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뉴스24 이미영 기자] "문을 두드리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어요."
늘상 봐왔던 김선호는 온데간데 없다. 환한 미소를 지우고 서늘한 변신을 했다. 배우로서의 새 얼굴을 꺼내놓는 것이 겁났던 만큼 집요하게 캐릭터를 파고들었다. "멈춰있고 싶지 않았다"는 배우 김선호는 '폭군'으로 한발짝 더 나아갔다.
지난 14일 공개된 디즈니+ 오리지널 '폭군'은 '폭군 프로그램'의 마지막 샘플이 배달사고로 사라진 후 각기 다른 목적으로 그것을 차지하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이 서로 쫓고 쫓기게 되는 이야기를 그린 추격 액션 스릴러다. 신세계', '마녀', '낙원의 밤' 등을 통해 자신만의 독보적인 세계관을 구축해 온 박훈정 감독의 첫 시리즈다.
김선호는 첫 스크린 데뷔작인 '귀공자'에 이어 디즈니+ 시리즈 '폭군'으로 박훈정 감독과 다시 만났다. 김선호는 연달아 '선택' 받은 이유를 묻자 "제가 동생으로서 역할을 잘하지 않았나 싶다"고 웃었다.
"저와 박훈정 감독 모두 산책과 맛있는 것을 좋아해요. '귀공자' 촬영이 거의 막바지였을 때, 감독님과 산책하면 여러가지 이야기를 했다. '폭군' 대본을 먼저 보여주면서 재미있냐고 물었고, 같이 참여하겠다고 했어요. '귀공자' 때보다 '폭군' 찍을 때 더 편해져서 좋았어요."
김선호는 극중 '폭군 프로그램'을 지켜온 엘리트 요원 최국장으로 변신했다. 엄청난 비밀을 감춘 미스터리한 인물로, 국가와 자기의 신념을 위해 일한다. 서늘한 카리스마와 묵직한 무게감이 돋보이는 캐릭터다.
"'김선호가 극한 상황에 몰리고 정적이고 말이 없고, 예민하게 반응하기보다 그 중심을 지켜가고 냉정하게 판단하려고 한 인물을 해본적이 있나'고 할 정도로, 저에겐 첫 시도였어요. 배우니깐 그 시도를 당연히 해야 하고 마땅한데, 겁은 났어요."
그동안 외부로 표출하는 캐릭터들을 연기해왔다면, '폭군'에서는 내면에 치중해야 했다. 김선호는 여백의 미를 살린 채 '침묵의 무게'를 부여하고 싶었다.
"저의 액팅으로 의미를 부여해서 채워가는 것을 좋아했어요. '폭군'에서는 대본 외에는 침묵으로 일관했죠. 말을 하지 못했을 때 어떤 표현이 효과적이고 자극을 받고 있는지 고민했죠. 눈빛과 손의 떨림, 앉아있는 자세로 침묵의 무게를 표현하려고 했어요. 이번 역할만큼은 엄청나게 채우려고 하지 않았어요.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전달하고 싶을 때 '트림해도 되요?' '열받은 것 같은데' 같은 대사들이 나왔어요. 효과를 더 극대화 시키려고 한 것 같아요."
쉽지만은 않았다. 김선호가 박훈정 감독에게 '힘들다'고 했더니 '더 재미있게 할 수 있다'고 독려했다. 그 연기를 해내면 '거봐 되잖아'라고 했다. 김선호는 "연출이 믿어준다는 그 믿음이 크다. 배우는 말 한마디가 바꾼다"라며 박훈정 감독에 고마움을 표했다.
그간 해온 연기 스타일을 바꿔야 했다. 욕심도 버려야 했다. 김선호는 터트리는 연기보다, 꾹꾹 눌러담는 연기가 훨씬 어려웠다고도 고백했다.
"폴과 취조실에서 '왜 너흰 되고 우리 안된다는 거야'라는 대사를 해요. 자신의 사상 안에서 폴에게 하고 싶었던 말이었을 것 같아요. 두가지 정도를 준비했어요. 터트리는 대사, 그리고 완전히 다운한 대사, 다르게 3번 정도 찍었어요. 배우로서도 확신이 안 서면 욕심이 생겨요. '한 번쯤은 터트려도 되지 않을까' 욕심을 갖고 왔는데, 감독님이 '더 빼'라고 했어요."
'디테일 연기의 끝판왕'답게 김선호는 집요하게 캐릭터를 파고들었다. '초췌해져있는'이라는 대본 지문을 보고선 촬영 전 6~7kg 체중 감량을 했다. 온전히 김선호의 욕심이었다.
