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14년]천안에 완벽하게 뿌리 내린 현대캐피탈

[조이뉴스24 류한준, 이성필, 김동현 기자] '말로만 (지역) 사회 공헌 사업, 언제까지 밑 빠진 독에 물을 부어야 할까요.'

한국 프로스포츠 시장은 외연은 확장되고 있지만, 내부는 여러 문제로 곪아 터지기 직전입니다. 각 종목에 따라 편차는 있지만 '외화내빈'이라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불균형입니다. 어딘가 아픈데 왜 발병했는지 모릅니다. 무엇이 문제일까요. 부실한 팬서비스를 지적하는 팬들도 있고 관전 불편 등을 호소하기도 합니다. 구단의 역할이 단순히 승패라는 결과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한국 최초의 인터넷 스포츠, 연예 매체 조이뉴스24는 11월 1일 창간 14주년을 맞아 바로 이 부분을 건드려 보기로 했습니다. 창간 14주년 특집으로 연고지와 팬들을 위한다는 프로구단의 존재 이유를 재점검해보기로 말이죠. 특히 구단의 역할 중 하나인 사회 공헌 활동에 대해 들여다보려고 합니다. 제대로 되고 있는지, 어떤 의미로 하고 있는지 말이죠. 고정된 틀에서 벗어나 과감한 사고 전환도 제안합니다. 총 8부에 걸쳐 점검해봤습니다. 무엇이 좋고 나쁜지가 아니라 어떻게 해야 효율적인 사회 공헌을 통해 서로 윈윈하는지 살펴봤습니다.

-글 싣는 순서-

1부. 의무감과 흉내만 내는 지역 사회 공헌 사업①한국 프로스포츠에서 사회 공헌은 어떤 의미일까②누구를, 무엇을 위한 사회 공헌 사업인가

2부. 프로스포츠 구단과 지역의 연대감은 어떻게 생기는가① 인천의 향수를 자극한 SK와이번스② 12년의 동행으로 성장한 전북 현대, 후발 주자 안산③천안에 완벽하게 뿌리 내린 현대캐피탈

3부. 라이벌이자 동반자인 이웃나라 스포츠의 사회 공헌 협업 사례와 효과

4부. 프로스포츠의 천국에서는 어떻게 접근했나

5부. 종합스포츠클럽(SC)이 곧 사회 공헌이다

6부. 종합스포츠 클럽의 천국은 어떻게 지역과 융합했는가

7부.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접근해야 할까

8부. 국민 참여 토론회

지난 2004년 한국 배구는 프로화를 추진했다. 그리고 1년 뒤 배구는 야구, 축구, 농구에 이어 국내에서 4번째 프로스포츠 종목으로 닻을 올렸다. 세미 프로 형식인 투어 대회로 2004-05시즌을 치른 뒤 2005년 겨울리그를 통해 드디어 프로배구 V리그가 출범했다.

한국배구연맹(KOVO)은 첫 시즌부터 연고지 정착에 공을 들였다. 당시 2005 겨울리그는 시즌 일정이 짧았고 V리그를 알리기 위한 방편 중 하나로 앞선 투어 대회 형식을 도입했다. V리그 참가팀은 연고지를 두긴 했지만 이때는 비연고지에서 서로 경기를 치르기도 했다.

본격적인 리그 시작은 2005-06시즌부터라고 봐도 무방했다. 그런데 V리그는 다른 프로 종목과 차이가 있었다. 국내에서 가장 큰 연고지인 서울에 팀을 두지 않았다. 실업(아마추어) 시절부터 라이벌 관계를 형성한 현대캐피탈과 삼성화재도 모두 서울이 아닌 지방에 연고지를 뒀다.

서울은 V리그 출범 후 4시즌이 지나서야 연고팀이 생겼다. 우리캐피탈(현 우리카드, 남자부)과 GS칼텍스(여자부)가 주인공이다. V리그는 지방 도시라는 '틈새시장' 공략에 초점을 맞췄고 성공 사례도 나왔다. '천안=배구도시'라는 등식을 자리잡게 만든 현대캐피탈이 선두에 있다.

