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남아공월드컵 최종엔트리에 '라이언 킹' 이동국(31, 전북)이 발탁되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2009 K리그 득점왕에 오르며 비상하던 이동국이었지만 허정무 감독의 시선은 냉랭했다. 허 감독의 지론은 '가만히 서있는 공격수는 필요 없다'였다. 전북에서 이동국의 활동영역은 넓지 않았다. 최상의 공격형 미드필더진을 보유한 전북이기에 이동국은 많은 움직임보다는 상대 골문 앞에서 결정력 있는 한 방으로 마무리하면 됐다.
하지만 허정무 감독은 더욱 넓은 공간을 활용하는 공격수를 원했다. 적극적인 수비가담도 주문했다. 월드컵에 대한 꿈을 쫓고 있던 이동국은 허정무 감독이 원하는 대로 자신의 스타일을 변화시켰다. 변화에 성공한 이동국은 결국 최종엔트리에 선발됐고 남아공 무대를 밟을 수 있었다.
허정무 감독과 이동국이 했던 고민. 사령탑은 조광래 감독으로 바뀌고 이동국은 국가대표팀에 발탁되지 못했지만, 비슷한 고민이 조광래호에도 이어지고 있다. 조광래호 2기에 선발된 '신예 공격수' 석현준(19, 아약스)이 이동국과 같은 고민에 빠져 있다.
190cm의 장신 공격수 석현준. 그의 소속팀인 아약스에서는 석현준에게 전형적인 장신 스트라이커의 역할을 요구하고 있다. 활동량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문전에서 한 방을 기다리는 역할이다.
지난 3일 파주 국가대표팀 트레이닝센터(파주NFC)에 입소한 석현준은 "아약스에서는 원톱으로 가운데서 볼을 받는 역할을 주문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활동공간이 제약될 수밖에 없다"며 아약스에서의 자신의 역할을 설명했다.
하지만 이런 역할의 스트라이커는 조광래 축구와 맞지 않는다. 조광래 감독이 추구하는 빠른 축구와 어울리지 않는다. 활동영역이 제한된다면 조광래 감독의 따뜻한 시선을 받을 수 없다.
조광래 감독은 3일 대표팀 소집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좋은 선수는 어느 움직임을 요구하더라도 적응을 잘하는 선수다. 석현준이 더 많은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더 날카로운 움직임을 보이지 않으면 절대 좋은 스트라이커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어린 나이부터 그런 의식을 가지고 하면 더 좋은 선수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아약스에서의 스타일로는 대표팀에 살아남을 수 없다는 의중을 내비쳤다.
한 번 몸에 밴 스타일을 바꾸기는 어렵다. 시간이 걸리는 일이고 끊임없는 노력도 동반돼야 한다. 무의식적으로 소속팀의 움직임이 나올 수도 있는 일이다.
하지만 석현준은 조광래 감독이 추구하는 스타일을 선보이겠다는 자신감을 보였다. 석현준은 "한국에서 축구를 할 때는 많이 뛰고 공간을 넓게 쓰고 사이드로 나가 돌파도 하고 크로스도 많이 했다. 한국에서 축구할 때 항상 해왔던 플레이다. 조광래 감독님이 좋아하는 스타일에 잘 맞출 것이다. 한국 대표팀에 와서 다시 예전 플레이를 할 수 있어 기쁘다"고 말했다.
금세 적응하고 몸이 반응하는 어린 나이의 석현준이기에 역할이 다른 소속팀과 국가대표의 이중생활을 잘 헤쳐나갈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소속팀에서 몸에 익은 움직임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다면 조광래 감독의 외면을 받을 가능성도 있다. 또는 국가대표팀에는 적응을 잘했지만 소속팀으로 돌아가 달라진 역할에 혼란을 겪을 수도 있다.
무한한 가능성을 품고 있는 신예 석현준이 영리하게 두 마리 토끼를 함께 쫓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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