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뉴스24 박진영 기자] "학폭 가해자이기 때문에 동정심을 유발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이는 배우 차주영이 '더 글로리' 혜정이를 연기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지점이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용납될 수 없는 학교 폭력 가해자를 연기해야 했던 차주영의 책임감은 깊고 묵직했다.
넷플릭스 시리즈 '더 글로리'(극본 김은숙, 연출 안길호)는 유년 시절 폭력으로 영혼까지 부서진 한 여자 문동은(송혜교 분)이 온 생을 걸어 치밀하게 준비한 처절한 복수와 그 소용돌이에 빠져드는 이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지난 10일 파트2가 공개되어 전 세계 관심을 얻고 있다.
글로벌 OTT 플랫폼 시청 순위 집계 사이트 플릭스패트롤에 따르면, '더 글로리' 파트2는 3일째 넷플릭스 TV쇼 부문에서 1위를 차지했다. 또 넷플릭스 공식 사이트 '넷플릭스 톱(TOP) 10'에 따르면 '더 글로리' 파트2는 지난 주(3월6일~12일) 시청 시간 집계에서 1억 2446만 시간을 기록해 영어권, 비영어권 TV 부문 통틀어 1위에 오르며 놀라운 인기를 실감케 했다.
차주영은 극 중 학교 폭력 가해자 무리에서 허영심에 찌든 스튜어디스 최혜정 역을 맡아 송혜교, 임지연, 박성훈, 김히어라, 김건우 등과 연기 호흡을 맞췄다. 전재준(박성훈 분)을 좋아하는 혜정은 박연진(임지연 분)이 중심이 된 가해자 무리에서 최하위에 위치한 인물. 이에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며 마지막까지 극적 긴장감을 형성한다.
차주영은 탄탄한 연기 내공을 바탕으로 최혜정의 매력을 극대화시켰다. '가슴 수술한 글래머'라는 설정에 따라 체중을 5~6kg 증량하기도 했던 차주영은 기존 가지고 있던 세련되고 이지적인 이미지를 뛰어넘고 최혜정으로 완벽하게 변신해 시청자들의 극찬을 얻었다.
실제로는 영어, 일본어 등 4개국어에 능통한 '뇌섹녀'인 차주영은 美명문대 유타주립대학교를 다니다 유타대학교로 편입했고, 유타주립대에서 졸업했다. 그는 지난 15일 조이뉴스24와의 인터뷰에서 '더 글로리' 혜정이를 완성하기까지의 과정과 연기하면서 중점을 뒀던 바를 전했다.
- '더 글로리' 파트2 공개 후 엄청난 반응이 일고 있는데 실감을 하고 있나.
"파트1에서는 실감을 못했는데 지금은 많이 느끼고 있다. 파트2 오픈 전엔 완결이 안 됐기 때문에 잘 됐다고 하기엔 이를 수도 있다며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지냈다. 파트2 오픈이 되자마자 '끝났다', '됐다' 하는 것 같다."
- 직접적으로 느끼고 있는 부분은 무엇인가.
"팔로워도 무시 못하는 것 같다.(웃음) 이제는 반응들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게 됐다. 제가 신중한 성향이 좀 있어서 외면하거나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던 것이 컸다. 이제 끝이 났고 다음을 또 해나가야 하니까 주어신 시간 며칠 동안만 누리려 한다."
- 가족이나 지인, 동료 배우들의 반응도 달라졌을 것 같다.
"주변에서 '목소리가 나오냐', '문자로 하겠다'라고 하기도 했다.(웃음) 가족들은 저 같이 무던한 편이다. 친구들도 20년 지기들인데 그 친구들 반응을 보고 괜찮았나 보다 생각했다. 선배님들, 감독님들께서 연락을 주시는 것이 기뻤다."
- 욕을 못 할 것 같아서 망설였던 안길호 감독에게 마지막 오디션에서 차진 욕을 해서 결국 혜정 역을 따냈다는 캐스팅 일화도 화제가 많이 됐다.
"많은 분들이 생각하는 그 욕이 맞다.(웃음) 팬들은 '그건 아닐거다'라고 하는데 그게 맞다. 감독님을 오랜 시간 뵈었는데 정말 혜정이로 감정이 쌓이고 쌓인 상태로 마지막 미팅을 갔다. 감독님의 질문을 예상하지는 못했는데, 어떻게 지냈냐고 하시길래 저도 모르게 혜정이가 되어 'X같이 지냈다'라고 했다. 저도 감독님도 다 놀라고 빵 터졌다. 감독님은 '혜정이로 살아왔네'라며 좋아해주셨다. '오늘 안 되면 못하는구나', '감정을 솔직하게 전달하고 나와야겠다'라는 각오로 갔다. 감독님께 잘 보이는 건 이미 전 작업에서 다 했으니까 오늘은 혜정이로 뭔가 하나는 찍고 나와야 겠다 싶었다. 그걸 연기적으로 보여드리려고 했는데 이미 혜정으로 살고 있었다 보니 그대로 나갔다.(웃음)"
- 지금까지는 지적이고 세련된 이미지의 캐릭터를 많이 연기한 것 같은데 최혜정 같은 역할도 잘 소화해서 놀라웠다. 최혜정과 닮은 지점이 있나.