현대캐피탈도 처음부터 천안에 잘 자리잡은 것은 아니다. 천안에는 앞서 둥지를 둔 프로팀이 있었다. 현재 K2리그에 소속된 성남FC(성남시민프로축구단)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천안 일화다. 천안 일화는 연고지에 뿌리를 내리지못했고 팀이 천안에 머문 시간은 얼마 되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프로종목 '막내'인 배구에서 천안에 연고지를 둔 팀이 나왔다. 현대캐피탈 구단은 천안에서 적극적으로 팀 알리기에 나섰다. 가장 먼저 한 일은 '발로 직접 뛰기'였다. 구단 사무국 임·직원들은 홈 경기를 앞두고 적극적으로 홍보에 나섰다.

천안역과 고속버스터미널 등을 포함해 천안시내 유동인구가 많은 곳을 찾았다. 구단 마스코트와 응원단 동행했고 홍보 책자와 프로그램을 사람들에게 나눠주며 발품을 팔았다. 팀 성적도 때마침 좋았다. 현대캐피탈은 2005-06, 2006-07시즌 연속으로 V리그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차지했다. 배구팬 뿐 아니라 조금씩 연고지 천안에서도 팀 인지도가 점점 높아졌다.

김호철 감독(현 한국남자배구대표팀)을 비롯한 코칭스태프도 그렇고 선수단 면면이 화려했다. 현대캐피탈 구단 측은 "당시에는 스타 마케팅에도 많은 초점을 맞췄다"고 했다. 그런데 이후 팀 성적이 기대 만큼 나오지 않았다. 하위권으로 떨어지지는 않았지만 늘 '봄배구' 마지막 문턱을 넘어서지 못했다. 라이벌 삼성화재에 발목을 잡혔다.

현대캐피탈이 챔피언결정전에서 다시 우승 트로피를 품에 안은 때는 2006-07시즌으로부터 정확히 10년이 지난 뒤인 2016-17시즌이 됐다. 그사이 현대캐피탈 구단은 연고지 정착 뿐 아니라 홍보와 마케팅 활동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V리그 남녀팀을 통틀어 해당 분야에서 현대캐피탈은 '최초' 사례를 많이 갖고 있다.

2007-08시즌 개막을 앞두고 V리그 팀들 중에서는 처음으로 구단 자체 미디어데이를 제주도에서 개최했다. 2013년 선수단 전용체육관과 숙소 및 복합 베이스캠프인 '캐슬 오브 스카이워커스'가 준공된 뒤에도 따로 미디어데이를 열었다. 물론 연고지 팬과 구단 공식 서포터스인 '자일즈'를 당연히 먼저 초청해 선보였다.

복합 베이스캠프는 국내 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화제를 모았다. 시설과 규모만 따진다면 배구 강국인 유럽팀들도 부러워할 수준이다. '캐슬 오브 스카이워커스'는 다른팀에게도 분명한 자극제가 됐다. 여자부 IBK기업은행을 포함해 후발 주자들이 나왔다. 선수단 전용 클럽하우스를 만들거나 그럴 계획인 팀들이 꽤 된다.

또한 스마트폰 보급과 함께 구단 어플리케이션 도입도 현대캐피탈이 최초다. V리그를 주관하는 KOVO보다 앞선 행보를 보였다. 지금은 V리그 남녀 13개팀 모두가 공을 들이고 있는 소셜미디어(SNS) 활용 및 서비스도 현대캐피탈이 가장 먼저 시작했다.

공격적인 홍보와 마케팅 활동에는 부작용이 따르기도 했다. 현대캐피탈이 홈코트로 사용하고 있는 천안 유관순체육관은 V리그 출범 초기 KB국민은행(현 청주 KB스타즈, 여자프로농구)과 여자프로배구팀인 흥국생명과 공동으로 사용했다.

'한지붕 세가족' 체제는 얼마가지 않았다. KB스타즈와 흥국생명은 모두 연고지를 이동했다. 이를 두고 현대캐피탈이 상생을 택하지 않았다는 비판도 있었다. 그러나 현대캐피탈은 당시 주변 시선과 평가에 흔들리지 않았다.

유관순체육관을 떠올리면 '배구가 열리는 경기장'이라는 인식이 생겼다. 체육관이 연고지 랜드마크 중 하나로 자리잡는데는 무엇보다 현대캐피탈 구단이 투자한 노력과 시간이 있었다.

