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뉴스24 김형태 기자]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는 것일까.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이면에 감춰뒀던 추악한 과거가 하나 둘씩 밝혀지고 있다. 알면서도 쉬쉬해왔던 한국 체육계 내부의 (성)폭행 문제가 새해 벽두부터 한국 사회를 후끈 달구고 있다.
쇼트트랙 국가대표 심석희의 폭행 관련 소송 및 성폭행 관련 폭로가 기폭제가 됐다. 심석희의 용기있는 외침에 경기장 한 구석에서 흐느끼던 외로운 영혼들이 분연히 떨쳐 일어나고 있다.
14일에는 유도 선수 출신 신유용이 고교 시절 코치로부터 당한 성폭행 사실을 털어놓으며 폭로 행진에 가담했다. 중학교 시절부터 한 지도자로부터 운동을 배운 그는 폭력에서 시작해 성폭행으로 이어지는 전형적인 '체육계 폭행 코스'의 희생자가 됐다고 밝혔다.
이미 젊은 빙상인들이 빙상계의 (성)폭행 피해자 추가 공개를 예고하는 등 당분간 폭로 행진은 이어질 전망이다. 썩을대로 썩어서 나는 악취를 손바닥만한 쓰레기 뚜껑으로 억눌러온 한국 체육계가 어쩌면 근본부터 흔들릴 위기에 처한 것이다.
세상 무서운 것 없는 듯 보란듯이 폭행을 자행한 지도자들이 가장 큰 문제이지만 이런 사실을 알면서 수수방관한 체육계 지도층, 체육계 주변 관계자들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지적이다.
그간 체육 지도자들의 폭행 문제는 심심치 않게 터져 나왔다. 선수간 경쟁이 극심한 종목일수록 폭행의 강도가 세지는 경향이 있는데, 스타 지망생이 유독 많은 고교야구의 경우 지도자들의 선수 폭행은 잊을만 하면 나오는 뉴스다. 단기간에 큰 성과를 거두기 위한 압박이 선수들에 대한 손찌검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지난해 연말부터 불거져나온 폭행 폭로 행진은 아마추어 종목 선수들이 주도하고 있다. 올림픽 메달에 대한 한국 사회의 과도한 집착이 결국 소수 엘리트 선수들에 대한 스파르타식 지도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한계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단기간에 성적을 향상시키기 위한 손찌검은 '사랑의 매' '필요악'이라는 단어로 순화되며 폭력을 방조하는 결과로 나타나기도 했다.
제아무리 단단한 둑이라도 한 번 균열이 가면 와르르 무너지는 건 시간문제라는 게 요즘 한국 체육을 바라보는 시각이다. 체육계의 찌든 병페인 폭력 문제 해결을 위해 이제 근본적인 부분부터 손을 대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한 체육계 관계자는 "내부의 일탈에 눈감아왔던 체육계의 '끼리끼리' 문화, 그리고 문제의식 없이 본능에 따라 폭력을 자행하는 지도자들의 물갈이가 시급하다"면서 "무엇보다 체육계 상층부의 인식부터 바뀌어야 한다. 결과만 잘 나오면 과정이야 어떻든 문제 없다는 생각이 이런 현실을 낳은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조이뉴스24 김형태 기자 tam@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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