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뉴스24 박진영 기자] 故 강수연이 유작인 '정이'를 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연상호 감독은 이것이 가장 안타깝다고 밝히며 영화 현장을 너무나 사랑했던 고인을 그리워했다.
넷플릭스 영화 '정이'(감독 연상호)는 기후변화로 폐허가 된 지구를 벗어나 이주한 쉘터에서 발생한 전쟁을 끝내기 위해 전설적인 용병 정이(김현주 분)의 뇌를 복제, 최고의 전투 A.I.를 개발하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SF 영화다.
김현주는 전투력과 전술력을 모두 갖춘 최정예 리더이자 최고의 최고의 A.I. 전투용병 정이 역을, 故 강수연은 정이를 개발하는 크로노이드 연구소 팀장 서현 역을, 류경수는 연구소장 상훈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특히 '정이'는 지난해 5월 세상을 떠난 故 강수연의 유작이다. 이에 연상호 감독은 18일 진행된 조이뉴스24와의 인터뷰에서 '영화계 큰 엄마' 같았던 故 강수연과의 촬영 당시를 떠올리며 그리움을 전했다.
- '정이' 공개를 앞두고 있는데 어떤 마음인가.
"'정이'의 촬영이 끝난 것이 작년 1월이라 1년 정도 시간이 흘렀다. 원래 영화나 시리즈 후반작업은 4, 5개월 정도 하는데 '정이'는 10개월 정도 걸렸다. 그 사이에 강수연 선배님이 돌아가시는 큰 사건이 있었다. 그래서 감회가 새롭고 설레는 면이 있다."
- 故 강수연 배우에게 캐스팅 관련 문자를 보냈다가 '읽씹'을 당했다는 사연을 전한 바 있는데 어떤 내용이었고, 이후 강수연 배우와는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 궁금하다.
"흔히 신파라고 하는 눈물 흘리는 멜로, 체루성 멜로에 SF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눈물을 흘리는 멜로가 요즘은 힘을 못 받고 일종의 조롱으로도 쓰이기도 하는데, 저는 그런 멜로가 가진 힘에 빠져 있었던 시기였다. 이 좋은 걸 왜 안 하나 싶었다. 하지만 저 자신도 확신이 없고 SF라 예산이 많이 들어서 제 마음 속으로는 이번 영화가 힘들다는 생각을 했다. SF 잡지 매체 인터뷰에서도 영화화가 힘들다는 얘기를 했다. 그런 생각을 가진 대본이 '정이'였는데, '지옥' 때 대본을 보다가 '정이'를 다시 읽었다. 이런 고전적인 멜로 드라마에 SF가 결합이 되어있는 영화를 고전적이면서도 우아한 연기를 펼칠 수 있는 강수연 배우가 하면 어떨까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보니 영화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옥'에 대해 넷플릭스와 얘기를 할 때 강수연 배우와 이런 걸 해보면 어떨 것 같으냐고 하니 '한 번 해보면 좋겠다'는 얘기를 하더라. 그래서 시작을 했다."
"캐스팅이라는 큰 산이 남아있었다. 강수연 선배와 인연이 있는 양익준 배우에게 연락처를 받아 장문의 문자를 썼다. '돼지의 왕'에서 스쳐 지나간 인연부터 시작해서 구질구질하게 써서 보냈다. 분명 1이 사라졌는데 답이 없어서 큰일 났다 싶더라. 지금까지도 친하게 지냈던 전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분에게 연락을 해서 상황을 설명하고 연락을 해서 강수연 선배와 첫 통화가 됐다. '읽씹'을 한 것을 물어보니 스팸 문자인 줄 알았다고 하더라. 이 사람이 나에게 이런 걸 보낼리 없다고 장난이나 사기인 줄 알았다고. 처음 뵙던 날 기억도 생생하다. 강수연 선배가 술을 잘 드시는데, 술을 먹다가 내가 정신줄을 놓으면 안 된다는 생각에 술깨는 약을 많이 먹었다. '한 번 해보자'는 얘기를 하셨을 때 맥이 딱 풀려서 만취가 됐던 기억이 있다."
- 그렇다면 '정이'에 대해 촬영 후 나눈 대화가 있나.
"촬영이 1월에 끝났고 후시 녹음을 4월에 했다. 그러고 5월에 돌아가셨다. 후시 녹음을 했을 때는 아직 그림이라 완성본을 못 보셨다. 계속 궁금증을 안고 계셨을 텐데, 지금도 그게 제일 안타깝다."
- 연상호 감독의 SF라고 하면 대중들이 생각하지 못한 것이 나올 것 같은데, 고전적인 느낌이 많았다. 그렇게 설정한 이유가 무엇인가.