연고지 천안시와 협약을 통해 배구전용체육관이 아니지만 유관순체육관 안팎에 변화를 줬다. 체육관 좌석수가 줄어드는 것을 감수하고 경기장을 찾는 팬들의 편의를 위해 특별 좌석을 만들었다. 가족 단위 팬을 위한 패밀리존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VIP석도 팬에게 개방했다. 2008-09시즌에는 스카이박스를 V리그 팀중에서 처음 도입했다. 기존 패밀리존은 챔피언석과 펀존(fun Zone)으로 확대했다.

매 시즌 개막을 앞두고 체육관도 단장했다. 코트를 시작으로 체육관 외부 시설 등에도 조금씩 변화를 줬다. 2018-19시즌 도드람 V리그 개막에 맞춰서는 선수단 유니폼 디자인과 색상을 변경했다. 코트도 이에 맞춰 다시 한 번 변화를 줬다. 현대캐피탈 구단 측은 "이렇게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팬들에게 알려야하고 팀 입장에서도 당연히 그래야한다. 그 노력은 앞으로 멈추지 않고 계속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대캐피탈의 연고지 정착 과정은 V리그 다른팀들에게도 큰 영향을 끼쳤다. 그리고 홍보와 마케팅 활동 등은 좋은 본보기와 교과서가 됐다. 이제는 남녀팀 모두가 중요성을 잘 알고 있다. 정도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생색만 내고 보여주기식인 홍보와 마케팅에서 벗어나고 있다. 현대캐피탈이 긍정적인 시너지 효과를 불러일으킨 셈이다.

현대캐피탈 구단이 최근 신경을 쓰고 있는 부분은 연고지 배구 붐 조성과 유소년 육성이다. V리그는 선수 수급이 수월한 편이 아니다. 초·중·고등학교 배구팀 숫자가 줄어들고 있다. 배구꿈나무 선수들의 등장이 예전같지 않다. 이런 현상은 앞으로 더 심해질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V리그는 프로야구에서 실시하고 있는 연고지 우선 지명 제도가 없다. 전면 드래프트를 통해 선수를 선발하고 있다. 하지만 현대캐피탈 구단은 천안시와 인근 지역 학생 배구부 창단에 적극적이다. 엘리트 체육 뿐 아니라 배구 보급을 위한 생활체육(9인제 배구) 등에 대한 지원도 함께 하고 있다. 해당 부문 역시 V리그 팀중에서 현대캐피탈과 영원한 라이벌인 삼성화재가 가장 잘 추진하고 관리를 하고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현대캐피탈 구단이 관심을 두고 있는 부분은 또 하나 더 있다. 바로 V리그 통합 마케팅이다. 홍보 영역도 일부 포함될 수 있다. 미국프로농구(NBA)와 메이저리그(MLB)가 도입해 시행하고 있는 방식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현대캐피탈 구단 측은 "각팀마다 노력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좀 더 효율성을 끌어올리기 위해 (통합 마케팅이)필요하다"고 주장한다. KOVO에서도 이 부분에 관심을 두고 있다. 그러나 아직은 첫 걸음을 때지 못했다. 팀마다 이해관계와 처한 상황이 다르기 때문이다.

현대캐피탈이 연고지 정착을 비롯해 홍보와 마케팅에서 성공 사례를 남길 수 있는 원인 중 하나는 분명하다. 모그룹의 적극적인 지원 덕을 많이 봤다. 그런데 단순히 투자 규모나 액수 만은 아니다. 의사 결정과 집행 과정에서 다른팀들과 차이가 있다. 좀 더 자율적이고 현장 목소리와 분위기를 받아들일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했다는 점도 성공사례를 이끌어낸 원동력이 됐다.

조직구성상 현대캐피탈 구단은 배구단만을 위한 구성이 돼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V리그 대다수 팀 사정은 그렇지않다. 사무국 인력도 부족할 뿐 아니라 배구단 업무만을 전담하지않는다. 제2, 제3의 현대캐피탈과 같은 성공사례를 보기 위해서는 KOVO와 회원사인 각팀들이 곰곰히 이유를 따져봐야할 것이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취재 지원을 받아 작성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