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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은 말한다② 서윤찬 "정몽규 회장, 대화 좀 합시다"


소통 못하는 축구계에 일침…"신태용 감독도 선배 지도자들에게 자문해야"

[조이뉴스24 이성필기자] '바비 롭슨에 따르면, 보비 찰튼에 따르면, 프란츠 베켄바워에 따르면'…해외 축구 관련 외신 보도를 인용하다 보면 소위 전설(레전드)로 불리는 인물들이 자주 등장합니다. 축구계 현안이 나오면 자기 생각을 가감 없이 밝힙니다. 이를 받아들이는 국내 반응도 대부분 비슷합니다. '전설의 말이 옳다'는 식이죠. 이런 기사를 소비하는 지인 중 한 명이 기자에게 질문을 던지더군요. "한국 축구에는 레전드가 없냐. 축구가 이렇게 혼란스러운데 정리해주는 어른이 보이지 않아"라는 겁니다.

그래서 11월 1일 창간 13주년을 맞이한 국내 최초의 스포츠·연예 인터넷 신문 조이뉴스24는 한국 축구의 전설들에게 지혜를 구했습니다. 축구 문화, 환경, 분위기 모두 과거와는 단절하고 현재와 미래만을 향해 가고 있어서 노련한 목소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총 3명의 레전드에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한국 축구는 무엇이 문제인가요. 희망은 있을까요?" 3회에 걸쳐 독자들과 만납니다.

두 번째 레전드는 중앙정보부가 만든 축구팀 양지 출신으로 1967년 메르데카배, 1970년 방콕 아시안게임 대표팀 주장을 맡아 우승을 이끈 수비수 서윤찬(76) OB축구회 부회장입니다.

"예전에는 국가를 대표하자는 마음이 있었는데 요즘에는 전혀 보이지 않아요."

70대 후반을 향해 가면서도 목소리는 쩌렁쩌렁 OB축구 복지회 사무실을 흔들었다. 최근에 노익장을 발휘하며 축구를 하다 어깨를 다쳐 병원에 다녀왔다면서도 한국 축구 대표팀 이야기가 나오자 서 부회장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서 부회장은 1941년생이다. 부산상고(현 개성고) 2학년 시절 축구를 시작했다. 늦깎이였지만 활동량으로 버텼고 금성방직, 제일모직을 거쳐 중앙정보부가 만든 양지에서 뛰었다. 양지 출신이면 거의 대표 선수가 됐고 이른바 '105일 해외 전지훈련'을 경험한 세대다. 1967년 메르데카배를 우승했고 킹스컵은 1968~1970년 3연패 주역이었다. 1970년 방콕아시안게임 우승, 같은 해 아시아 올스타에 선발되는 등 촉망받던 국가대표였다. 1971년 심장질환으로 더는 국가대표와 인연을 맺지 못했다.

"국가대표들이 자신을 보호하려는 축구를 하는 것 같다."

지난달 31일 서울 효창운동장 내 OB축구 복지회 사무실에서 만난 서 부회장은 한국 축구의 현 상황에 대해 답답함을 감추지 못했다. 지난달 축구대표팀이 치른 러시아, 모로코전을 모두 TV로 봤다며 대표팀에 강인함이 보이지 않는 것이 안타깝다고 진단했다.

"중계를 보면서 '혹시 다치면 내가 팀에 가서 (주전 경쟁에서 밀리는 등) 불이익을 당하면 어쩌나'하는 그런 생각이 보이더라. 우리는 보면 안다. 다리를 빼고 있구나, 몸싸움을 안 한다는 것을 느낀다. 실력이 부족하면 상대보다 더 많이 뛰어주면 되는데 말이다. 현역 시절 대부분은 보통 경기당 7~8km를 뛰었는데 나는 평균 12km를 뛰었다. 그래서 실력이 부족한 부분이 보완됐다. 요즘은 자기 위치에서 협력이 없어요. 그렇게 해서 어떻게 상대를 이깁니까."

러시아전을 예로 든 서 부회장은 신태용(47) 축구대표팀 감독의 전술과 실험에 대해서는 이해를 하면서도 선수 배치에 대해서는 좀 더 심사숙고할 필요가 있다고 진단했다.

