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뉴스24 이미영 기자] "송승헌 하면 착하고 정의롭고 바른 이미지가 있었어요. 나도 다른 캐릭터를 해보고 싶다, 그런 연기 갈증이 있었어요."
송승헌에겐 '택배기사'도 새로운 도전이다. SF장르물을 선택했고, 서늘한 빌런으로 연기 변신을 꾀했다. '주인공 욕심' 대신 정형화 되지 않은 캐릭터를 연기하는 즐거움을 누렸다.
송승헌은 지난 18일 서울 종로구 소격동의 한 카페에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택배기사' 인터뷰를 갖고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택배기사'는 극심한 대기 오염으로 산소호흡기 없이는 살 수 없는 미래의 한반도, 전설의 택배기사 '5-8'(김우빈 분)과 난민 '사월'(강유석 분)이 새로운 세상을 지배하는 천명그룹에 맞서며 벌어지는 일을 그린 넷플릭스 시리즈다. 지난 12일 공개 후 단 3일 만에 넷플릭스 글로벌 TOP 10 TV(비영어) 부문 1위에 올라섰다.
송승헌은 "감독이나 배우들이 긴장을 많이 했다. 전세계에서 많이 봤다고 해주더라. 너무 다행스럽고 기쁘다"라고 말을 꺼냈다.
송승헌은 '가을동화'로 한류스타로 발돋움한 뒤 현재까지도 중국과 일본 등 아시아권에서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다. '원조 한류스타'인 그에게도, OTT 에서 공개된 '택배기사'의 글로벌 인기는 놀랍다.
"전세계 얼마나 많은 시청자들이 봤는지 지표를 봤을 때 신기하고 행복했어요. SNS에서도 많이 봤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너무 다른 세상이 됐어요. 신기하고 하루하루가 빠르게 변화 한다는 것을 느껴요. 과거에는 관객 수와 시청률로 반응을 확인했는데, '세계 1등했대' 이런 것들이 조금 신기했고 확 와닿지는 않았어요. 작품이 전세계 팬들을 상대로 한다는 것이 신기하죠."
"예전에도 한류가 있었지만, 싸이나 BTS(가 전세계에서 인기를 얻고) 한국 작품이 아카데미에서 상을 받잖아요. 한국배우로서 좋은 기회지만 지금에 만족하면 안된다고 생각해요. 한국 콘텐츠에 대한 기대 심리가 있어서 업그레이드 시켜줘야 한다는 부담감이 생겨요. 한국 배우라서 행운아지만, 작품을 만드는 입장에서 더 잘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마냥 흥행의 즐거움에 취하진 않았다. '택배기사'는 한국형 SF장르 안에서 흥미로운 세계관을 풀어내면서 신선하다는 평가와 동시에 캐릭터 서사, 빈약한 스토리에 대한 아쉬운 평가도 있다. 송승헌 역시 이같은 반응들에 공감했다.
"아쉬움이 있어요. 하고 싶은 것을 다 못했을 수도 있고, 원작 팬들이 아쉬운 이야기도 해줬어요. 원작이 있는 작품들은 눈높이가 높기 때문에 원작을 영화화 했을 때 좋은 이야기를 듣는 것은 어려운 것 같아요. 노력을 했지만 만족을 못 지켜드린 것 같아 아쉬움도 있어요. (이야기를) 시리즈 6개 안에서 해야 했기 때문에, 장단점이 있는 것 같아요. 국내 시청자들은 캐릭터 서사를 중요시하는데, 해외 시청자들은 산소가 없는 세계관, 설정 자체가 새롭다는 평을 해주더라구요."
송승헌은 '택배기사' 기획 단계부터 함께 해왔다. 2002년 '일단 뛰어'를 함께 했던 조의석 감독에 대한 믿음, 그리고 디스토피아 세계관에 대한 흥미로움이 컸다.
"3년 전부터 이런 이야기를 듣고 신선했어요. 내가 안해본 캐릭터, 세계관이 재미있겠다 싶었죠. 무슨 역할이든 좋다고 했어요. 어렸을 때 상상해왔던 미래 이야기 속에서 내가 캐릭터를 하면 어떨까 싶었어요. SF물, 디스토피아가 한국에서 만들어졌을 때 좋은 평가를 받기가 힘든 것도 사실이에요. 아직까지 익숙하지 않은건지, 한국 팬들은 서사가 중요하고 각각의 캐릭터에 이유가 있어야 하고 기승전결, 디테일을 중요시하게 여긴다는 것을 이번에 더 확실하게 느꼈죠."
송승헌은 산소를 무기로 세계를 지배하는 천명그룹의 후계자 류석 역으로 출연한다. 자기 생존만을 위해 생체실험까지 자행하며 야욕을 드러내는 인물이다. 송승헌은 류석을 단순한 악역으로 놓고 연기하진 않았다. 그는 "잘 표현됐는지는 모르겠지만, 류석의 캐릭터가 많이 보이지 않아도 서늘함이 느껴졌으면 했다"고 말했다.
"류석의 서사를 보면 그렇게 행동하는 이유가 있어요. 현실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선 난민과 함께 할 수는 없고, 정당하진 않지만 누군가의 희생이 있어야 해요. 류석이 인간으로서 갖고 있는 치명적인 병도 있고 피를 수혈 받아야 해요. 류석이 안쓰럽고 외로워보였고, 또 안타까웠어요."
