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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FF★]'아워바디' 최희서, 순간에 충실한(인터뷰)


"'박열'로 11관왕, 책임감 갖고 다양한 모습 보이고 싶다"

[조이뉴스24 권혜림 기자] 영화 '아워바디'(감독 한가람, 제작 한국영화아카데미 KAFA)의 자영(최희서 분)은 행정고시 준비생이다. 명문대 타이틀을 달고 8년을 고시 공부에 매달렸지만 시험엔 번번이 낙방한다. 자신을 돌아볼 새도 없이 훌쩍 흘러버린 시간 속에서 애인도 떠나고, 엄마의 믿음도 흔들린다. "공무원은 못 돼도 사람답게는 살자"며 안녕을 고하던 애인의 표정에 감정은 없다. 크게 웃지도, 크게 말하지도, 크게 움직이지도 않는 자영의 일상도 그 즈음 무색무취의 공기를 닮아갔다. 하지만 "사람답게는 살자"는 무게 없는 말은 자영을 가만히 건드린다. '사람다운 삶'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그것이 지금 자신의 생은 아닌 것 같다는 강렬한 감각이 인다.

'사람다운' 것들과 '사람답지 못한' 것들을 곰곰 되짚었을 어느 순간, 자영의 앞에는 한 눈에 보아도 건강한 모습으로 동네를 달리는 러너 현주(안지혜 분)가 나타난다. 무기력한 자신과 너무나 다른 종류의 에너지를 풍기는 현주의 뜀박질에 자영은 매료된다. 단지 현주처럼 되고 싶다는 마음을 품었을, 혹은 현주의 길에 무언가 다른 답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을 자영은 그와 함께 조깅을 시작하고 점차 활력을 찾게 된다. 자영의 몸은 놀랍도록 건강해지고 미소와 눈빛에도 여유가 깃든다. 그리고 자영은 건강한 몸 안에서 움직이는 자신의 욕망을 탐색한다. 원하는 행동을 하고, 원하는 말을 하며, 자신의 진짜 모습을 알길 원하게 된다.

최희서는 이 한 편의 영화를 오롯이 끌고 가는 주인공 자영으로 분해 관객을 만난다. 지난 9월 토론토국제영화제에서 첫 선을 보인 데 이어 지난 4일 개막한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한국 관객들과도 소통한다. 9년 전 영화 '킹콩을 들다'(2009)로 처음 영화계에 발을 들인 그는 '동주'(2016), '옥자'(2017), '박열'(2017)까지 최근 3년여 간 인상적인 활약을 이어왔다. '박열'에서는 아나키스트 가네코 후미코 역을 맡아 한국영화계에 오래도록 기억될 여성 캐릭터를 완성했다. 이 영화로 그는 무려 여우주연상과 신인상을 포함해 11개의 영화상 트로피를 거머쥐는 진기록을 세웠다.

하지만 '아워 바디'는 최희서를 결코 전작의 영광에 가둬두지 않을 작품이다. 일련의 각성을 통해 자신의 몸을, 섹슈얼리티를, 궁극적으로는 진짜 자신의 삶을 좇는 자영의 모습은 최희서가 연기한 그 어느 인물들보다 현실적이고 또 끈질기다. 영화 '박열'은 뛰어난 일본어 실력을 지닌 최희서의 특기를 100% 활용한 작품이었다. 반면 '아워 바디'는 그의 진가를 설명하며 연기력 외 다른 재주를 언급하는 것이 얼마나 불필요한 일인지 정확히 알게 만들 영화다.

지난 4일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 직후 해운대에서 최희서를 만났다. '아워 바디'를 들고 부산의 관객을 만날 생각에 기분 좋은 설렘을 보였던 그와의 대화를 옮긴다. 드라마 촬영으로 한창 바쁜 시기지만, 그는 관객과의 대화(GV)를 통해 더 많은 관객들을 만나고 싶다며 서울-부산 왕복 일정을 한 회 더 추가할 만큼 '아워바디'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다. "매 순간 후회 없는 선택을 하며 필모그라피를 만들어나가고 싶다"고 말하는 그에게, '아워바디'는 이 순간 가장 고귀한 보물이었다.

영화의 공식 개봉 시기가 정해지지 않은 만큼 스포일러가 될 법한 내용들은 최대한 제외해 기술했음을 밝힌다.

한편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는 오는 13일까지 부산시 일대에서 진행된다.

이하 최희서와 일문일답

-한국영화계에서 찾아보기 어려웠던 과감하고 신선한 접근의 영화다. 어떻게 출연을 결정하게 됐는지 궁금하다.

