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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기 품은 김창훈, 더 이상의 대타 인생은 없다


[이성필기자] 2007년 2월 당시 올림픽 축구대표팀 사령탑이었던 핌 베어벡 감독은 예멘과 2008 베이징올림픽 아시아 2차예선을 앞두고 고려대에 재학 중이던 무명의 풀백 김창훈(25, 대전 시티즌)을 긴급 호출했다. 주전 안태은(포항 스틸러스)이 부상으로 이탈해 대체 자원이 필요했다.

당시 올림픽대표는 모두 K리거로 구성돼 대학생의 합류는 '깜짝 발탁'으로 여겨졌다. 이후 3일 만에 치러진 예멘과의 경기에 김창훈은 후반 박희철(포항 스틸러스)과 교체돼 나서 맹활약하며 한국의 1-0 승리를 도왔다.

이후 김창훈은 2008 신인 드래프트에서 2라운드로 제주 유나이티드에 지명되는 등 축구 인생에 날개를 다는 듯했다. 당시 제주의 김현태 수석코치는 "취약점인 측면 수비의 해결책이 될 선수"라며 기대감을 감추지 않았다.

그러나 프로 데뷔를 한 2008 시즌 그는 한 경기에 출전하는 굴욕을 겪었다. 프로의 높은 벽을 넘지 못했고 베이징올림픽 본선에서도 벤치 멤버로 출전 기회조차 얻지 못하며 조별리그 탈락이라는 굴욕을 함께했다.

2009년 포항 스틸러스로 이적해 반전을 꿈궜던 김창훈은 본격적인 대타 인생을 시작했다. J리그로 진출한 박원재(현 전북 현대)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영입됐지만 베테랑 김정겸(35, 포항 스틸러스)이라는 큰 산을 넘지 못했다. 김정겸은 그 해 포항의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정상에 공헌하는 등 김창훈이 넘볼 수 없는 좋은 활약을 했다.

지난해까지 고작 9경기에 나선 그에게는 새로운 반전이 필요했다. 늘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대표 선수 출신'에 걸맞은 활약이 필요했다. 고민 끝에 그는 대전의 자줏빛 유니폼으로 갈아입고 새로운 출발선에 섰다.

벼랑 끝에 몰린 김창훈, 대전에서도 기회를 얻지 못한다면…

어느 해보다 김창훈은 독기를 품고 동계훈련에 나섰다. 대전 왕선재 감독은 "김창훈의 훈련 태도가 너무나 괜찮다. 투박한 것만 다듬으면 올 시즌 대전이 목표로 하는 6강 플레이오프 진출에 힘을 보탤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감을 감추지 않았다. 남해 전지훈련에서 만난 김창훈은 "포항보다 환경은 열악하지만 선수는 경기장에서 보여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라며 벼랑 끝에 몰린 심정을 숨김없이 표현했다.

대전은 주전 풀백 우승제가 수원 삼성으로 이적해 김창훈은 주전으로 도약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천금의 기회를 놓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판단이다. 때문에 "대전에서도 기회를 얻지 못하면 나를 부를 팀은 없다. 그래서 내게는 하루하루가 너무나 중요하다"라며 각오를 새롭게 다졌다.

김창훈의 부담감은 상당하다. 대전의 수비진은 프로 3년차 이내의 젊은피들로 가득해 그나마 4년차인 그가 컨트롤을 해야 한다. 때문에 포항에서 자신에게 벽과 같았던 김정겸의 여유 있는 플레이를 머릿속에 그리며 시즌 채비를 하고 있다.

일단 대전에서는 부상 없이 한 시즌을 보내는 것이 김창훈의 목표다. 그는 "잘 다치는 스타일이라 조심스럽다. 조심스럽게 플레이하면서 많은 경기 출전하는 것이 목표"라고 전했다.

다시 태극마크를 찾을 수 있을까?

김창훈의 대전 이적까지는 꽤 진통이 있었다. 포항에 부임한 황선홍 감독이 그의 플레이를 지켜본 뒤 팀에 꼭 필요한 선수라며 "3일만 더 생각해보자"고 잔류를 유도했던 것. 연봉도 올려주겠다는 제안을 받았다.

그러나 김창훈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그라운드에서 뛰어야 하는 절박함이 포항 잔류 의지를 눌렀다. 농담으로 긴장을 풀어주는 대전 왕선재 감독의 조련을 받아 제대로 성장하겠다는 것이 이적을 결심한 김창훈의 굳은 마음이다.

대전에서 비상을 노리는 이유는 또 있다. 올림픽대표팀이나 제주, 포항에서 함께했던 동료들이 모두 정상을 향해 거침없이 달려가고 있어 자신이 갈수록 뒤처진다는 절박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는 "구자철은 제주에서 같이 있었고 이청용이나 기성용은 대표팀에서 함께했다. 박주영은 중학교 선배고 조용형, 최효진 등도 마찬가지"라며 자신과 한솥밥을 먹었던 정상급 선수들을 열거했다.

대전에서 재능을 발휘하면 언젠가는 조광래 대표팀 감독도 눈여겨보지 않겠냐는 질문에는 웃음으로 넘겼다. 왼쪽 풀백인 그는 조광래 감독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는 홍철(성남 일화), 윤석영(전남 드래곤즈) 못지않은 실력을 가지고 있다.

약점으로 꼽히는 실전 감각만 보강하면 경쟁력은 충분하다는 평가다. 김창훈의 지인도 "종종 대표팀에서 (김)창훈이는 뭐하고 있느냐는 질문이 온다. 대전에서 기회를 잡는다면 언젠가는 다시 태극마크를 달 수 있을 것"이라며 희망 섞인 전망을 내놓았다.

마지막이라는 마음으로 그라운드에 나설 준비를 마친 김창훈은 "대전에서 꼭 해내겠다. 그라운드에서 모든 것을 토해내겠다"며 올 시즌 대타 인생에서 벗어나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 번 표현했다.

조이뉴스24 이성필기자 elephant14@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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