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뉴스24 박진영 기자] '조선구마사'가 방영 2회 만에 폐지되는 초유의 사태를 맞았다. 역사왜곡, 더 나아가 동북공정 논란에 휩싸였고, 시청자들은 광고주와 드라마 협찬사까지 움직였다. '중국 자본' 경계령까지 내려지며 향후 제작될 드라마들은 비상이 걸렸다. '조선구마사' 사태를 통해 한국 드라마가 마주한 현실을 짚고, 글로벌 시장에서 K콘텐츠는 어떠한 방향성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업계의 고민을 들었다. [편집자주]
SBS 드라마 '조선구마사'가 방영 2회 만에 역사 왜곡 논란과 동북공정 의혹으로 인해 폐지되면서 드라마계가 발칵 뒤집어졌다. 태종이 환시에 시달려 무고한 백성을 잔혹하게 도륙하는 인물로 그려진 점, 중국의 월병, 피단 등이 소품으로 등장하는 등 드라마 곳곳에 중국풍이 가득하다는 점 등이 이유가 됐다. 시청자들의 항의가 빗발치면서 협찬 및 지원 기업들의 이른바 '손절'이 이어졌고 지자체 역시 촬영 지원을 철회했다. 결국 SBS는 '조선구마사'의 방영을 취소했고, 제작사는 제작을 중단하고 해외 판권 계약 해지 의사를 밝혔다. 또 신경수 PD, 박계옥 작가, 배우 감우성, 장동윤, 박성훈 등 제작진과 배우들도 잇따라 사과문을 발표했다. 이 모든 것이 방영 닷새 만에 이뤄졌다.
물론 '조선구마사'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박계옥 작가의 전작인 '철인왕후' 역시 철종이라는 실존인물을 다루면서도 오해의 소지가 있는 발언이나 전개를 그려내 '역사왜곡'이라며 질타를 받았다. 또한 최근 중국의 문화적 동북공정이 국민들의 분노를 자아내는 한편 중국 자본이 K-콘텐츠에 스며들면서 우려의 목소리는 더욱 커지고 있던 상황이었다. 그런 가운데 '조선구마사'가 한국 드라마계를 크게 뒤흔들고는 씁쓸하게 퇴장을 하게 됐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다. '조선구마사'로 인해 향후 공개될 드라마를 향한 시선이 더욱 날카로워졌고, 드라마계 종사자들은 더욱 긴장하며 현 사태를 주시하고 있다.
◆ '조선구마사' 후폭풍…'설강화'로 번진 '역사왜곡' 논란
'조선구마사' 사태 이후 시청자들의 시선은 JTBC '설강화'를 비롯한 방영을 앞둔 드라마로 쏠렸다. '설강화'는1987년 서울을 배경으로 어느 날 갑자기 여자 기숙사에 피투성이로 뛰어든 명문대생과 서슬 퍼런 감시와 위기 속에서도 그를 감추고 치료해 준 여대생의 시대를 거스른 절절한 사랑 이야기를 담은 드라마로, 초반 시놉시스 일부가 온라인상에 공개가 되면서 '간첩 미화' 논란에 휩싸였다.
여기에 제작진이 공개한 캐릭터 중 안기부 요원의 설명이 문제가 됐다. '대쪽 같은' 인물로 표현이 된 것. 이에 안기부 미화 의혹까지 더해지면서 민주화 운동 폄훼 드라마가 아니냐는 주장이 거세게 일었다. 이에 JTBC는 두 차례에 걸쳐 "민주화 운동을 다루는 드라마가 아니며 간첩이나 안기부 미화를 하지 않는다"라고 해명했다. 극중 배경과 주요 사건의 모티브는 1987년 대선 정국이며 군부정권, 안기부 등 기득권 세력이 권력유지를 위해 북한 독재 정권과 야합해 음모를 벌인다는 가상의 이야기가 전개된다는 것이 JTBC의 설명이다. 이와 함께 블랙핑크 지수가 맡은 여주인공의 이름 역시 수정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럼에도 논란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역사를 지키는 사람들'을 비롯한 많은 이들이 "1987년 정권의 이야기가 민주화 운동과 관련 없을 수 없다"며 반박했다. 또한 안기부 요원을 긍정적인 인물로 평가하는 것 역시 미화에 불과하다고 일축하며 제작 중단을 강력히 요구했다. 이와 함께 제작 중단을 요구하는 국민청원, 트럭시위도 등장하는 등 '설강화'를 향한 거센 비판이 이어졌다.
하지만 아직 방영되지 않은 드라마에 대해 미리 판단을 하고 제작 중단을 요구하는 건 지나치는 반응도 적지 않다. 정덕현 대중문화 평론가는 "'조선구마사'는 첫 방송부터 잘못된 부분이 나오면서 지적이 일었다. 하지만 방송되지 않은 것에 대해 '이럴 것이다' 추측하는 것은 국내 콘텐츠 산업 전체를 위축시킬 수 있기에 조심스럽다"라며 "방송 전에 '뿌리를 뽑아야 한다'는 건 분명 문제가 있다. 전체적으로 '쿨다운'이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심상민 성신여대 문화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역시 "비주류 문화에 대한 종의 다양성, 문화적 다양성, 미디어 다원주의가 허용되지 못하고 있는 경직 사회, 경색 산업이라는 반증"이라며 "보수 진보, 80년대 독재정권 등에 대한 획일적이지 않은 관점에서 나오는 창작의 자유와 함께 배급·방영·유통의 자유도 침해해서는 안 된다"라고 지적했다.
