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뉴스24 권혜림기자] 상처 위에 꿋꿋이 서서 생을 버텨 온 두 사람이 있다. 문수는 갑자기 무너져버린 건물과 그 사이로 사라진 동생의 모습을 자주 꿈에서 본다. 강두의 꿈에는 바쁘게 돌아선 아버지의 얼굴, 허무하게 마지막이 돼 버린 그 모습이 나타난다.
새로 지어진 대형 쇼핑몰이 붕괴돼 수십 명이 사망한 참사. 문수와 강두는 한날한시 벌어진 사고의 기억을 안고 살아 온 청춘이다. 공교롭게도 가장 잊고 싶었던 상처의 땅에 문수와 강두는 함께 발을 딛게 된다.
지난 11일 첫 방송된 JTBC 새 월화드라마 '그냥 사랑하는 사이'(극본 유보라, 연출 김진원, 제작 셀트리온엔터테인먼트, 이하 그사이)는 거칠지만 단단한 뒷골목 청춘 강두(이준호 분)와 상처를 숨긴 채 평범한 일상을 꿈꾸는 건축 모델러 문수(원진아 분), 인생을 뒤흔든 사고에서 극적으로 살아남은 두 남녀가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가는 과정을 그린다.
이날 방송에서는 여전히 비극적 사건을 꿈에서 만나며 괴로워하지만 이를 덤덤히 이겨내려 노력하는 두 인물의 모습이 그려졌다. 문수는 누구보다 안전을 중시하는 건축 모형 제작자가, 강두는 건설·부두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됐다. 얼핏 두 사람의 직업은 이들이 과거의 기억을 이겨낸 것처럼 보이게 하지만, 문수와 강두는 10여년 전 사건을 여전히 꿈에서 만난다. 엘레베이터를 타지 못하게 된 문수는 "창문이 없어 답답하다"며 고층 건물을 걸어 오르내린다.
문수의 가족은 동생을 먼저 보낸 뒤 또 다른 이별들을 겪었다. 아이를 지키지 못했다는 자책감은 아내를, 남편을, 첫째 딸 문수를, 서로를 원망하게 만들었다. 남편과 헤어져 혼자 남은 엄마 윤옥(윤유선 분)은 매일을 술에 의지하고, 문수는 그런 엄마 대신 목욕탕 일까지 도맡는다. 동네 사람들의 말을 빌리면 "자식 판 돈으로 낸" 목욕탕이다.
밝은 모습을 지키려 애쓰는 문수의 앞에, 임금 체불 문제로 맞붙어 싸워 만신창이가 된 강두가 나타난다. 일을 받고 심부름 차 들렀던 건물 계단에서 우연히 만났던 두 사람은 그렇게 재회한다. 아버지 하동철(안내상 분)의 집에 강두를 눕게 한 문수는 그의 모습을 들여다보다 돌아선다.
하지만 문수와 강두는 똑같은 상처가 묻힌 터에서 다시 만날 일을 앞뒀다. 자신이 참여한 프로젝트가 과거 사고 현장에 들어설 건물에 대한 것임을 뒤늦게 안 문수는 무너진다. 안전한 건축물을 만들겠다며 고심해 완성한 모형을 흔들어 망쳐버린다. 그리고 강두는 작심한듯 현장을 찾아 속절없이 세워진 추모비를 깨부순다. 한날한시의 비극으로 인생이 할퀴어졌던 남녀는 꼭 이 땅에서 다시 만나게 된다. 이 재회가 상처를 딛고 일어설 두 청춘의 미래를 예고하게 될지, '그사이'의 다음이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그사이'의 첫 회가 성공적으로 안방에 눈도장을 찍었다면, 그 이유 중 하나로 배우들의 연기를 빼놓을 수 없다. 여러 편의 영화와 드라마에서 연기력을 다졌던 이준호는 2PM의 멤버라는 익숙한 수식어를 잠시 잊게 만들 연기를 펼쳤다. 분노를 꾹꾹 누른 눈빛, 그 안에 감춘 인물의 선한 성품까지 무리 없이 그려냈다.
높은 경쟁률을 뚫고 파격 발탁된 원진아 역시 드라마 출연이 처음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연기를 보여줬다. 큰 감정의 변화를 그려내지 않고도 인물이 품어 온 고민과 체념, 꿋꿋이 지켜 온 건강한 정신을 맑은 표정으로 완성해냈다.
문수 모 윤옥 역 윤유선의 연기도 인상적이었다. 어린 딸을 지켜내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그로 인해 피폐해진 일상, 살아 돌아온 첫째 딸을 향한 복잡한 마음, 그럼에도 숨길 수 없는 모정까지, 베테랑 배우의 연기 내공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는 장면들이었다.
그런가하면 첫 방송에 앞서 열린 제작발표회에서 예고된대로, '그사이'가 소재로 삼은 사고는 삼풍백화점 붕괴, 성수대교 붕괴, 세월호 참사 등 한국사회에 실제 발생했던 참극들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오프닝 크레딧에는 바다에 반쯤 잠긴 배, 무너진 다리, 폐허가 된 건물의 이미지가 배치돼 이를 보다 직접적으로 연상시켰다.
'그사이'는 매주 월·화요일 밤 11시 방송된다.
조이뉴스24 /권혜림기자 lima@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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