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기범기자] 좌완 이현승(두산)이 원하던 선발 보직을 꿰차고 도약대에 섰다. '백척간두'의 심정이다. 물러설 곳 없는 이현승은 2011 시즌 두산의 우승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칠 각오다.
이현승은 지난 23일 시범경기 잠실 넥센전에 선발로 등판해 4이닝 동안 62구를 뿌리면서 1피안타 1사사구 3탈삼진 무실점으로 호투를 펼쳤다. 이어 최종일인 27일 잠실 LG전에서도 선발등판해 1이닝(32구) 1피안타 2사사구 1실점을 기록했다. 27일 경기는 쌀쌀에 몸도 덜 풀렸고, 시범경기 최종전인 만큼 투구감각만 점검하고 일찍 마운드를 내려왔지만, 이현승의 선발진입에 큰 지장은 없는 피칭이었다.
시범경기 후반 들어서야 이현승은 극적으로 선발로테이션에 합류했다. 그의 선발보직은 예정된 수순이 아니었고, 김경문 감독은 니퍼트와 라미레즈, 김선우, 이혜천, 김성배의 선발 로테이션으로 개막을 맞을 작정이었다.
하지만 시범경기서 '우승청부사'로 영입한 용병 라몬 라미레즈가 형편없는 피칭을 두 차례나 선보이자 김경문 감독은 두고볼 것도 없이 칼을 빼들었다. 라미레즈의 2군행을 지시하고, 그 공백을 메우기 위해 이현승을 선발진에 합류시킨 것이다. 이현승으로선 천금의 기회가 아닐 수 없다.
사실 이현승은 스프링캠프 때부터 선발보직을 원했다. 지난해 부진의 수모를 설욕하고, 아직도 남아있는 어깨통증의 조절을 위해서라도 등판 후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선발보직에 욕심이 났다. 캠프 당시 이현승은 "몸상태도 조절할 수 있고 선발로 뛰고 싶다"는 속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특히 선발에 욕심이 나는 이유는 자존심을 되찾기 위해서였다. 2009 시즌 후 두산은 트레이드 머니 10억원을 주고 넥센에서 이현승을 영입했지만, 지난 시즌 그는 부상과 부진으로 고개를 떨궜다. 시즌 최종성적도 46경기(77.2이닝) 등판, 3승 6패 2세이브 4홀드 평균자책점 4.75에 그쳤다.
이 탓에 이현승은 "괴로웠다"고 2010 시즌을 회상했다. 우승을 위해 과감히 자신을 영입한 김경문 감독과 두산 프런트에게 면목이 없었고, 야구장을 찾은 팬들을 쳐다볼 용기도 나지 않았다. 이현승의 모친은 그런 아들의 모습을 보면서 술 한 잔 하지 않으면 잠도 못잘 정도였다고 한다. 그로서는 악몽의 한 해였던 것이다.
그런 만큼 이현승은 보은 차원에서라도 선발 보직을 원했다. 고질적인 선발진 붕괴로 수 년간 우승 문턱에서 좌절한 두산이었고, 지난 시즌에는 자신이 그 한 원인이었다는 점을 누구보다 깨닫고 있어 이현승은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모든 것을 쏟아부을 참이다.
이현승은 "올해는 내 자리가 없고, 내게 남은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했다. 스스로 일어서지 않으면 군입대를 앞두고 있는 그는 그저 기억 속에 사라지는 선수가 될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까지 느끼고 있다.
이현승은 "올해는 독기를 품었다. 올해는 나도 올인이다. 더 이상 빠져나갈 것도 없고, 지나면 군대도 가야 한다. 2년 갔다오면 밑에 후배들이 다 치고 올라왔을 것이다"며 "뭐라도 이뤄내고 가더라도 가겠다. 감독님이 힘들게 데리고 왔다고 들었는데 그만큼의 보답은 하고 말겠다"고 눈빛을 번득였다.
올해 두산은 'V4'를 위해 총력전을 펼칠 에정이다. 김경문 감독도 올 시즌을 앞두고서는 말을 아끼면서 "결과로 평가받겠다"고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이현승은 두산의 구세주가 될 수 있을까. 그가 선발 10승 이상만 거둬준다면, 두산의 보물로 인정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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