"러시아전에 이청용을 오른쪽 윙백으로 내세우지 않았는가. 일단 수비를 못 봤다고 하고 싶지는 않다. 원래 측면 공격수 아닌가. 공격은 좋은데 수비는 일대일에서 밀리면 실점 상황이었다. 꼭 윙백에 놓아야 했는가 싶다. 지금이 시험 무대인가? 정예부대를 만들어야지. 중앙 수비수 김영권도 그렇다. (볼을 가지고) 돌아서는 것이 조금 느린 것 같다. 수비에서부터 공격이 시작되는데 패스의 70%는 남에게 연결하는 것 같다. 대표 선수들에게 헝그리 정신을 강요하기는 어렵지만, 예전에는 그런 것들이 있었다. 요즘은 대표팀을 하면 (프로팀에서) 연봉을 더 많이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싶은 태도들이 보인다."

신 감독의 화통한 성격을 모르지 않는 서 부회장은 '대화'라는 수단을 꺼내 들었다. 신 감독이 혼자 고민하지 말고 월드컵을 경험했던 선배 지도자나 원로들에게 자문하며 보완하라고 조언했다. 고립을 자초하면 그렇지 않아도 팬들로부터 단순히 경기력 저하로 비난을 받아 위축된 신 감독이 더 힘들게 팀을 끌고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신 감독이 기술위원과 의논도 하고 물어보면서 했으면 좋겠다. 그래야 답도 얻고 보완점도 확인하지 않겠는가. 정말 필요하다면 월드컵을 경험한 선배 감독들에게 지혜를 구했으면 한다."

"정몽규 회장이여, 대화를 합시다."

화살은 대표팀 운영을 어렵게 만든 축구협회로 향했다. 정몽규(55) 회장이 사과 기자회견을 열고 대책을 쏟아냈지만, 미봉책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수뇌부들이 제대로 회장에게 외부의 의견이나 여론을 전달하고 있지 않은 것 같다는 지적도 있었다.

"수뇌부 모두가 자기변명만 하고 있다. 회장도 책임지지 않고 있다. 외국인 코치를 영입한다고 하는데 감독에게 말을 한다고 다 듣겠는가. 월드컵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축구 원로, 월드컵 경험한 감독들 모아서 한 번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눴으면 좋겠다."

지난달 7일 축구대표팀이 우즈베키스탄 원정에서 0-0으로 비기며 2018 러시아월드컵 본선 진출권을 갖고 왔을 당시 서 부회장은 인천국제공항에 나갔다. 김호(73), 김정남, 차범근(64), 허정무(62) 등 전직 국가대표 감독들이 모두 나와 대표팀을 격려했다.

환영식이 끝난 뒤 서 부회장은 정 회장이 차나 한잔 하자고 해서 원로 및 감독들과 모였다고 한다. 그런데 정 회장이 보인 태도에 실망을 감추지 못했다고 한다. 분위기 자체가 회장에게 어떤 말도 제대로 꺼내지 못했고 생산적인 대화의 장이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당시 거스 히딩크 감독 영입설이 터져 분위기는 다소 어수선했다.

"누가 무슨 말을 할까 싶어 들어봤는데 아쉽더라. 개인적으로는 히딩크 감독을 기술고문으로라도 활용하면 좋지 않을까 싶었는데 그런 분위기는 아니었다. 곁에 있던 김호 감독이 다소 화가 났길래 만류한 뒤 차담회를 끝내고 나오면서 우리끼리 따로 좌담회를 갖든지 하자고 했다. 한국 축구에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지만 썩은 부분은 도려내자는 동기 부여는 있었다."

서 부회장은 정 회장이 진정으로 원로들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정책 결정을 했으면 좋겠다고 지적했다.

"정 회장을 개인적으로 만나기 참 어렵다. 안기헌 전무나 부회장단 등이 나 같은 외부의 의견을 전달해야 하는데 하지 않은 것 같다. 정 회장은 '안 전무가 만나봐요' 이런 식이다. 한국 축구를 이해한다면 그런 태도는 아니라고 본다. 만약 내가 OB회장 자격이었다면 면담하자고 백번을 요구했을 것 같다. 문제점을 지적하고 싶은데 기회도 없고 만나려면 하늘의 별 따기다. 내 나이가 일흔일곱인데 대체 이런 상황에서 한국 축구를 위해 무엇을 뜯어고쳐야 하나 싶다."

사실, 서 부회장이 몸담은 OB축구회는 한국 축구의 대표적인 원로 모임이다. 효창 운동장 구석에 있던 사무실을 축구회관 내로 옮겨 운영하고 있다. 1986 멕시코월드컵과 울산 현대 사령탑을 맡았던 김정남(74) 감독이 회장을 맡고 있다.

