿐이다. 그런 팀을 우습게 보는 것 자체가 이상하지 않은가. 우리는 템포 빠른 모로코에 '얘들아, 나 패스한다'고 알려주는 축구를 하더라. 지금 세계 축구는 정말 빠르게 움직이는데 쉴 곳이 어디 있는가. 90분 동안 템포 싸움이다. 과거야 서로에 대한 정보가 적으니 투지 있게 하라는 말이 통했지 지금은 아니다. 늙은 나도 놀라는데 선수들은 뭐 느끼는 게 없나. 나만 잘 하면 된다는 생각은 제발 버리고 동료와 같이 움직여라. 해외파라고 열심히 하지 않으면 안된다." 대표팀 운영은 그 나라의 축구 문화와도 연결된다. 좋은 팀은 우수한 지도자가 배출되고 재임 기간도 길며 선수도 마르지 않는다. 하지만, 한국 축구는 나쁜 길을 걷고 있다. 일희일비하는 문화에 신음하고 있고 지도자는 대표팀에 와서 실패의 길을 걸으면 블랙홀처럼 사라진다. 긴 시간 선수 육성을 하는 지도자들에게는 두려움, 선수들에게는 허탈감이 번진다. 김 감독은 국민들이 따뜻한 시선에서 대표팀을 봐주고 프로 리그에 대한 관심 기대했다. "대표팀 이야기만 하면 답답하다. 아직도 우리는 그것(대표팀에 대한 고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내가 19살에 서울에 왔는데 50년 이상을 아직도 대표팀 문제만 생각한다. 어떻게 해결이 되나. 국민이 국가대표만 생각하고 있다. 국가대표를 키우는 팀들을 생각해줘야 하는데 말이다. 각 지역(프로팀)이 발전해서 (대표팀이 강해지는 것이) 세계적인 흐름인데 매번 국가만 찾고 있으니 뭐가 좋겠는가. 국가가 어디 가는가. 좋은 선수가 많이 배출될수록 팀은 강해진다. 그런데 그게 되지 않는다. 프로가 대표 선수를 배출하면 팀은 자연적으로 강해지는데 말이다." 김 감독은 2015년 6월 용인시가 직영하는 용인축구센터 총감독에 선임됐다. 선수 키우는 재미에 빠졌다. 성적도 쏠쏠하게 나고 있어서 프로 산하 팀이 우승컵을 휩쓰는 상황에서도 산하 클럽인 신갈고, 원삼중, 백암중이 3개 대회 우승을 차지했다.올해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U-20) 월드컵에도 나섰던 윤종규(경남FC)를 FC서울로 보내는 등 꾸준히 선수가 배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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