"얼마 전에 둘째가 돌이어서 식구들끼리 돌잔치를 식구들끼리 했다. 장인어른께 '정이'의 뒷 부분을 보여드렸더니 '너무 허무맹랑하지 않나'라고 하셨다. 한국에서는 SF 장르가 낯설다. 이런 장르 속 낯섬을 어떻게 하면 자연스럽게 전달할 수 있을까 생각했을 때 보편타당하게 공감이 되는 소재, 어렵지 않은 스토리 라인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단순하고 누구나 공감할 수 있지만, 주제에 있어서는 얕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서현은 살아있는 엄마가 존재하는 인물이다. 정이는 아이콘으로 존재하지만, 딸은 엄마를 자유롭게 하기 위해 모성을 지우는 선택을 한다. 감정적으로 보면 감동적이고 쉽게 받아들일 수 있지만 곱씹을 수록 생각할 거리가 많은 주제라고 생각했다."
- 지금까지 부성과 모성, 가족애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해왔다.
"부성과 모성은 단순하게 보이지만 어떤 앵글로 보느냐에 따라 다양한 것이 나오고 다르다. 정이는 모성을 끊어야지 자유로울 수 있다. 그리고 그 선택권이 딸에게 있다는 것이 기존 부성, 모성과는 다르다고 생각했고, SF적인 질문이라고 여겼다. 부모를 위해서 자식이 관계를 끊는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런 질문을 하는데 현실에서는 그렇게 못하니까 상상을 해보는 거다. SF 장르의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 SF 장르로서 CG나 세트 중 보여지는 것에 대한 고민이 정말 많았을 것 같다.
"세트, 미술 팀은 지금까지 SF 장르를 시도했던 영화를 통해 어느 정도의 노하우가 구축이 됐다. 하다못해 목공을 하는 아저씨들도 익숙해져 있었다. 다들 노하우가 쌓인 전문가들이다. 이것이 앞으로의 한국 영화가 더 기대가 되는 이유다. 높은 수준의 노하우를 축적하고 있어서 더 기대가 된다."
- 강수연 배우와의 작업은 어땠나.
"현장이 기존의 작업과 달라서 낯설어 하면 어쩌지 싶어서 걱정을 많이 했다. 어떤 분인지도 몰라서 '예민하려나' 생각했는데 현장을 너무 좋아한다. 영화계 대선배다 보니 막내 스태프는 강수연 선배를 잘 모를 수 있다. 애기 때 강수연 선배의 마지막 영화가 나왔을 수도 있다. 그런 스태프까지 영화계 큰 엄마처럼 감싸고 다독이면서 현장을 끌고 가는 면이 있었다. 현장을 정말 좋아하고 사랑한다. 이런데 어떻게 그 동안 영화를 안 찍고 버텼나 싶을 정도로 현장을 사랑하는 분이었다. 고전적인 강수연 선배를 영화에 녹이고 싶었다. 하지만 낯설어서 걱정이 됐다. 예전에야 표현하는 것이 미덕이었는데 이번에는 절제를 해야 하기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마시라. 절제해달라'라고 했다. 미세하게 안으로 품다가 마지막에 한 번 폭발하는데 전율이 일었다. 전설의 명배우답다는 생각을 했다."
- 후반 오열을 묵음으로 처리한 이유가 있나.
"의도적이었다. 100을 표현한다고 했을 때, 선배가 어디까지 해야 하나 물어보더라. 저는 100을 다 해달라고 했다. 100을 표현하면 제가 40 정도 가릴 생각이었다. 그런데 선배는 150을 표현해줬다. 보면 머리에 힘줄이 생길 정도로 현장에서의 에너지가 정말 대단했다. 그 대단한 에너지를 전달하려면 다 안 보여주는 것이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상상을 하면 되니까."
- 혹시 '정이'도 후속편을 생각하고 있나.
"상상하는 건 제 자유니까 뒷 이야기가 있긴 하다. 하지만 후속을 만들 의미가 있는지 판단이 되기까지는 논의와 시간이 필요하다. 서현이 정이의 행운을 빌어주는 것이 제가 영화를 통해서 하고 싶었던 큰 이야기다. 그것보다 더 한 메시지, 축복을 얘기할 수 있다면 속편을 할 것 같은데 행운을 빌어주는 것 이상의 축복이 존재할까 하는 생각이 든다."
- 대중이 연상호 감독에게 바라는 지점과 스스로 하고 싶은 것에서 상충되는 것이 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대중의 취향과 완벽하게 맞는 작품을 매번 하고 싶다는 생각을 꿈처럼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 재능이 저에게 없다는 것을 깨달은지 꽤 된다. 도달하지 못하는 재능을 꿈꾸는 것만큼 괴로운 것은 없는 것 같다. 그런 꿈을 제가 꾼다면 영화 만드는 것이 즐겁지 않을거다. 재능이 없음을 제 스스로 인정하는 부분이 있고, 그걸 놓고 나서는 영화 만드는 것이 재미가 있는 것 같다. '부산행'을 하고 나서 뭐든 만들면 대중과 호흡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2년을 못 가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 '지옥' 시즌2를 기다리는 시청자들도 굉장히 많은데, 계획이 어떻게 되나.
"만화로 먼저 보여드린다고 했는데, 최규석 작가가 절반 정도의 콘티를 보내줬다. 제 생각에는 5, 6월엔 웹툰 연재가 시작되고 그 이후에 촬영에 들어가지 않을까 싶다."
'정이'는 오는 20일 전 세계 공개된다.
/박진영 기자(neat24@joynews24.com)
--comment--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댓글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