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뉴스24 박진영 기자] "뼈를 갈아 넣듯" 심혈을 기울였다는 엄태화 감독의 노력이 '콘크리트 유토피아'라는 수작을 완성했다. 올여름 개봉 영화 중 가장 높은 완성도를 자랑하며 관객들의 마음을 꽉 사로잡고 있다. 엄태화 감독의 감각적인 연출력과 놀라운 디테일, 배우들의 호연, 현 시대를 돌아보게 하는 메시지까지, 무엇 하나 부족함이 없다. "130분의 걸작"이라는 극찬 속 티켓값이 전혀 아깝지 않은 '콘크리트 유토피아'다.
'콘크리트 유토피아'(감독 엄태화)는 대지진으로 폐허가 되어 버린 서울, 유일하게 남은 황궁 아파트로 생존자들이 모여들며 시작되는 이야기를 그린 재난 드라마다.
2014년 연재 이후 호평을 모았던 김숭늉 작가의 인기 웹툰 '유쾌한 왕따'의 2부 '유쾌한 이웃'을 새롭게 각색한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거대한 지진이 모든 콘크리트를 휩쓸고 폐허가 된 도시를 배경으로 아파트 안팎에 살아남은 인간들의 각기 다른 심리와 관계성을 탄탄하게 그려냈다.
이병헌이 외부인들로부터 아파트를 지키기 위해 어떤 위험도 마다하지 않는 새로운 주민 대표 '영탁' 역을, 박서준이 아파트와 가족을 지키기 위해 헌신하는 '민성' 역을, 박보영이 극한의 상황에서도 신념을 잃지 않은 '명화' 역을 연기했다. 여기에 김선영, 박지후, 김도윤이 합세해 극을 더욱 탄탄하게 만들었다.
큰 기대 속 지난 9일 개봉된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밀수'를 비롯해 경쟁작들을 밀어내고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르며 흥행 시동을 제대로 걸었다. 이에 엄태화 감독은 최근 조이뉴스24와의 인터뷰에서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높은 완성도를 위해 심혈을 기울였던 제작 과정, 담고자 했던 메시지 등을 전했다.
- 원작과는 화자가 달라졌다. 달라진 과정이 궁금하다.
"처음엔 원작을 따라갔다. 혼자 살아남은 혜원(박지후 분)이 집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5고까지 한참 썼다. 외부 시선으로 변해버린 아파트를 바라보는 것으로 가다 보니 이야기가 작게 느껴지더라. 인물도 수동적일 수밖에 없었다. 디스토피아 속 아파트가 있다는 것이 중요했고, 그렇게 메인을 달리했다. 또 주인공도 다시 생각하다 보니 아파트에 어렵게 들어온 신혼부부가 주인공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서로를 지켜주기 위해 애쓰는 과정을 능동적으로 하면 몰입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포인트로 접근을 했다."
- 오프닝도 인상적이었다. 어떻게 만들게 됐나.
"웹툰을 볼 때 아파트가 배경이라는 것에 꽂혔다. 아파트가 배경이라면 디스토피아를 재미있게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저도 아파트에서 나고 자랐고, 국민 50%가 아파트에 산다. 너무나 보편적이고 공감하기 쉬운 장소이면서 한국 사람에게는 애증과 애환의 장소이기도 하다. 아파트를 가지고 싶어서 괴로워하고, 가격이 떨어질까 봐 걱정한다. 주거지이면서 자산이다. 이것이 한국적인 특징이라고 생각한다. '아파트가 뭘까' 하고 파고드는 이야기가 좋겠다는 생각으로 공부하다가 책을 보게 됐다. 그 책에서 60년대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데, 그걸 오프닝에 담아보고 싶었다. 방대한 자료가 있을까 생각하던 때에 KBS의 아카이브 프로젝트 다큐멘터리 '모던코리아'가 생각이 나서 제안했다. PD님도 재미있을 것 같다며 오프닝 작업을 흔쾌히 해주셨다."
- 빈부격차에 대한 시선도 잘 녹여냈는데 조사를 따로 한 것들이 있나.
"그건 우리가 만연하게 잘 알고 있는 사실이라 따로 조사할 건 없었다. 초반 블랙코미디, 풍자가 잘 살아나야 했다. 현실적이면서도 과장되게 넣고 싶었다. 떠올릴 수 있되 너무 가짜처럼 보이지는 않게 하고 싶었다."
- 동생인 엄태구 배우가 우정 출연을 했는데, 동생이기 때문에 우려되는 지점은 없었나. 감독으로 본 엄태구의 배우로서의 장점은 무엇인가.
"보시는 분들은 저와 연관 짓지 않고 엄태구 자체를 볼 거라 생각해서 우려되지는 않았다. 배우로서 너무 좋은 보이스를 가지고 있다. 또 사람을 집중시킬 수 있는 배우라고 생각해 제안했고 흔쾌히 해줬다. 언젠가는 주연과 감독으로 만나 작업하고 싶다."
- 민성, 명화 부부의 황도 장면은 예고편 공개부터 큰 화제를 모았다. 예상을 한 부분이 있나.
"'황도뿌'라고 하더라. 이렇게 화제가 될 줄 몰랐다. 두 분 모두 팬이 많고, 로코를 보고 싶어 하시다 보니 반응이 있었던 것 같다. 황도는 이런 재난 상황에 1~2주 지나면 뭐가 제일 먹고 싶을까 했을 때 과일이 떠올랐다. 전기도 안 들어오는 재난 상황에서 통조림 안 과일은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해 황도로 했다. 건조하고 추워 보이는 그림에 황도의 촉촉함이 좋아 보였고, 배우들이 맛깔스럽게 연기하셔서 보는 분들이 좋아하신 것이 아닌가 싶다."
