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뉴스24 정상호 기자] 의전(儀典)은 상대에 대한 존경을 표현하는 예절이다. 예의범절을 중시하는 유교적 전통이 여전히 강한 한국은 특히 다른 나라의 대표자를 예우하는 국가 간 의전에 있어서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한다.
외교 의전은 상호적이기 때문에 상대를 대접하는 만큼 상대도 우리를 대접해야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국익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결정들이 이뤄지기도 하므로, 최고의 의전은 반드시 필요하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이면에서는 치밀한 시나리오와 고도로 조율된 절차와 원칙이 작동하고 있으며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는 여러 가지 노하우가 숨어 있다.
이강래 전 청와대 의전비서관은 "레드카펫은 부와 권위를 상징하는 한편, 최고의 의전과 환대를 의미하기도 합니다"라고 말한다.
의전의 본질은 서열의 확인이다. 권력과 서열을 숭배하는 사회일수록 의전이 발달해 있는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런데, 의전이 반드시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 않는 경우가 있다. 고위급 인사들에 대한 과잉의전, 이른 바 황제의전으로 일반인들에게 불편을 끼쳐 물의를 빚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난다. 박정희 전두환 등 권위주의 정부 시기에는 권력자에 대한 대접이 어느 자리에서나 최우선이었고 국민은 권력자의 심기를 편하게 하는 데 동원되기 일쑤였다.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각종 공식 행사에서 시민의 지위가 높아지고 있고 특히 현 정부에 들어서는 정부 기관들이 앞 다퉈 의전 간소화 계획을 내놓고 지자체들도 연이어 탈 권위를 선언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의전은 높은 분들을 위한 것이고 그분들은 늘 앞자리를 차지하고 순서대로 얼굴을 내밀면서 서열을 확인한다. 문제는 과잉의전이 단지 다른 사람들의 불편을 초래하는 것 이상의 문제를 일으킨다는 것이다.
허의도 '의전의 민낯' 저자는 "일의 실패는 용서해도 의전에서의 실패는 용서하지 못한다"라고 말한다.
전 대기업 해외법인장으로 '한국인은 미쳤다!' 저자인 에리크 쉬르데주는 "임원들이 상관의 지시를 따르는 이유는 그들의 상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의 상관이 가라고 하는 길에 대해서는 전혀 확신하지 않았다"라고 일갈한다.
권위적이며 수직적 서열 관계를 중시하는 한국 사회에서 의전은 특정한 상황에만 필요한 예절이라기보다 윗사람에 대한 충성을 뜻하는 것으로 변질됐고 상하관계를 확인하는 거의 모든 상황 속에 스며들어 있다. 윗사람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는 것이 의전이자 예의로 받아들여지는 상태에서는 원활한 의사소통이 이뤄지기 어렵고. 잘못된 결정에 대해서도 이의 제기가 허용되지 않는다.
최고위급부터 말단 직원까지 이르는 직위의 계단에서 의전이 행해지면서 정보는 제한되고 커뮤니케이션은 차단된다. 시간이 갈수록 조직은 비효율적이 되고 서열주의와 의전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젊은 인재들은 조직을 떠나거나 애초에 다른 곳으로 발길을 돌린다. 뒤늦게 심각성을 깨달은 대기업들이 조직문화를 바꾸고 의전을 간소화하거나 심지어 없애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나 젊은 직원들에게는 여전히 와 닿지 않는다.
의전을 버리는 것이 머지않아 기업의 존폐까지 좌우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왜 의전이 조직을 무너뜨릴 수 있는가? 의전을 완전히 버리는 것이 가능한가? 원래 가진 순기능을 살릴 방법은 없을까?
20일 밤 11시 5분에 방송되는 'SBS스페셜'은 일반인들이 잘 알지 못하는 의전의 숨겨진 노하우를 알아보고 이른 바 과잉의전이 왜 문제이며 어떻게 조직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그리고 상명하복이나 서열주의를 넘어서 상대를 배려하고 소통을 강화하는 좋은 의전은 무엇인지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는다.
조이뉴스24 정상호 기자 uma82@joynews24.com
--comment--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댓글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