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17일 열린 '2010 프로야구 신인 지명회의'에서 두산 베어스는 깜짝 카드를 던졌다.
두산의 깜짝 카드는 바로 207cm의 '순천 효천고 좌완 장민익'. 장내에 참석했던 드래프트 신청자들은 고개를 갸우뚱했고 일선 현장에 있던 지도자들조차 '도대체 장민익이 누구냐'며 의아해했다. 그러나 '2m가 넘는 투수'라는 부연 설명이 있자 '아! 그 투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장민익은 전국체전 참가로 다른 두산 새내기들과 달리 일본 미야자키 교육리그를 경험하지 못했다. 좋은 경험이 될 수 있었지만 기회를 놓친 셈이다.
그러나 장민익은 크게 개의치 않는 듯했다. 그는 내년 시즌에 대한 기대치가 그 어떤 이보다 높고 깊다.
현재 장민익은 이천구장이 아닌 1군 선수들과 함께 잠실구장에서 훈련 중이다. 선수단 전체가 참가한 자체 청백전에서 장민익은 좋은 성적을 내 코칭스태프의 눈도장을 확실히 받았다. 3경기에 중간계투로 등판, 총 6이닝 동안 1안타 무실점을 기록했고, 특히 삼진을 6개나 솎아냈다.
"아직 변화구는 잘 던지지 못해요. 앞으로 차근차근 배워가야죠. 그래도 고등학교 때보다는 제구력이 많이 좋아졌어요. 이제 구속을 5~7km 정도 더 늘면 될 것 같아요."
같은 140km대라도 장민익이 던지면 다르다. 큰 키에서 내리꽂는 볼이 타자에게 훨씬 위협적이기 때문이다. 적응되지 않은 상태라면 더욱 그러하다.
두산 코칭스태프는 장민익에게 볼에 대한 자신감을 주문하고 있다. 상대를 압도할 수 있다는 마인드를 잃지 말라고 당부한다.
"지금 체중이 98kg인데 앞으로 10kg 정도 더 늘릴 계획입니다. 많이 먹으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잘 안되네요."
장민익은 내년 시즌 전까지 체중을 늘리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상상해 보라. 그렇지 않아도 타석에 비해 높이가 있는 마운드에서 2m가 넘는 키의 투수가 110kg의 체중을 실어 담아 던지는 140km대 중반의 볼. 물론 거기엔 제구력이 겸비된 볼이라는 전제조건이 깔려있다.
효천고는 올 시즌 두 명의 장신 투수를 데리고 시즌에 나섰다. 우완 정통파 이태양(한화 5라운드지명, 전체 36번)도 193cm의 큰 키를 갖고 있다. 미추홀기대회 준우승 당시 감투상을 받기도 했던 이태양은 장민익과 나눠 마운드에 올랐다.
그러나 이들은 시즌 초반엔 그다지 가능성을 보이지 못했다. 특히 장민익은 좀 더 불안했다. 매 게임 폭투는 물론이고 사사구도 남발했다. 자신의 키를 주체하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엉성한 폼도 거슬렸다.
하지만 봉황대기 이후 서서히 안정적인 모습으로 진화했다. 결승까지 진출했던 미추홀기대회에서 장민익은 강릉고전에선 7이닝을 넘게 던지며 11개의 삼진을 잡아내는 호투를 보였다.
전국체전 포함 총 6개 대회에 출전해 10게임에 나서 47이닝을 던진 장민익은 2승3패, 평균 방어율 3.26를 마크했다. 기록만 보면 전체 순번 7번이자 두산의 1라운드 지명 선수로는 모양새가 잡히지 않는다.
그러나 두산은 지금이 아닌 미래를 선택했다. 몸집을 키우고 체계적인 훈련을 통해 구질을 연마하고 가장 중요한 컨트롤만 잡는다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만약 제 키가 작았다면요? 당연히 지명되지 않았겠죠. 내년 시즌 1군 무대에 서서 팀이 이기는데 보탬이 되고 싶어요. 보직이요? 전 선발이 좋지만 어디든 상관없어요.(웃음)"
2주전 '곰들의 모임'에서도 장민익은 단연 돋보이는 '예비스타'였다. 큰 키 탓에 모든 이들이 단번에 알아봤고 사인 공세도 이어졌다.
"처음엔 좀 놀랐어요. 그런데 하다 보니까 재미있던 걸요? 다만 사인이 없어서 급조했죠."
어떤 모양일까 궁금해 한번 써보라고 했다. 장민익은 잠시 주저하다가 자신의 이름을 흘려 쓰고 쭉 내밀었다.
자신없이 주저하다가 쓴 흔적이 역력했고 이름을 흘려쓴 것일 뿐 별다른 특징이 없는 허술함 그 자체였다.
"장민익이라고 쓴 것 같은데 '익'의 'ㅇ'이 빠진 것 같네요."
"어? 그러네요. 저 혼자 대충 만들었어요. 뭔가 허전하고 보완이 필요한 것 같은데 잘 안되네요. 그런데요. 문제는 쓸 때마다 달라지는 거 있죠?(웃음)"
한낱 사인 조차도 부단한 연습이 필요하다. 언제 어디서 누가 봐도 같은 사람이 쓴 동일한 것임이 한 눈에 쏙 들어와야 한다. 그런데 하물며 투수의 볼은 오죽하랴.
현재의 장민익과 꼭 닮아 있는 사인을 바라보며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쉬는 날 틈틈이 사인 연습도 좀 해야겠네요. 나중에 멋진 것 만들면 다시 해줘요."
장민익이라는 이름 석자는 물론이고 그의 사인을 전 국민이 알 정도로 유명한 꺽다리 에이스로 자리매김하는 날을 기대해 본다.
조이뉴스24 홍희정 객원기자 ayo3star@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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