◆ '빈센조' PPL 논란→'간 떨어지는 동거' 향한 우려
넷플릭스 등 전 세계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의 활성화로 인해 콘텐츠를 바라보는 대중들의 눈높이도 달라졌다. 특히 K-콘텐츠가 전 세계로 뻗어나가면서 그 위상이 달라졌고, 이에 따라 더 높은 수준의 콘텐츠를 원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이는 곧 제작비의 범위가 달라질 수밖에 없음을 의미한다. 자체적으로 이를 충당할 수 없는 제작사들은 해외 자본 유치에 목을 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현재 중국의 동북공정으로 인해 반중 감정이 커지면서 국내 콘텐츠에 자리 잡은 중국 PPL에 대한 불만과 우려의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다.
앞서 tvN '여신강림'과 '빈센조'에 중국 PPL이 등장해 시청자들의 빈축을 샀다. 특히 중국어가 적힌 비빔밥 도시락을 등장시킨 '빈센조'는 방송 직후 엄청난 항의와 비난을 받았고, 결국 남은 광고를 철회하는 동시에 해당 장면을 통째로 삭제했다. 제작비를 위해 PPL이 어느 정도에서는 꼭 필요하다는 걸 시청자들도 다 알고 있다. 하지만 어떤 것을 PPL로 정하고, 이를 어떻게 자연스럽게 녹여낼지는 제작진의 선택과 능력에 달렸다. '빈센조'의 비빔밥 PPL은 비빔밥을 중국 음식으로 오해할 수 있게 하는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비판의 대상이 됐다.
이런 일들이 일어나다 보니 향후 방송될 tvN '간 떨어지는 동거'에도 우려의 목소리가 더해지고 있다. '간 떨어지는 동거'는 중국 대표 OTT 기업 아이치이의 첫 한국 오리지널 제작 작품이다. 네이버 웹툰을 원작으로 하고 있지만, 중국 자본이 들어간 만큼 안심할 수 없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와 함께 중국 작품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도 홍역을 치르고 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JTBC의 '아침이 밝아올 때까지'다. 이 작품은 중국 추리소설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한 명인 쯔진천의 '동트기 힘든 긴 밤'(장야난명)을 원작으로 한다. 문제는 이 원작에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이 책이 출간됐을 당시 중국 정부가 적극적으로 홍보한 점을 들어 중국 공산당을 미화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일고 있다. 중국의 동북공정으로 인해 국내 반중 정서가 격화되고 있는 가운데 이런 원작을 각색한 드라마를 방영하는 것이 적절하냐는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 것. 또 쯔진천 작가가 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가들을 폄훼하는 글을 남겼다는 점 또한 문제가 되고 있다. 캐스팅 단계에 있는 tvN '잠중록'도 중국 웹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라 벌써부터 많은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 "시대 정서 제대로 읽어야…검증 시스템 구축 필요"
하지만 거론되고 있는 작품들 역시 아직 방영 전인 작품이기 때문에 쉽사리 판단을 내리긴 어렵다. 원작이 있는 작품을 리메이크 하는 건 이미 예전부터 있어왔기 때문에 그 자체로 문제 삼는다는 건 너무 지나치다는 의견도 존재한다. PPL 역시 마찬가지. 다만 제작진이 시대의 흐름을 잘 읽어야 한다는 숙제가 커진 것만큼은 확실하다. 공희정 드라마 평론가는 "'조선구마사'와 같은 경우 현 시대 정서를 제대로 읽지 못한 문제점도 있다"라며 "제작진이 시대의 정서를 잘 읽고 창작자의 의도를 얹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방송사의 시스템에도 문제점이 있기 때문에 보완해야 한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심상민 교수는 '조선구마사'가 방송 2회 만에 폐지된 것에 대해 "여론에 밀려 방송사가 콘텐츠를 포기하는 것은 여론 존중을 넘어 책임 경영이라고 하는 기업의 기본자세를 지키지 못한 셈"이라며 "고객을 존경하면서도 연기자, 작가 등 제작진도 지켜야 하는 책무가 있는데 이 내부 신임도를 잃어버린 것"이라고 꼬집었다.
한석현 YMCA 시청자미디어운동본부 팀장은 "방송사에서는 내부 시스템적인 부분에 손을 봐야한다. 기획·제작·심의 단계에서 걸러내지 못했다는 것이 납득하기 어렵다"라며 "사전 제작시스템을 구축하고, 문제가 될 만한 소지가 있으면 기획·제작 단계에서 걸러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마저도 어렵다면 심의에서 걸러야 한다. 만약 내부 심의가 어려우면 외부에서 인사를 데려오는 방안도 고려해 보고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야 한다"라고 현 시스템을 바꾸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또 "역사왜곡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국가와 인물을 모두 가상으로 가야한다"라며 "제작진들도 창작을 너무 가볍게 쉽게 생각하지 말고 좀 더 신경을 쓰고 오래 연구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공희정 평론가 역시 "'조선구마사'는 방송 전까지 많은 이들의 손을 거쳤고, 검증할 시간이 있었다. 하지만 검증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고, 이를 같이 책임져야 한다"라고 '제 2의 조선구마사' 사태가 발생하지 않으려면 제작 관계자들의 검증이 제대로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대중 심의가 벌어지고 있는데, 분명 대중들의 의견은 필요하고 중요하다. 하지만 그만큼 또 다양하기 때문에 어떤 기준으로 수용할지에 대해서는 고민이 필요하다"라고 드라마 제작 관계자들의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박진영 기자(neat24@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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