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소설 및 영화의 제목인 이 말은 '독수리 군단' 한화 이글스에 왠지 어울려 보인다. 한화는 지난해 '독보적 에이스' 류현진을 보유하고 있었음에도 '2년 연속 최하위'에 머물렀다. 류현진이라는 날개도 한화의 추락은 막을 수 없었다.
올 시즌 류현진에게 맡겨진 중책은 더 이상 추락하지 않도록 막아내는 일이다. 물론 류현진 혼자만의 힘으로 쉽지 않다. 혼자 30~40승을 해낼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화는 류현진이 있어야 비로소 희망을 떠올릴 수 있다.
팀 리빌딩이 진행중인 한화에 류현진은 대들보 같은 존재다. 집안 곳곳이 무너져 있지만 기본 골격인 대들보만큼은 굳건히 자리하고 있다. 다른 부분의 보수만 잘 끝낸다면 한화 이글스가 다시 튼튼한 집으로 태어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이유다.
한화의 에이스가 누구냐는 질문만큼 명확하게 답이 나오는 것도 없다. 국가대표팀의 에이스이기도 한 류현진은 2006년 데뷔 이래 항상 팀의 에이스로 활약해왔다. 오히려 류현진에게는 보통의 에이스들과는 다른 특별한 기대치가 따라 붙는다. 류현진은 '성공' 보다는 '실패'가 뉴스가 될 정도의 선수다.
프로 6번째 시즌을 맞는 류현진에게 2011년은 한화의 추락을 막아야 한다는 사명과 함께 개인적인 목표가 부여된 한 해다. 스스로는 2점대 평균자책점을 목표로 내걸었지만 야구인들과 팬들이 원하는 바는 따로 있다. 바로 통산 100승 달성이다.
류현진은 지난해까지 통산 78승을 기록했다. 통산 100승을 달성하려면 올 시즌 22승을 거둬야 한다. '괴물투수'로 불리는 류현진이지만 개인 한 시즌 최다승은 2006년 기록한 18승이다. 22승은 벌써부터 최약체로 평가되는 팀 전력 탓에 결코 쉽지 않은 도전이다.
그래도 호재가 없는 것도 아니다. 올 시즌엔 국제대회가 없다.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 2008년 베이징 올림픽, 2009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등 류현진은 프로 신인 때부터 거의 해를 거르지 않고 국제대회에 대표로 참가했다.
잦은 국제대회 출전은 피로도를 가중시키고 부상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특히 류현진의 경우 대표팀에서도 주축 선수로 활약했기 때문에 그 정도가 심하다. 올 시즌 류현진은 국제대회 출전 없이 온전히 리그에만 집중할 수 있기 때문에 컨디션 조절이 예년에 비해 수월할 수 있다.
류현진이 만약 올시즌 22승을 거둔다면 통산 100승과 함께 한꺼번에 세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 먼저 정민철 한화 투수코치가 보유하고 있는 최연소 100승 달성 기록을 확 앞당겨 깨게 된다. 정민철 코치가 100승을 달성했을 당시 나이는 27세 3개월 2일. 올해로 만 24세가 되는 류현진은 올해냐 내년이냐가 문제일 뿐, 정 코치의 기록을 앞당기는 것은 기정사실이나 마찬가지다.
두 번째 토끼는 12년만의 국내 선수 20승 기록이다. 한국 프로야구에서는 1999년 현대 정민태(현 넥센 투수코치) 이후 20승 투수가 나오지 않고 있다. 2007년 외국인 선수 다니엘 리오스(당시 두산)가 22승을 기록했지만 국내 선수 20승은 11년째 나오지 않았다.
공교롭게 올해는 1999년 정민태 코치가 20승을 기록했던 토끼해의 재림이다. 게다가 류현진은 1987년 토끼해에 태어났다. 토끼띠 류현진이 12년 전 토끼해에 나왔던 20승 기록의 대를 이을지도 관심거리다.
류현진이 22승을 거둠으로써 잡을 수 있는 세번째 토끼는 바로 팀 성적의 향상이다. 류현진은 지난해 16승을 거뒀다. 22승은 이보다 6승이 많은 기록. 그만큼 한화의 승률도 높아지게 된다. 탈꼴찌를 넘어 4강까지 바라보고 있는 한화로서는 류현진이 많은 승수를 거둬줄수록 목표에 근접할 수 있다.
류현진은 대한민국 에이스이자 꼴찌팀의 에이스라는 역설적인 상황에 처해있다. 대한민국 에이스라는 자랑스러운 이름 뒤에는 소속팀이 2년 연속 최하위를 기록했다는 무거운 부담감이 자리하고 있는 것. 어쩔 수 없다. 류현진이 한화 이글스의 더 강한 날개가 되어야 한다.
2009년 류현진이 13승을 올렸을 때 한화는 최하위였다. 2010년 16승을 거둬봤지만 순위는 다르지 않았다. 올 시즌 더 많은 승수를 기록해도 팀 성적이 계속 최하위일까? 류현진에겐 너무 큰 부담이고 기대가 되겠지만 그로선 감수해야 할 일이다. '대한민국 에이스'이기 때문이다.
조이뉴스24 정명의기자 doctorj@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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