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뉴스24 권혜림기자] 배우 김태리의 등장은 강렬했다. '아가씨'로 2016년 영화 관련 시상식의 신인상을 휩쓸었다. 과감한 도전 뿐 아니라 신인이라곤 믿기 어려운 탄탄한 연기력이 호평을 이끌어냈다. 뛰어난 재능, 신선한 외모, 영화 관계자들 뿐 아니라 기자들 사이에서도 회자된 단단하고 올곧은 성품까지, 김태리는 한국영화계를 이끌 차세대 배우로 손색없는 연기자라 평가받아왔다.
임순례 감독의 신작 '리틀 포레스트'를 차기작으로 정했던 그는 사계절을 모두 담아야 하는 영화의 특성 상 이 영화 캐스팅 이후 출연을 결정한 '1987'로 먼저 관객을 만나게 됐다. 누구보다 화려했던 데뷔 이후, 그가 두 번째 선보이는 영화가 바로 '1987'이다. 김윤석, 하정우, 유해진, 이희준, 박희순 등 쟁쟁한 선배 배우들 사이에서, 김태리는 신인으로서 유일하게 주연을 꿰찼다.
두 번째 작품을 내놓는 실력파 신예들의 부진을 말할 때 쉽게 언급되는 '소포모어 징크스'는 김태리를 가볍게 비켜간듯 보인다. '1987' 속 김태리는 보통 사람과 가장 닮아있는, 그리고 가장 희망에 가까운 대학생 연희 역을 무리 없이 소화해냈다.
18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영화 '1987'(감독 장준환, 제작 우정필름)의 개봉을 앞둔 김태리의 라운드 인터뷰가 진행됐다.
'1987'은 1987년 1월, 스물두 살 대학생이 경찰 조사 도중 사망하고 사건의 진상이 은폐되자, 진실을 밝히기 위해 용기냈던 사람들의 가슴뛰는 이야기를 다룬다.
87학번 대학 신입생 연희 역을 맡은 김태리는 '아가씨'로 큰 주목을 받은 뒤 이 영화를 선보이게 된 소감을 묻는 질문에 답했다. 그는 "차기작으로는 '리틀 포레스트'를 먼저 결정했고 '1987'은 그 뒤였다"며 "처음 시작할 때의 부담감은 그렇게 크지 않았다"고 돌이켰다. 그는 "'리틀 포레스트'는 주연으로 이끄는 부담이 컸다면 '1987'은 너무 많은 선배들, 멋진 분들이 많이 나와서 조금 덜 부담이 되더라"고 말했다.
하지만 출연을 결정할 때 느끼지 못했던 부담감은 촬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며 김태리를 찾아왔다. 그는 "촬영을 시작하고 나서 그런 부담이 왔다"며 "연희가 영화의 중반 이후 등장하기 시작하고, 앞에 쌓은 선배들의 에너지를 받아 연희가 그 에너지를 딛고 흘러가야 했다. 다이내믹하고 복잡한 감정이 많아 촬영하며 고민이 많이 됐다"고 고백했다.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사건으로 시작되는 '1987'의 전반부는 무겁고 치열하다. 사건의 진실을 은폐하려는 세력과 이를 규명하려는 세력 간의 충돌이 영화의 절반을 채운다. 연희와 한열(강동원 분) 등 새로운 인물들은 중반부 이후에 등장한다. 특히 한열과 삼촌 병용(유해진 분)을 통해 각성을 겪는 연희의 역할은 '1987'의 숨결과도 같은 존재였다.
김태리는 "뒷부분의 연희가 보여주는 감정이 깊어지고, 사건이 휘몰아쳤을 때의 연희는 감정적으로 힘든 상황을 만난다"며 "그런 면을 걱정했었다"고 답했다. 이어 "캐릭터를 보다보니 뒷 이야기가 살기 위해선 갓 20세가 된 연희의 모습, '마이마이'를 좋아하고 방 안에 브로마이드를 붙여놓은, 삼촌과 티격태격하는 장면들이 잘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독도 똑같은 생각을 하셨기에 그런 장면들을 더 즐겁고 재밌게 촬영하려 했다"고 설명했다.
'1987' 출연 결정을 계기로 지난 2016년 겨울 촛불집회에도 참석했다고 밝힌 김태리는 "애초에 감독과 캐릭터와 시나리오에 대해 이야기할 때 내가 경험한 촛불과 연희가 경험한 광장의 사람들이 약간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며 "저도 연희처럼 잘 모르는 상태로 살다가 (광장에) 간 것이었는데, 제가 광장에 갔을 때는 광화문의 많은 사람들을 보며 슬픈 감정을 느꼈다"고 말했다.
"저 많은 사람들이, 많은 것을 할 수 있는 일과 시간을 버리고 뭔가를 바꾼다는 생각으로 나온 것 아닌가"라고 말을 이어간 김태리는 "추운 광장에서 '하하하' 웃으며 서로 힘을 내는 게 너무 슬프더라. 울컥했던 면이 있었다"며 "연희가 본 광장은 그와 많이 달랐다"고 알렸다.
광장 한 가운데 우뚝 선 연희의 모습에 대해선 "마지막에 찍은 장면이라 많이 고민했다"며 "나는 종교가 없는데 종교에 빠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구원자가 있다면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싶더라"고 돌이켰다.
이어 "엉망진창이 된 상황과 가족의 슬픔을 이 사람들이 구원해주는듯한, 희망적인 느낌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덧붙인 김태리는 "가만 있으면 안될 것 같은, 가만 있으면 가슴이 터질 것 같은, 어쩔 수 없으니 광장으로 뛰쳐나가야 했던 그 느낌은 내가 본 광장의 모습과 비슷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영화는 오는 27일 개봉한다.
조이뉴스24 권혜림기자 lima@joynews24.com 사진 정소희기자 ss082@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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