"특이한 인연이 있었다. 2016년 '옥자' 촬영을 마치고 '박열'을 찍기 전, 한국영화아카데미의 영화에 너무 출연하고 싶어 직접 프로필을 돌렸다. 좋은 종이에 열 부의 프로필을 뽑아서.(웃음) 1층에 감독들이 작업하거나 미팅을 하는 공간이 있는데 그 곳에 세 부를 올려 두고 다른 곳에 나머지 세 부도 올려놨다. 그 옆에 노트북이 있었는데, 띄워진 화면에 '장례난민'이라는 글자가 있더라. 한가람이라는 감독의 이름도 적혀 있었다. '특이한 제목이네' 생각했는데, 그 때 본 내 프로필을 한가람 감독이 1년 간 가지고 있었던 거다. 단편 '장례난민'으로 좋은 성과를 낸 감독은 그로부터 약 1년 후 '박열'을 홍보 중일 무렵 직접 전화를 걸어 왔다. 그 프로필을 보고 언젠가 같이 작품을 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고, 시나리오를 보내주겠다고 했다. 자영 역 캐스팅에 난항을 겪고 있었는데, 내가 '박열'로 지명도가 높아져 출연하지 않을 거라 생각하면서도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에 연락을 주셨다더라. 시나리오를 읽고, 100% 시나리오의 힘으로 너무 흔쾌히 출연을 결정했다."

-'아워바디'는 그리 설명적인 영화가 아니고, 자영의 심리 역시 쉽게 이해하기는 어렵다. 보기에 따라 여러 해석을 이끌어낼 법한 이야기인데, 이 영화가 어떤 작품이라 생각하고 출연을 결정했는지도 말해달라.

"시나리오 자체가 다양한 시각으로 삶을 바라보고 있다. 30대 초반 한국 여성의 삶을 바라보게 하는 이야기에 공감이 갔다. 내가 자영이라도 이런 선택을 할 수 있을지 궁금하더라. 일보다 내 몸에 더욱 심취할 수 있을지 내게 질문을 던져준 영화라 흥미로웠다. 쉬운 영화가 아니라는 점은 처음 시나리오를 읽을 때도 명확하게 다가왔다. 하지만 한가람 감독과는 함께 고민하고 연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영화를 찍으며 자영을 조금 더 알게 됐고, 지금은 더 명확히 정리된 것 같다. 이 영화가 결코 '새드엔딩'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저 자신의 진실된 모습을 찾아가는 한 여성의 여정이라 생각한다. 자영의 마스터베이션 장면 역시 그렇다. 그 장면의 지문은 '자영이 오롯이 마스터베이션을 한다'는 내용이었다. '오롯이'라는 단어가 정말 좋았다. 자영이 직장, 엄마, 친구들의 시선에서 떠나, 오롯이 나 혼자 있고 싶었던 공간에서 나를 바라보는 모습이지 않나. 어찌보면 굉장히 희망찬 엔딩이라 생각하게 됐다."

-결말이 열려있는 만큼 한국 관객들의 반응 역시 궁금하다. 어느 때보다 GV가 기대될 법한데.

"관객의 반응이 너무 궁금하다. 어찌보면 답이 없는 질문을 거듭하는 영화라는 점이 나는 더 좋았다. 어떻게 사는 것이 인간다운 것이고, 나 자신으로 사는 방법이 무엇인지 먼저 생각하게 되지 않나. 사실 자영은 몸이 건강해진 뒤에도 결국 회사에서의 관계나 엄마와의 관계에서 문제를 겪는다. 토론토국제영화제에서도 '그래서 이 영화의 결말이 해피엔딩인지 새드엔딩인지 모르겠다'는 질문이 있었다. 이 영화에 대한 내 마지막 질문도 그것이었다. 첫 질문이 '어떻게 사는 것이 30대 여성으로서 인간답게 사는 것인지'였다면 나중엔 '몸이 마음을 지배하는 것일까, 마음이 몸을 지배하는 것일까'를 고민했다. 어찌보면 철학적이고 어려운 질문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전의 자영은 그런 질문 자체를 하지 않고 살던 인물이라는 점이다. '인간답게 살자'며 떠난 남자친구의 말에 충격을 받고 시험을 보지 않지만, 그 뒤에도 자영은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하는지 알지 못한다. 그러다 현주의 모습을 멋지다고 느끼고, '달려볼까?'라는 마음에 시작한 러닝에 점점 빠져들게 된다. 이 영화를 찍으면서는 자영의 '이런 모습'과 '저런 모습'을 달리 생각하지 않으려 했다. '아워바디'는 자영이 구체적으로 질문을 만들며 자신을 찾아가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나 역시 그 과정을 겪고 싶었다. '박열'의 이준익 감독은 '애매한 것은 좋지 않지만, 모호한 것은 좋다'고 이야기하셨는데, 그 안에서 또 다른 좋은 질문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며 촬영했다."

-실제 최희서의 삶과 극 중 자영은 얼마나 닮아 있나.

