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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1회 칸 결산①]무관의 ’버닝’, 초청 값졌던 이유


경쟁부문 수상 불발…압도적 평점·비평가연맹상으로 완성도 입증

[조이뉴스24 권혜림 기자] 충분히 빛났다. 제71회 칸국제영화제가 12일 간의 여정을 마무리하던 지난 19일, 영화 '버닝' 팀은 내심 기대했을지 모를 칸 경쟁부문 수상엔 실패했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가 비춰지는 폐막식 레드카펫의 주인공은 그들이 아니었지만, 짧았던 4일 간 '버닝'의 칸 여정은 그 어느 플래시 세례보다도 뜨겁게 반짝였다. 비평가협회상을 수상한 결과가 말해주듯, 칸을 찾은 세계의 평론가들은 한국의 세 젊은이를 주인공으로 한 이 영화에 열광했다.

흔히 '언론플레이'로 불리는 과장된 리액션이 아니다. 유력 영화 매체 스크린인터내셔널과 르필름프랑세즈의 칸국제영화제 소식지 평점 취합표에서 '버닝'은 최상위권의 점수를 기록했다. 두 매체의 평점표는 매해 칸국제영화제를 찾는 관객과 기자, 평론가들 사이의 주요 참고자료다. 호평작의 수상 여부와는 별개로 영화제의 취재진과 관객이 관람작을 결정할 때 큰 공신력을 지니는 자료라는 뜻이다.

'버닝'은 스크린데일리 평점 집계에서 3.8점(4점 만점)의 점수를 얻었다. 이는 올해 경쟁부문 초청작 평점 중 가장 높은 기록일 뿐 아니라 스크린데일리 역대 최고 별점이었다. 10개 매체 중 8개 매체의 평론가들이 만점인 4점을 부여했고 두개 매체가 별 세 개를 선사했다.

평단의 호응이 칸 수상 결과와 늘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매해 바뀌는 칸 심사위원단과 각국 평론가들의 평가 중 어느 것이 더욱 옳거나 공정하다고 할 수도 없다. 세계의 수작들이 모이는 칸 경쟁부문에서 완성도를 기준으로 영화를 평하는 데엔 한계가 있다. 감흥이 서로 달랐을 뿐이라는 표현이 적절해보인다. 분명한 것은 칸 심사위원단의 숫자 그 이상으로 '버닝'에 '버닝'한 현지 관객들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버닝'은 지난 19일 폐막식이 열리기 전인 오후 4시, 팔레드페스티벌에서 열린 국제비평가연맹상 시상식에서 경쟁부문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이 부문은 각국 영화제 조직에서 주관하는 형태의 공식 시상은 아니다. 세계 영화 비평가와, 영화기자, 각국 평론가 단체가 가입된 국제비평가연맹이 세계 유수 영화제에서 영화제 기간 중 최고의 작품성을 자랑한 영화들에 격려와 존중을 보내는 의미의 상이다.

경쟁부문, 감독주간, 비평가주간 부문에서 각각 최고의 작품을 한 편씩 선정해 수상한다. 올해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초청작 중 세계의 비평가들이 택한 영화는 이창동의 '버닝'이었다.

이날 이창동 감독은 무대에 올라 뜨거운 박수를 받으며 "심사위원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여기는 레드카펫도 화려한 플래시도 없지만, 레드카펫에 올라갈 때는 비현실 같았다면 여기는 나에게 더 현실적으로 느껴진다"고 말했다.

이어 "'버닝'은 현실과 비현실, 있는 것과 없는 것,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산책하는 미스터리영화였다"며 "함께 그 미스터리를 안아 주셔서 감사드린다"고 덧붙였다. 또한 "오정미 작가, 함께 일했던 스태프, 화면이 스크린에서 숨쉬게 해 준 촬영감독, 사운드를 만들어주고 음악을 만들어주고 그 모든 것을 만들어준 스태프들에 감사하다"고 알렸다.

칸을 찾은 배우 유아인, 스티븐연, 전종서는 영화가 공개된 뒤 처음으로 취재진을 만나 '버닝'이 품은 메시지에 대해, 거장 이창동 감독과의 작업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했다. 이미 기자들 사이에서 화려한 언변과 재치있는 매너로 잘 알려진 유아인은 물론이고 베일에 가려졌던 신예 전종서, 할리우드 배우 스티븐연과의 만남도 인상적이었다.

특히 제작보고회와 출국 전 기자회견 등 공식석상에서 지나치게 긴장한 모습을 보였던 전종서는 소규모로 진행된 인터뷰에선 보다 편안해진 얼굴로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풀어놨다. 삶과 연기에 대한 깊은 고민들을 들으며 영화 속 해미와 대화를 나누는듯한 느낌도 들었다.

스티븐연은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할리우드에서도, 한국에서도 느끼는 고립감을 고백했다. 할리우드 작품 속 아시아인이 주로 전형성에 갇힌 캐릭터로 재현되는 것을 언급하며 '버닝'의 벤 역이 자신에게 얼마나 큰 자유로움을 줬는지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유아인은 '버닝' 팀을 아우르는 분위기메이커로 보였다. 16일 프리미어 당시 긴장한 전종서의 손을 꼭 잡고 뤼미에르대극장에 들어서는 모습부터 뒤돌아 스티븐연의 어깨를 감싸는 순간까지, 칸을 처음 찾은 배우라곤 믿기지 않을만큼 여유로웠다.

인터뷰 사진을 촬영하거나 잠시 쉬는 중에도 배우와 스태프 등 동료들과 시종일관 웃으며 대화를 나눴다. 인터뷰 중 칸 초청 소감을 묻는 질문에 "한 번 즐기러 오는 것"이라며 영화제의 흥분에 취하거나 스포트라이트를 욕심내지 않겠다고 했던 그는 말 그대로 5월의 칸을 유쾌하게 즐겼다.

'버닝'은 유통회사 알바생 종수(유아인 분)가 어릴 적 동네 친구 해미(전종서 분)를 만나고, 그녀에게 정체불명의 남자 벤(스티븐 연 분)을 소개 받으면서 벌어지는 비밀스럽고도 강렬한 이야기. 일본의 유명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 소설 '헛간을 태우다'에서 모티프를 얻은 작품이다. 지난 17일 국내 개봉해 관객을 만나고 있다.

한편 이날 시상식의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은 일본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만비키 가족'이 수상했다.

조이뉴스24 칸(프랑스)=권혜림기자 lima@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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