기자는 지난해 수도권 이남 프로 경기 취재 이동 중 김 회장을 기차에서 하차하다 만난 일이 있다. OB축구회 회장이니 당연히 기사가 딸린 전용 차량으로 경기장에 이동한다고 생각했고 또 그렇게 듣기도 했기에 (꼭 그런법은 없지만) 놀랐다. 역에서 경기장까지 손수 버스표를 구매했고 수도권에서는 전철, 버스를 타고 다녔다. 심지어 먼 거리를 한참 걷는 모습도 봤다. 축구협회의 축구 원로에 대한 예우가 이 정도 밖에 되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다. 김 회장에게도 이번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한국 축구를 위해서"라며 정중히 사양했다.

물론 OB축구회가 특별히 한국 축구의 원로 그룹으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제대로 인식하는 축구팬들은 많지 않다. 특히 젊은 지도자들과는 거리가 먼 느낌이다. 취재 중 만났던 40대 후반 지도자 A씨는 "OB축구회는 '어른들' 조직이라 가입하기가 좀 그렇다"며 묘한 태도를 보였다. 물론 OB축구회 자격 요건은 까다롭다. 만 40세 이상으로 대한축구협회 등록된 사실이 있는자여야 가입이 가능하다.

"축구협회가 1년에 1억원 정도를 복지회 사무실 임대료를 내준다. 원로들을 가끔 불러서 식사와 선물을 챙겨주는 정도다. 그마저도 부족해 산하 연맹에 가서 도와달라고 사정해서 일부를 받는다. 원로들은 다들 그런다. 그래도 오늘날 (한국 축구와 축구협회를) 이 정도로 올려놓은 것이 우리가 아닌가. 그러니 (미래 한국 축구 발전을 위해) 정 회장에게 가서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약속을 잡겠다며 안 전무를 만나러 가겠다고 하면 김정남 회장처럼 말리는 이들이 있다."

이에 대해 축구협회 한 고위 관계자는 "OB 축구회 등 원로들을 위해 최대한 노력하고 있다. 앞으로 복지 사업 등에도 더 힘쓰려고 노력하고 있다. 미흡하게 보이는 부분이 있다면 죄송하다"고 전했다.

"축구계 시야에서 벗어나 다른 세상을 좀 봅시다."

자기 자랑은 아니지만, 축구인들이 축구 논리에만 빠져 있지 않기를 기대했다. 사회 경험을 해보니 힘들었더란다.

"지도자 입문 후 부산 동아고와 동아대 감독을 오래 하니 눈치가 보이더군요. 그래서 관두고 서울로 상경해서 택시 운전을 해봤어요. 그때가 1990년이었는데 누가 알아볼까 봐 모자를 쓰고 운전을 했어요. 아! 그런데 한 번은 손님을 태우고 가는데 라디오에서 축구 중계가 나옵디다. 그러자 그 손님이 '옛날에 서윤찬이라고 작은 선수 하나 있었는데 요즘은 그 사람처럼 팔짝팔짝 뛰는 선수가 없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모자를 벗으면서 '서윤찬과 많이 닮았죠'라고 하니 놀랩디다."

택시 운전은 정말 어려워 40일 만에 관뒀고 칼국수 가게와 김밥 장사까지 축구를 떠나 많은 일을 해봤다고 한다. 그 속에서 인생의 교훈과 진리를 얻었단다.

"축구인 대다수는 축구만 해봐서 바깥세상을 잘 몰라요. 축구로 커왔고 (일부의 경우) 축구협회의 녹을 먹어왔으니 축구협회 못마땅한 일은 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어요. 그러면 안 되죠. 세상은 정말 넓어요. 축구인들이 좀 더 넓게 봤으면 좋겠습니다. 축구가 미치는 영향은 정말 크단 말이에요. 지금 대표 선수들이나 축구협회 수뇌부들이 정말 제대로 알았으면 좋겠어요."

현대산업개발을 운영하는 정 회장이 축구협회도 좀 더 효율적으로 냉철하게 운영해주기를 기대했다.

"이참에 정 회장이 축구협회 대수술을 하기를 바란다. 그렇지 않으면 정말 더 어려워질 것이다. 잘 생각했으면 한다."

마지막으로 한국 축구 종사자와 팬들에게 한마디를 던졌다. 아래 영상으로 갈음한다.

조이뉴스24 효창=이성필기자 elephant14@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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