송승헌은 드라마에 다 담지 못했던 이야기도 들려줬다. 기획 단계에서는 행성 충돌 전 이야기가 있었으며, 아버지의 젊은 시절과 류석을 1인2역으로 연기하는 방식도 고려됐다고. 송승헌은 "류석 입장에서는 그런 전사가 더 나왔다면 시청자들이 이해하는데 더 쉽지 않으셨을까 싶지만, 한정된 시간과 분량이 있으니 그 부분을 덜어낸 거 같다"고 말했다.
송승헌은 '택배기사'에서 총상을 당해 죽음을 맞이하지만, 이를 두고 시청자들 사이에서는 의견이 분분했다. 류석의 손이 움직이는 모습이 포착됐기 때문. 시즌2를 염두에 둔 설정이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왔다.
"류석이 병을 고치고 싶어 사월의 돌연변이 피로 실험들을 했잖아요. 류석이 피를 밪고 변화가 생긴 것이 아닐까, 그런 의도가 담긴 것 같아요. 살았을 지는..."
시즌2에 대한 가능성과 바람도 드러냈다. 그는 "배우들, 감독님과 '시즌2가 된다면 다음 이야기는 어떻게 될까' 이야기 했다"라며 "시즌2를 하게 다면 류석의 서사나 전사가 설명이 된다면 더 좋을 것 같다. 아니더라도 (시즌2를 하게)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택배기사'의 호불호 반응 속에서도 송승헌의 연기 변신은 충분히 의미가 있었다.
송승헌은 시트콤 '남자셋 여자셋'으로 데뷔해 '가을동화' '에덴의 동쪽' 등 다수의 작품에 출연해왔다. 잘생긴 비주얼과 정의로운 캐릭터 등 정형화 된 연기를 주로 해왔다는 평을 듣기도 했지만, 다양한 캐릭터 변주로 변신을 꾀했다. 송승헌은 그 터닝포인트가 '인간중독'이었으며, '택배기사'의 류석 또한 이같은 연장선상에 있다고 했다.
"많은 사람들이 저에 대한 이미지가 있어요. 착하고 정의롭고 바른, 나를 그런 이미지를 보는구나 싶었어요. 나도 다른 캐릭터를 해보고 싶다는 연기 갈증이 있었던 것 같아요."
2014년 개봉한 '인간중독' 이야기를 꺼낸 송승헌은 "부하 직원의 와이프와 불륜을 한다. 촬영하고 난 뒤 희열감과 해방감이 있었다. 송승헌이 갖고 있는 틀 안에서 '이런 역할도 했네' 하는 희열이 있었다. 그게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인간중독'은 임지연의 연기 데뷔작으로, 송승헌과 임지연의 파격 멜로로 화제가 됐던 작품. '더글로리'로 임지연이 인기를 얻으면서 다시금 회자가 되며 최근 OTT에서 높은 순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더 글로리'로 다시 화제가 됐다고 들었어요. 그 때는 임지연도 신인이었고 새로운 모습을 좋게 봐주는 것 같아요. '인간중독'은 파격적이었고 저에겐 터닝포인트였어요. 편해진 것 같고, 연기가 재미있었어요. 갖춘 모습만 보여주지 않아도 되는 구나, 정의롭고 착한 모습을 내려놓으니 오히려 좋게 봐주는 아이러니가 있었어요. 뭔가 새로운 것을 원하는 구나 생각도 많이 했죠."
송승헌은 "그래서 장르물을 했고 연기를 하는 재미도 느끼고 새롭다는 생각을 했다. 이왕이면 안해본 캐릭터를 해보고 싶었다"라며 "('택배기사') 류석도 그런 인물의 연장선상이다"고 말했다.
예능프로그램 '출장십오야'와 'SNL코리아' 등 예능프로그램 속 송승헌의 솔직하고 털털한 모습도 화제가 됐다.
"둘 다 안한다고 했었어요. ('출장십오야'는) 박수 치다가 왔어요. 촬영이긴 했지만 MT를 다녀온 느낌이었어요. 저도 사회 생활을 일찍 시작한 편이라 그런 경험을 많이 못했거든요. 그런 편안한 모습도 재미있게 봐준 것 같아요."
'잘생긴 비주얼'에 가려졌지만, 의외로 '편하고 재미있는 송승헌'의 발견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미쓰와이프'에서는 허술하고 허당기 있는 남편으로 변한 모습으로, 또 연기 데뷔작이었던 '남자셋 여자셋'의 코믹한 연기로 웃음을 선사했던 터.
"소지섭이나 신동엽을 만나면 '예전에 시트콤 할 때 우리 20대였다'는 이야기를 해요. 어린 친구들이 잇고, 저희는 교수를 한다던지 해서 시트콤을 해보면 어떨까 이야기도 해요. 동엽 형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해보자고 해요. 요즘 시트콤이 없으니까, 꾸미지 않은 편한 모습을 보여주면 어떨까 하죠(웃음)."
송승헌은 "'송승헌이 저런 면도 있네' 하는 반응을 보는 것이 좋다"라며 "아직 개봉 전인 영화 '히든 페이스'에서도 파격적인 모습을 보여준다"라고 기대를 당부했다.
/이미영 기자(mycuzmy@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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