- 다른 후보는 없었나. 백도라든가.(웃음)
"없었다. 황도만 생각했다.(웃음)"
- 전체적인 색감은 어둡지만, 변화 지점에 따라 달라지는 것도 인상적이다. 어떻게 설정을 했나.
"전체 컬러를 짤 때 초반부는 추운 느낌이 나면 좋겠다고 해서 블루 톤으로 갔다. 그러다 점점 건조하고 물기가 없는 회색 톤으로 가다가, 아수라장이 되는 신에선 레드로 했다. 불이 들끓는 느낌을 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그것이 지난 후반부엔 스테인드글라스에 여러 가지 색이 들어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가장 비극적인 순간에 들어온 빛이다. 그리고 결말엔 뭔가 앞에서 못 봤던 옐로우로 플랜을 짰다."
- 영탁이 '아파트'를 부르던 신도 명장면으로 손꼽히는데, 연출 주안점으로 둔 부분은 무엇인가.
"원래 콘티에서도 한 컷으로 간다. 카메라 두 대 중 B캠으로 마을 사람들을 땄다. 테스트로 찍었더니 그것이 에너지가 너무 좋더라. '이건 리액션이 필요 없을 것 같다, 소리만 들어도 될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어서 한 컷으로 갔다. 회상이 끝나고 다시 잔치 장면으로 돌아올 때 테스트 컷을 사용했다. 뒤로 빠질 때 카메라 준비가 안 된 상태가 아니라 흔들렸다. 그 흔들린 느낌이 좋았다. 지진이 연결되는 것 같기도 하고, 인간성이 흔들린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한마디로 얻어걸렸다. 또 테스트니까 배우들도 릴렉스한 상태였고, 춤도 대충 춘다. 테이크 갔을 때 열심히 하는 것보다 테스트 컷이 더 마음에 들었다. 리허설 할 때 카메라를 돌렸더니 좋은 장면을 잡아낸 것 같다. 영탁이 혜원의 방에 들어와 난로에 불을 붙이기 전 장면도 머리를 벅벅 긁는 테스트 컷을 사용했다."
- 음악이 감정선을 완벽하게 잡아준다는 느낌이다. 어떻게 선곡을 하게 됐나.
"아파트가 키워드인 영화이다 보니 '즐거운 나의 집'과 '아파트'가 자연스럽게 생각이 났다. 두 노래로 이 영화의 아이러니한 톤을 잡아가지 않았나 싶다. 어떻게 녹여낼지에 대한 고민을 했는데, 웅장하고 거대한 세계관 안에 성가처럼 나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음악 감독님이 제안을 해주셨다. 마지막 순간에 옆집에서 피아노 연습할 때 나오는 소리 같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작업했다. 영탁이 부르는 '아파트'는 변곡점인 순간에 나오는데, 블랙코미디 톤으로 몰입을 시키고 후반부엔 스릴러로 빠져나갈 수 없는 빈틈없는 이야기로 집중을 시키고 싶었다. 마지막에 박지후 배우가 부르는 쿠키 음악이 '아파트'인데, 같은 '아파트'로 다른 효과를 주고 싶었다. 영화 끝날 때 넣을까도 고민을 했는데 그러면 극에서 빨리 빠져나오게 될까 봐, 감정을 잘 유지하기 위해 엔딩 크레딧에 넣었다. 그 음악을 잘 들으면 끝까지 영화를 제대로 본 것이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 엔딩이 장르적 특성상 시원할 수 없다. 고민이 많이 됐을 것 같다.
"명화가 가진 가치관이 세계와 부딪히는 것처럼, 엔딩에서도 '과연 희망일까'라는 질문을 가지게 하고 싶었다. 디스토피아물에서 옳은 말을 하는 밋밋한 선인을 만들고 싶지 않았듯, 생존자들이 비극을 겪고 새로운 공간으로 갔을 때 갑자기 과장된 유토피아로 향하는 것으로 만들고 싶지 않았다. 현실적인 톤 안에서 희망을 고민했다. 그래서 엔딩을 정말 수없이 바꿨고 그중에서 가장 맞다 싶은 엔딩을 사용했다. 무책임해지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명화의 첫 질문이 중요했다. 명화말고는 아무도 질문하지 않는다. 질문이 정확하고, 저의 답은 아니지만 태도 정도는 공유하고 싶었다."
- 엔딩에서 보여준 앵글도 놀라웠다. 옆으로 누워있는 아파트를 그렇게 보여주려고 한 이유는 무엇인가.
"바닥과 천장이 수직으로 돈 것인데, 그렇게 바꿔도 충분히 살 수 있다는 시각의 변화, 가치관 등을 의도한 것이다."
- 스승인 박찬욱 감독과 GV를 진행하기도 했는데, 그 외적으로 칭찬 혹은 조언을 받은 것이 있다면?
"중간 편집본을 보여드렸었다. 그때가 '헤어질 결심' 끝나고 얼마 안 됐을 때다. '헤어질 결심'도 후반 작업이 길어졌다. 감독님 영화 중 후반작업을 가장 길게 했던 작품이라고 알고 있다. 프레임 하나하나 세공하듯 만들었고, 사운드 믹싱도 뒤집으면서 했다. 감독님이 '시간이 주어지는 한 끝까지 작업하라'라고 해주셨다. 저도 그렇게 작업을 했고, 작품을 내기 직전까지 뼈를 갈아 넣듯이 편집을 했다."
/박진영 기자(neat24@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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