"혜정이를 하면서 긍정적인 영향을 받았다. 예전에는 많이 조심하고 신중했다면 지금은 과감하게 표현하고 단순하게 바라보는 것이 생겨서 삶을 편하게 만들어줬다. 좋은 부분만 가져왔다고 생각하면 된다. 또 저의 아주 많이 밝고 들써 있는 모습을 있는 것 없는 것 다 끌어모아 혜정에게 썼다고 해도 될 것 같다."
- 혜정이라는 역할을 하기까지 고민도 많았을 것 같다.
"제가 처음 대본으로 봤을 때, 제 기준으로서는 혜정이가 들어오지 않았다. 지금은 제겐 혜정이 뿐이지만, 그 당시에는 인물들이 다 매력적이고 탄탄한 서사가 있는데, 그에 비해 혜정이는 상대에 따라 다른 입체적인 면을 잡는 것이 힘들었다. 그래서 혼자 튈까봐 걱정스러웠다. 감독님께 '저 혼자 너무 튀지 않나', '저 혼자 다른 드라마 찍고 있지 않나'라는 질문을 많이 했다. 그런데 '단순하게 접근을 하자' 하는 해답을 찾아서 금방 해소가 됐다. 작은 것에 크게 반응을 하고 즉각 반응이 나오는 친구라 촬영 들어가서는 시원하게 연기 했다."
- 가해자 무리 사이에도 계급이 존재한다고 그려졌는데, 혜정이 같은 경우엔 가해자이긴 하지만 '동은이 아니면 너였다'라는 연진의 대사처럼 다른 입장에 처해 있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어떻게 접근을 하려고 했는지 궁금하다.
"저에게는 그게 어렵고 조심스러웠다. 혜정이도 가해자이기 때문에 옹호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동은이가 아니면 혜정이었다'라는 부분에서 애틋하게 봐주신 분들도 있겠지만, 연기를 할 때 동정심을 유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잡고 있었다. 선을 잘 타야 하는 인물이다. 동은이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강한 정신으로 자신의 삶을 꾸려나가는 친구였지만, 혜정이는 결국 뒤틀리고 굴복해 같이 나쁜 일을 저질렀다. 이 친구가 해줘야 하는 역할을 치우치지 않고 전달이 되어야 하는데 그걸 잘해내야 하는 것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 가해자 5인방 중 혜정이는 스튜어디스가 되면서 유일하게 스스로 뭔가를 이뤄냈다. 성인이 된 후에는 이들에게서 벗어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저도 혜정이가 이해가 안 된다. 자기 인생을 멋있게 살 수 있는데 말이다. 본인의 욕망, 잘못된 욕심에 중독이 됐다고 생각한다. 이 무리에 속해있고, 내 것이 아닌 것을 알지만 본인이 만든 세계에 잠식이 됐다. 마치 나도 그런 사람인 것마냥 스스로를 가스라이팅 했다고 생각했다."
- '스튜어디스 혜정아'도 화제였다. 예상했나.
"그 당시에는 몰랐다. 나중에 '유행 되고 있는 이 밈이 나지?'라고 하기도 했다. 나중에야 느꼈다."
- 화제성에 맞게 유행어가 많긴 하지만, 학폭을 다루는 작품이다 보니 마냥 즐겁게만 받아들일 수는 없을 것 같다. 어떻게 바라보나.
"저는 가해자 입장을 연기했기에 조심스럽다. 저희끼리도 사적인 자리에서 얘기를 많이 했다. 가해자 역할이고 타인의 인생을 짖밟은 아이들이지 않나. 사랑을 주시는 것에 대한 팬서비스가 될 수도 있지만,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어서 염두에 두고 조심스럽게 임했다."
- '더 글로리' 이후 학폭 문제가 더욱 화두에 올랐다. 출연자 입장에서 더 남다르게 느껴질 것 같은데 어떠한가.
"촬영을 하면서도 우리 드라마가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많겠다는 생각을 했다. 중간에 틀어지지 않고 제대로 전달이 된다면 괜찮은 사회로 나아가는데 어느 정도의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했다. 누군가는 그 역할을 해야 하는데, 잘못된 부분을 누군가는 느끼고 용서를 구하는 등 사회적 변화가 일어나면 좋겠다는 얘기를 종종 했다."
- 제작진이 출연자들의 학폭 이슈가 없는 걸 확인한 뒤 캐스팅을 했다고 했는데, 차주영의 실제 학창 시절은 어땠나.
"반장, 회장 하면서 지냈다. 사실 제 성향은 배우와 맞지 않다.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는데 책임감은 강하다. 내성적인 건 리더십과 또 별개 문제다. 부모님이 저의 내성적인 면을 바꿔주고 싶어서 회장 후보를 시켰다가 덜컥 하게 된 거다. 그러면 잘해야 하니까 책임감으로 끌고 간다.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고, 불의도 못 참는다. 그래서 스트레스를 정말 많이 받기도 한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 건 좋은데 인터뷰는 어렵다. 공적으로 제 생각을 전달해야 하는건데 오해가 생길 수도 있지 않나. 아직은 어렵고 (인터뷰를) 잘하는 분들이 부럽다."
/박진영 기자(neat24@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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