"감독님은 (감량에 대한) 그 어떤 지시도 없었어요. 최국장이 팀원들까지 희생시키면서 이 프로그램을 지키는데, 그러면 밥은 넘어갈까 생각해서 감량했어요. 감독님이 '살 많이 빠졌네'라고 했다. 감독님은 온전히 그 캐릭터를 표현할 수 있으면 감량은 상관이 없다고 믿었던 것 같아요."
비흡연가인 그는 최국장이 담배 피는 신을 위해 실제로 담배를 배웠다. 그는 "실제로 담배를 못 핀다. 3개월 정도 연습했다. 감독님이 '귀공자' 때 담배를 조금 더 자연스럽게 피었으면 그 커트가 늘어나지 않았을까' 했었다. 다행히 이번엔 잘 피고 끊었다"고 웃었다.
"디테일이라기보단, 최대한 그동안의 역할과 다르게 액팅 하나하나 신경 썼다. 움직임이 누군가에겐 큰 언어에요. 최국장의 조묵직함이 담길 수 있도록 절제하고 시선 하나하나에 신경을 썼어요."
극중 국가와 민족을 위해 폭군 프로그램을 지켜온 최국장은 폭군이 된 자경의 위력을 눈으로 확인한 뒤 죽음을 맞는다. 시청자들 사이에선 죽음 엔딩에 대해 의견이 분분했지만, 김선호는 "최국장은 죽었다"고 확인했다.
"후속작 참여를 못한다는 건 아쉽지만, 과거 회상으로 나올 수 있지 않을까요. 대본을 읽자마자 죽는다는걸 알았고, 그렇게 시작했기 때문에 극한으로 몰아가는 상황에서 '이런 선택을 할 수 있구나' 납득이 됐어요. 그런 선택을 안 했다면 감독님에게 더 많은 질문을 했을 것 같아요. 엔딩은 좋았는데 후속작에 없다는 건 아쉬울 것 같아요. 과거 신이나 프리퀄로 불러주면 감사하겠습니다."
공개 후 반응이 뜨겁다. '폭군'은 전 세계 OTT 플랫폼 내 콘텐츠 시청 순위 집계 사이트 플릭스패트롤(FlixPatrol)에서 3일 연속 한국 디즈니+ 콘텐츠 종합 순위 1위를 차지했다. 홍콩 디즈니+ TV 쇼 부문 3일 연속 1위 등 글로벌 인기도 누리고 있다.
"반응들을 봤는데 너무 좋았어요. 혹시 몰라서 처음에는 반응을 안 봤어요. 다른 작품을 촬영하고 있는데 거기에 너무 빠지면 안 될 것 같았거든요. 회사 홍보팀이 반응을 추려줬는데 (긍정적 피드백에) 신나더라구요. 앉아서 두 시간 동안 찾아봤던 것 같아요. 제가 연기한 인물이 나쁘지 않았다는 칭찬이 좋았어요."
'폭군' 이후에도 김선호는 부지런히 작품에 출연한다. 고윤정과 함께 로맨스물 '이 사랑, 통역 되나요?'에 출연하며, 스릴러물 '현혹'과 '망내물' 등
'폭군' 이후에도 김선호는 줄줄이 차기작이 대기 중이다. 주특기를 살린 로맨스물 '이 사랑 통역이 되나요?'에서 고윤정과 호흡을 맞춘다. 김지훈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추리물 '망내인', 미스터리 시대극 '현혹'도 긍정적 검토하고 있다.
"타고난 배우들이 부럽다"는 김선호는 흔들리고, 자빠지기도 하면서 새로운 시도를 해왔다. 수없이 많은 작품들을 참고하고, 물밑에서 헤엄을 치며 한발짝 한발짝 나아가고 있다. 로코부터 장르물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을 소화할 수 있는 건 부단히 노력한 결과물이다.
"남들보다 뛰어나게 잘한다고 하지 못해요. 어느 범주 안에서 다양하게 역할을 잘 수행할 수 있지 않을까요. 노력하면 안되는 것이 없어요. 센세이션하게, 엄청나게 잘하는 건 아니지만 무리없이 소화할 수 있다는, 배우로서 작은 확신과 용기가 생겼어요. 무난하게 그 인물로 보여질 수 있겠다는. 물론 그 이상을 해내면 행복하겠지만요. 매 순간 쫄보라 겁나지만,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이미영 기자(mycuzmy@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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