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쌤'의 시간은 거꾸로 가지 않는다. 더 이상 그에게 과거는 없다.
지난 16일 오후 경상남도 남해 상주 군민체육공원 운동장, 인제대학교와 연습경기를 하던 대전 시티즌 선수들 사이에 한바탕 폭소가 터져나왔다. 배나온 중년의 한 사나이가 선수들 사이를 헤집고 현란한 드리블을 선보인 것.
이 장면을 지켜보던 한 선수는 "오~ 배나온 마라도나"라며 감탄사(?)를 날렸다. 애석하게도 배나온 마라도나로 불린 대전의 '왕쌤' 왕선재(52) 감독은 골은 고사하고 오프사이드 함정에 걸려 왕년의 실력 발휘에 실패했다.
그래도 왕 감독은 "대학 OB축구에서 뛰면 충분히 실력 발휘를 할 수 있다. 50대이지만 이래봬도 100m를 15초에 뛴다"라며 은근히 자기 자랑을 했다.
농을 던질 정도로 여유로운 왕선재 감독이지만 시즌 개막이 17일 앞으로 다가온 2011 K리그만 생각하면 머리가 아프다. 올 시즌을 끝으로 대전과 계약이 만료되는 왕 감독은 지난 두 시즌은 불완전한 환경에 휩쓸려 의도대로 팀을 이끌지 못했다.
2009년 중반에 팀을 맡았던 왕 감독은 2010 시즌 주축 수비수 황지윤과 박정혜의 부상으로 초반부터 애를 먹었고 고창현이 울산으로 이적하면서 공수의 축을 모두 잃은 채 13위로 마감했다.
올 시즌도 상황은 좋지 않다. 주전급이었던 우승제, 이경환은 수원 삼성으로 이적했고 권집은 재계약을 하지 않았다. 그나마 공격수 박성호가 일본에서 돌아왔고 플레잉코치 최은성 골키퍼의 부담을 덜어줄 최현을 부산 아이파크에서 영입해 한숨을 돌렸다.
중국 광저우 전지훈련부터 선수들을 쭉 지켜보고 있는 왕 감독은 "1, 2군은 물론 연습생까지 모두 전지훈련을 했다. 연습생 쪽에서 괜찮은 선수가 몇 명 보이기는 하는데 아직까지 축구 센스가 조금 부족하다"라며 입맛을 다시면서도 옥석 고르기에 힘을 쏟겠다고 특유의 경상도 사투리를 내뱉었다.
그래도 부족한 '총알'은 대전 시티즌에 답답한 요소다. 괜찮은 외국인 선수를 보강하려고 해도 금전적인 여유가 허락되지 않는다. 다른 팀에서 한 명의 외국인 선수를 영입하는데 드는 비용을 대전은 아시아 쿼터제를 활용해 얻을 수 있는 이들을 포함해 4명을 뽑는데 쪼개서 써야 한다.
때문에 남해 전지훈련장에서 최종 테스트하고 있는 한 외국인 선수의 경우 선택을 놓고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 과거 A팀이 K리그 정상에 오르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고 지금도 해당팀 팬들이 그리워하고 있는 이 외국인 선수만 자줏빛 유니폼을 입는다면 그나마 공격에서 숨통을 틔워줄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이가 먹어 스피드가 다소 떨어지기는 했지만 골 감각과 공간 침투 능력이 좋다는 것이 왕 감독의 판단이다.
지지부진한 전력 보강을 뒤로하고 왕 감독은 올 시즌 최소한 지지 않는 축구에 초점을 맞출 생각이다. 감독 1~2년차였던 지난 2년 동안은 너무 패기만 믿고 달려들다가 상대의 영리함에 당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이제는 상대의 움직임을 역으로 이용하는 플레이에 집중하는 고단수의 축구를 선보일 생각이다. 왕 감독은 "상대에 너무 열어주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순간적인 스피드를 이용한 플레이가 얼마나 좋은지를 보여주겠다"라며 강력한 역습에 의한 실리축구를 예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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