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전주 월드컵경기장. 형광 녹색 유니폼에 공격수들이 선호하는 등번호 9번을 단 196cm 장신의 한 선수가 머리 위로 날아오는 볼을 향해 점프를 하자 관중석에서 "우와~"라는 탄성과 함께 박수가 쏟아졌다.
다른 선수들과 달리 확연히 도드라져 보이는 신체조건으로 인해 무슨 동작을 하든 관심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했다. 큰 키로 다소 느리고 굼떠 보일 것이라는 편견과 달리 그는 빠른 움직임에 의한 과감한 태클을 하는 등 주어진 임무에 충실했다.
그 결과 소속팀 전북은 치열한 순위 싸움에서 분수령이 된 FC서울과의 경기를 1-0 승리로 마무리했다. 관중석에서는 친정을 상대로 화끈한 수비를 보여준 그에게 성공적인 포지션 변경을 축하해주듯 이름을 연호했다. "심우연! 심우연!"
2006년 FC서울을 통해 K리그에 데뷔한 심우연(25)은 지난해 말 전북 현대로 이적했다. 당시 그는 가능성 있는 공격수였지만 서울에서 기회를 잡지 못하며 존재감을 잃었다.
전북 유니폼을 입은 심우연은 올 시즌 개막 후 3월 14일, 드라마처럼 친정 서울을 상대로 첫 경기에 나섰다. 결과는 심우연의 결승골로 1-0 전북의 승리였다. 골을 넣은 뒤 손가락으로 머리에 총을 쏘는 시늉을 하며 "서울에서의 심우연은 죽었다"라는 의미있는 세리머니를 했다.
그렇지만, 확실한 포지셔닝이 필요했다. 전북 역시 이동국, 이광재, 로브렉 등 주요 공격수들에 에닝요, 루이스 등 황금 미드필드진이 언제든 골 넣을 능력이 있어 심우연으로서는 자신을 특화할 무엇인가가 필요했다.
최강희 감독은 심우연을 중앙 수비수로 보직 변경시키는 모험을 단행했다. 마침 펑샤오팅, 임유환, 이요한 등 중앙 수비진의 줄부상이라는 그럴 듯한 이유마저 생겼다.
변신 결과 심우연은 월드컵 휴식기 이후 재개된 K리그 7경기 중 5경기서 선발 풀타임 소화하는 능력을 보여줬다. 포스코컵 4강 경남FC와의 경기에서 자책골을 기록하기는 했지만 누구 하나 그를 비난하지 않았다.
같은 기간 전북은 7경기 모두 승리했다. 컵대회는 결승에 진출하는 등 성과를 냈다. 심우연의 변신이 나쁘지 않은 결과를 낸 것이다.
서울과의 경기 뒤 만난 심우연은 "처음 수비에 나섰을 때는 혼돈이 있었다"라면서도 "이제는 여유도 생기고 편안하다. 감독님의 선택이 곧 내 선택이다"라며 주어진 역할에 집중하겠다는 뜻을 나타냈다.
물론 화려한 공격수를 버리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때문에 그는 "이왕 하게 된다면 확실한 한 자리를 하겠다. 감독님도 믿음을 주셨다. 긍정적으로 할 수 있을 것 같다"라며 결연한 의지를 표현했다.
최강희 감독은 "본인 의사를 존중해야겠지만 앞으로도 수비에서 많은 활약을 해줄 것 같다. 수비에 재능이 있다"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조금만 더 기량을 다듬으면 국가대표팀으로 월드컵에서 두 골을 넣었던 이정수(알 사드)를 능가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아직 심우연은 수비 공부에 열중하고 있다. 그를 리드하는 임유환은 경기 내내 팔을 휘저으며 심우연의 위치를 조정하는 등 보조교사 역할을 하고 있다. 어색한 옷을 몸에 맞춰 입으려면 시간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심우연의 새로운 도전은 14일 경남FC와의 경기에서도 계속된다.
조이뉴스24 이성필기자 elephant14@joynews24.com
--comment--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댓글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