"나와 자영에겐 다른 본질이 있다. 내가 섣불리 연기하다가는 갑자기 최희서의 모습이 튀어나오기도 해서 초반엔 힘이 들었다. 감독은 내게 '정말 극도로 자존감이 없는 상태가 되어본 적 있나'라고 질문했는데, 분명 내게도 있었던 경험이지만 너무 오래됐더라. 나는 무명 배우일 때에도 늘 자존감을 일으켜 세우는 훈련을 했지, '난 자존감이 낮아'라 생각하며 살지 않았다. 자존감이 너무 낮아질 때 나를 일으켜 세울 수 있는 사람은 나 뿐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잘 될거야. 괜찮아'라 생각하며 살던 최희서가 자영을 연기하다보니 어려움이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조깅을 하고, 몸을 만드는 과정보다도 자영이라는 인물의 내면을 표현하는 것이 힘들었다."

-그 중에도 특히 중요하게 여기고 표현한 장면은 어느 신이었나.

"자영이 현주처럼 되지 않을 것이라는 걸 보여주고 싶은 장면이 있었다. 달리는 장면이었는데, 조금 더 결의에 찬 모습으로 연기했다. 달릴 때 무슨 생각을 하는지에 대한 물음에 '이대로 사라져버리고 싶다'가 아닌, '당장 도착지가 없더라도 일단 계속 뛰어야겠다'는 답을 내놓을법한, 그런 마음으로 연기한 장면이었다. 파멸보다는 나 자신을 조금 더 잘 알아간다는 희망의 방향으로 연기했다."

-지난 2017년과 올해, '박열'로 영화 시상식에서 무려 11개의 트로피를 받았다. 전무후무한 기록이다. 최희서라는 사람은 그 영예에 도취되기보다 무거움을 느낄 것 같은데, 그간의 마음이 어땠는지 궁금하다.

"상에 전혀 도취돼 있을 수 없을 만큼 일을 계속 하려고 노력했다. 시기 상으로는 '아워바디'를 찍고, '박열'로 시상식들에 초대됐었고, 드라마 '미스트리스'를 촬영했다. 지금은 '빅 포레스트'를 찍고 있다. 차기작으로 영화도 고민 중이다. 상의 의미가 내겐 책임감으로 다가왔다. 어쨌든 내게 상을 준 분들이 의견을 모아주신 것 아닌가. 그만큼 내 연기를 좋게 보고, 앞으로를 크게 기대해 상을 주신 것이다. 책임감이 많이 느껴진다. 앞으로 더 좋은, 다양한 모습을 보여줘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시나리오를 살피며 고민이 깊어질 땐 어디서 해답을 찾는지도 궁금하다.

"고민을 많이 하는 편이다. 좋은 점도, 아쉬운 점도 있을 테니까. 그럴 땐 어머니에게 읽어봐 달라고 한다. 어머니는 문화 예술에 관심이 많은 분이다. 그리고 나보다 앞서 살아온 분이기도 하다. '1958년생 한국 여성'이 볼 때 이 이야기가 얼마나 와 닿는지가 궁금해질 때가 있다. 처음엔 나의 시각으로 보지만, 두 번째는 어머니를 포함해 이 시대를 살아가는 다른 사람들의 시각이 궁금해진다. 이 사회에 공감을 일으킬 수 있는지를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인 것 같다."

-영화로 이름을 알린 뒤 드라마 작업도 이어갔다. 의외의 행보인데, 혹 그간의 선택들 중 후회되거나 아쉬운 지점은 없었나.

"'아워바디'가 내가 순수히 너무 출연하고 싶어서 결정한 영화였다면, 드라마들은 도전적인 선택이기도 했다. 하지만 영화든 드라마든 후회되는 선택은 없다. 작은 연극들조차도 모두 조금씩은 '이것을 해야겠다고 생각한 결정이 옳았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박열'의 경우 '선택을 받은' 경우인데, 나를 선택해주신 감독과 제작자들에게 아직도 감사하다. 선택을 받든 혹은 선택을 하든, 어떤 상황에서도 좋은 이야기를 최선으로 풀어나갈 수 있는 사람, 매 순간 최선을 다하는 배우가 되고 싶다. 아직까지는 내가 어떤 배우인지 규정지을 수 없고, 그래선 안될 것 같다. 매 순간 후회 없는 선택을 하다 보면 어느 순간 '내 필모그래피가 이렇게 만들어져 있구나' 생각하게 되지 않을까."

-'아워바디'는 그런 최희서의 행보에서 어떤 의미로 남을까.

"'아워바디'는 내가 앞으로도 후회 없는 선택을 할 것이라는 믿음을 줬다. '이 시나리오를 나 혼자 좋아한 것은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내년이면 데뷔 10년을 맞는다. '아워바디'는 분명 내게 보물처럼 남을, 30대의 대표작으로 남을 것 같다. 흥행 성과가 어떻든 그럴 것이다."

조이뉴스24 /부산=권혜림기자 lima@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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