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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윙키즈' 박혜수, 엔딩의 여운이 지나간 뒤 떠오르는 얼굴


[조이뉴스24 권혜림 기자] 전쟁으로 부모를 잃고 가장이 된 소녀 양판래는 절망감에 쓰러지는 대신 재기와 순발력으로 난리통의 세상을 살아낸다. '양공주'라 불리는 언니들을 따라다니며 푼돈이든 식량이든 벌어보려 고군분투하지만 쉽지 않다.

하지만 패기는 단단하다. 능수능란 통역비를 흥정하고, 날아오는 '싸대기'에는 '날아차기'로 응수한다. 남루한 난민촌을 춤추며 달리고, 비로소 그 순간에야 전쟁도 가난도 가족도 잊은 채 오롯이 자신을 느낀다. 낱알만큼의 희망도 없는 세상 속 소녀에게, 머나먼 땅에서 온 '미제 춤' 탭댄스는 일상성을 누리게 하는 유일한 도구가 된다.

'스윙키즈'(감독 강형철, 제작 ㈜안나푸르나필름)는 1951년 거제도 포로수용소, 춤에 대한 열정으로 뭉친 오합지졸 댄스단 스윙키즈의 이야기를 그린다. 전직 브로드웨이 탭댄서인 미군 잭슨(자레드 그라임스 분), 수용소의 문제아 로기수(도경수 분), 적군으로 오인받아 수용소에 갇히게 된 민간인 강병삼(오정세 분), 중국인 천재 무용수 샤오팡(김민호 분), 소녀가장 양판래(박혜수 분)까지 국적도 언어도 목적도 다른 인물들이 춤을 통해 뭉치게 되는 이야기다.

자세한 전사와 시야가 제시되지 않는 중국인 샤오팡을 제외하고, 소녀 양판래는 영화 안에서 가장 방관적 인물이다. 이 위치는 다국적 댄스팀 '스윙키즈' 안에서 그가 쟁취한 통역사의 자리와도 어울린다. 모두의 이야기 안에서 양판래는 자신의 분화하는 감정을 보여주는 대신 주로 그들이 그리는 감정들의 사이에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는 양판래의 갈등이 외부의 어떤 대상이 아닌 자기 자신을 향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로기수는 사상검증을 피해 몰래 탭댄스를 추고, 전쟁 영웅인 형의 존재로 인해 안팎의 갈등을 겪는다. 강병삼은 아내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잭슨은 아내와 아이가 있는 일본으로 날아가고 싶어 한다. 반면 양판래의 갈등은 이들의 것처럼 가시적이지 않다. 다만 잭슨과 둘만의 대화 장면에서 드러나듯 보다 성찰적이고 보편적이다.

그런 의미에서 양판래는 관객이 가장 쉽게 이입할 수 있는 캐릭터이자 길잡이이기도 하다. 주요 인물 중 유일한 여성 캐릭터인 양판래가 전시 상황 안에서 피해자화의 방식으로 소비되는 대신 극의 평형추와 같은 역할을 수행한다는 점은 '스윙키즈'가 지닌 미덕 중 하나다.

어느 방향으로 비춰봐도 매력적인 캐릭터를 거머쥔 이는 배우 박혜수다. 다수의 드라마에 출연했지만 영화 작업은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2016) 이후 두 번째다. 양판래는 한국어, 영어, 일본어, 중국어 등 4개국어에 능통하고 타고난 노래 실력까지 지닌 인물. 실제 외국어 실력이 출중한데다 가수 오디션 프로그램 SBS '서바이벌 오디션-K팝스타4' 출신인 박혜수에게 맞춤옷처럼 어울리는 캐릭터다.

영화 작업 경험은 많지 않지만, 박혜수의 연기는 무리 없이 양판래의 표정들을 완성해낸다. 특유의 말간 얼굴과 곧은 눈빛은 엉뚱하면서도 건강한 캐릭터의 매력과 어울린다. "부모를 잃고 온 가족을 부양해야 하지만 여기 있는 그 누구보다 당차고 똑똑한 여성"이라는 자레드 그라임스의 표현 뒤 박혜수의 얼굴을 떠올리는 것이 어색하지 않다.

로기수와 양판래가 각자 질주하며 춤을 추는 장면 속 박혜수의 표정은 특히 인상적이다. 자신을 둘러싼 모든 허들을 춤을 통해 신나게 뛰어넘는 두 인물의 모습이 교차로 보여지는 장면이다. 끝내 넘어질지라도 온 힘을 다해 스텝을 밟으며 앞으로 나아가는 양판래의 모습은 영화 속 거의 유일한 희망적 심상이다. 생과 사의 기로, 이념과 이념의 대립 사이에서 그 정직한 에너지는 숭고하기까지 하다. 엔딩의 진한 여운이 사그라질 즈음, 문득 전력으로 생을 껴안은 소녀 양판래의 눈빛이 떠오르는 것은 그 때문이다.

'스윙키즈'는 오는 19일 개봉한다.

조이뉴스24 /권혜림기자 lima@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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